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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 순간] 노동자 ‘검은 죽음’없는 그날이 오길…

등록 2019-12-27 08:24수정 2019-12-27 08:31

마석 모란공원 김용균 묘비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있는 모습이 비석에 흑백사진처럼 새겨져있다. 그 모습에도 빗물이 눈물처럼 흘렀다. 남양주/김봉규 선임기자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있는 모습이 비석에 흑백사진처럼 새겨져있다. 그 모습에도 빗물이 눈물처럼 흘렀다. 남양주/김봉규 선임기자

한 맺힌 노동자, 민주열사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공원을 찾았다. 겨울비는 소리 없이 내렸고, 안개는 야산 중턱에서 묘지 봉분까지 내려와 고요함과 숙연함이 더했다. 전태일 열사의 흉상 눈가엔 빗물이 슬피 우는 눈물처럼 보였다. 바로 옆 열다섯 발자국 거리에 외아들이었던 청년 노동자 김용균이 사랑하는 어머니 품으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하얀 자갈 아래 묻혀 있었다. 꽃다운 나이에 숨진 고인의 무덤엔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있는 모습이 비석에 흑백사진처럼 새겨져 있다. 그 모습에도 빗물이 눈물처럼 흘렀다.

전태일 열사 무덤 옆으로 열다섯 발자국 거리에 외아들 이였던 청년 노동자 고 김용군은 사랑하는 어머니 품으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하얀 자갈아래 묻혀 있었다. 남양주/김봉규 선임기자
전태일 열사 무덤 옆으로 열다섯 발자국 거리에 외아들 이였던 청년 노동자 고 김용군은 사랑하는 어머니 품으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하얀 자갈아래 묻혀 있었다. 남양주/김봉규 선임기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22살 나이에 분신 항거하며 목숨을 던졌고,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김용균은 컴컴한 작업 공간에서 희미한 손전화 불빛 하나에 몸을 의지하다 석탄가루를 운반하던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너무도 참혹하게 검은 죽음을 맞았다. 전태일 열사와 김용균의 무덤 주변엔 비슷한 처지로 고인이 된 이들의 무덤이 노동 현장의 동지들처럼 앞뒤, 옆으로 서로를 의지한 채 저무는 회색의 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묘역 너머 멀리서 성탄절 노래가 안개비 사이로 가냘프게 들려왔다. 알 수 없는 스피커를 통해 안개처럼 사방에 울려 퍼진 캐럴이 숨져간 노동자들의 영혼과 슬픔 속에 살아가는 그 가족들 마음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먼 서산에서 안개가 내려오며 저녁이 밀려왔다. 오늘 아침에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다녀올게” 하면서 출근했던 노동자들 가운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매일 3명, 2018년 1월1일부터 올해 9월까지 1200명이라고 한다. 죽음의 원인을 들춰보니 상상 자체가 치가 떨리고 두렵고 무섭다.

고 김용균은 컴컴한 작업공간에서 희미한 손전화 불빛 하나로 몸을 의지하다 석탄가루를 운반하던 켄베이어벨트에 끼여 너무도 참혹하게 검은 죽음을 맞았다. 남양주/김봉규 선임기자
고 김용균은 컴컴한 작업공간에서 희미한 손전화 불빛 하나로 몸을 의지하다 석탄가루를 운반하던 켄베이어벨트에 끼여 너무도 참혹하게 검은 죽음을 맞았다. 남양주/김봉규 선임기자

전태일 열사 무덤 바로 앞 소나무는 고인과 함께 50년 동안 말없이 자라서 이제는 하늘에 닿을 듯 당산 나무처럼 커버려, 험준한 노동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남양주/김봉규 선임기자
전태일 열사 무덤 바로 앞 소나무는 고인과 함께 50년 동안 말없이 자라서 이제는 하늘에 닿을 듯 당산 나무처럼 커버려, 험준한 노동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남양주/김봉규 선임기자

전태일 열사 무덤 바로 앞 소나무는 고인과 함께 50년이 되도록 말없이 자라서 이제는 하늘에 닿을 듯 당산나무처럼 커버려, 험준한 노동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의 조건은 전태일 열사가 숨져간 그 50년 전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노동자들의 목숨으로 이윤을 지탱하는 비인간적 자본주의 사회로 남을 것인가. 현실은 내가 김용균이고 우리가 모두 김용균이다. 다시는 검은 죽음이 없기를 빌어본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9년 12월 27일자 <이 순간> 지면.
2019년 12월 27일자 <이 순간>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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