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0일 기자들과 만나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와 아주대병원 간 갈등은 법·제도적 문제와 무관하다’는 취지로 발언한 데 대해, 국내 중증외상환자 치료체계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발언이라는 의료계의 비판이 나온다. 복지부는 2012년 국회를 통과한 개정 응급의료법(일명 이국종법)을 기반으로 중증외상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즉시 최적의 치료를 받도록 권역외상센터 17곳(2019년 기준 14곳)을 지정한 바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권역외상센터가 중증외상환자들의 ‘골든타임’ 내 치료라는 본연의 구실을 하고 있는지 면밀한 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21일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국가로부터 시설투자비 등을 받고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된) 병원들이 중증환자를 소극적으로 보는 데 견줘,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중증환자를 많이 보려고 해왔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심화된 것”이라고 진단하며 “이런 구조를 만든 복지부가 ‘법·제도에 문제가 없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성토했다. 김윤 교수 연구팀은 2010년 복지부 연구과제로 ‘한국형 권역외상센터 설립 타당성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무엇보다 김 교수는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국가 지원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 지원이 늘어나면서 병원이 손해를 보지 않고, 적자를 보더라도 큰 폭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중증외상 치료에 대한 수가 일부가 여전히 낮다. 정부가 의료진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런 돈을 정액으로 받으면서 중증 대신 경증 환자를 치료하면 손해를 덜 보거나 이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병원이 병실을 내주지 않았다는 논란에 대해 그는 “중증외상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면 치료가 평균 3시간 지연돼 그만큼 사망 확률이 올라간다”며 “설령 병실이 차 있다 하더라도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됐으므로) 외상환자가 심각한 상황이면 외래환자 입원을 연기하고 받아야 하지만, 이러한 운영 기준이 상세히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증외상환자를 돌보기 위해선 외상센터 의료진뿐 아니라 병원 내 다양한 구성원과 협력이 필요하므로 이를 반영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외상센터는 병원의 전체 기능 중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아무리 규모를 키워도 병원과 별도로 존립하기 어렵다”며 “결국 전반적인 병원 기능과 외상센터 역할을 어떻게 나누고 협력할지 조율이 되지 않으면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병원 내 갈등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이번 사태는 이명박 정부 당시 권역외상센터 정책을 졸속 추진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2009년 복지부는 헬기 2대 등의 이송센터를 갖춘 중중외상센터 6곳 설치를 추진하다 17곳으로 입장을 바꾼 바 있다. 2011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작성한 ‘권역외상센터 설립사업’ 예비타당성조사를 보면 “복지부로부터 귄역외상센터 수요 조사 결과 자료를 접수했으나 병원 간 경쟁을 부추길 우려가 있고 정치적 부담도 있어 최종 6개 병원을 선정할 수 없다고 한다”고 돼 있다. 익명을 요청한 의료정책 전문가는 “다수 권역외상센터가 경증환자를 보는 등 질이 하향평준화되고 있다”며 “권역외상센터 중 옥석을 가려 집중 지원이 되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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