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감사인인 삼정케이피엠지(KPMG·삼정) 회계법인이 삼성바이오의 재무제표가 설립 당시부터 부풀려져 왔고, 누락된 부채를 반영해 재무제표를 수정해야 한다고 삼성물산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삼정은 애초 보고와 달리, 부채 반영을 피하는 ‘분식회계’ 방안을 제시하며 “삼성에피스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 통합 삼성물산 ‘콜옵션 부채’ 문의에, 삼정이 문건 작성해 보고
2일 <한겨레>가 확보한 삼정의 삼성물산 보고 문건은 2015년 9월9일 작성된 문건(8쪽)과 11월13일 작성된 문건(3쪽) 등 두 가지다. ‘9월 문건’은 삼정이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부채’로 판단하고, 삼성바이오의 재무제표를 2012년까지 모두 소급해 수정해야 한다고 결론내린 분석 보고서다. ‘11월 문건’은 삼성바이오의 ‘계약서 은폐’로 콜옵션 부채가 누락되어온 사정을 자세히 설명한 뒤, 9월에 내린 결론과 달리 부채 반영을 피하는 ‘분식회계’를 추진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11월 문건’은 삼성물산이 대규모 부채를 반영하게 된 사정을 묻자, 삼정이 ‘해명’ 목적으로 작성한 문건으로 보인다.
2015년 9월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한 직후로, 삼정 회계법인이 콜옵션 조항의 내용을 온전히 파악한 때다. 이를 재무제표에 ‘부채’로 반영할 경우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에 빠지게 되자, 삼성과 회계법인은 이를 피하기 위해 회계방식을 변경하는 방법을 택했고, 4조5000억원대 장부상 이익을 만들어 낸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삼성바이오의 콜옵션 부채 누락, 회계방식 변경 등을 두 차례 모두 회계사기로 보고 있다.
■ “계약서 요구했으나 받지 못해”…삼바의 ‘집요한 은폐’로 누락된 부채
‘11월 문건’에는 삼정이 그동안 콜옵션을 ‘부채’로 평가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문건에서 삼정은 “2012년, 2013년 감사 시 주요 계약서 제출을 요청한 바 있었으나, 옵션 관련 계약서를 삼성바이오로부터 전혀 전달 받은 바가 없었기 때문에 어떠한 감사절차를 수행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삼정은 콜옵션 조항를 알게 된 이후에도 삼성바이오가 ‘비밀유지’ 등을 이유로 구체적인 내용을 숨겼고 설명한다. 삼정은 “2014년 기말감사 시 삼정은 바이오젠의 텐-케이(10-K) 보고서를 통해 콜옵션 존재를 처음 인지하고 상기 계약내용에 대해 (삼성바이오에) 문의하고 계약서 전달을 요청”했지만 “로직스는 계약 상대와의 비밀유지 약정을 사유로 공개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또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진행 과정에서 안진과 삼성물산 담당자가 자료요청 및 인터뷰를 위해 로직스와 에피스를 직접 방문했으나 계약서 전문을 제출받지 못하고 일부 계약서 문구의 발췌본만 수령했다”고도 설명했다.
■ 삼정, “에피스 적극 지원 필요”하다며 ‘분식회계’ 방안 보고
그러나 삼정은 본래 낸 결론처럼 누락된 부채를 이전 재무제표에 소급해 반영하는 ‘정답’을 택하지 않았다. 삼정은 삼성바이오의 재무제표에 대규모 부채를 반영하게 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로직스는 당기 중에 지배력 상실을 초래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고 보고했다. 이어 삼정은 “에피스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에 맞게 재무제표를 고치는 게 아니라, 원하는 재무제표에 맞춰 ‘사실’을 꾸미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후 삼성바이오는 실제로 2015년 말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진 근거로 ‘바이오복제약의 국내외 판매승인’을 들었고, 이에 따라 삼성에피스의 회계처리 방식을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꿨다.
■ “삼성과 회계법인, ‘장부조작’ 위해 ‘사실조작’ 추진한 물증”
이번 문건으로 삼성과 회계법인들의 두 차례 회계사기 정황(콜옵션 부채 누락, 회계처리 변경)이 명확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사건의 ‘스모킹건’으로 평가되는 삼성바이오 재경팀 문건이 드러난 데(
[단독] ‘이재용 지분’ 가치 높이려 삼성바이오 활용…내부문건 나왔다) 이어, 회계법인 내부 문건으로 삼성과 회계법인이 결탁한 ‘삼성바이오 회계사기’의 전모가 보다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또 금융당국 조사 과정에서 삼성과 회계법인들이 해온 설명이 ‘거짓말’이라는 점도 드러난다. 삼성바이오와 회계법인들은 “처음부터 콜옵션 조항의 내용을 알고 있었으나, 부채로 반영할 필요가 없어 반영하지 않은 것 뿐”이라고 설명했으나, 정작 문건에서 삼정은 “(2015년) 9월께에 에피스의 미국 아이피오(IPO·기업공개) 추진 과정에서 계약서 공개를 적극 요청해 에피스로부터 계약서 전문을 입수”했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의혹을 최초 제기한 홍순탁 회계사는 “감사인이 누락된 부채를 뒤늦게 확인했다면 이를 장부에 소급해서 반영해야 하는데, 삼성과 삼정은 오히려 ‘장부조작’을 위한 ‘사실조작’을 추진했다는 게 물증으로 증명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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