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이 10월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이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앞두고 국민연금의 찬성을 끌어내기 위해 양사의 주가를 조종(관리·부양)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이 계획은 실행으로 이어졌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연결된 정황이 뚜렷하다. 대법원으로부터 경영권 승계 목적이었다는 판단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 상대의 부정 청탁, 금융당국 확인을 거쳐 검찰 수사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함께 경영권 승계용 ‘부정행위 3종 세트’라 할 만하다.
<한겨레>가 확보한 미전실의 ‘M사 합병추진(안)’ 문건(2015년 4월 작성)을 보면, “악재는 합병 이사회 전에 선반영하여 주가를 낮춘 후 이사회 이후 양사 주가가 상승 추세를 형성하는 것이 유리” “주총(8월14일) 및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9월3일)까지 주가관리가 필요”라고 돼 있다. 시세 조종 의도를 보여준다.
문건의 계획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예는 여럿이다. 삼성물산이 아파트 공급 축소 등 주가 악재 요인을 이사회 합병 결의(5월26일)전인 1분기 실적에 반영하고, 제일모직은 그해 7월1일 핵심 계열사인 삼성바이오의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 추진 사실을 공개한 게 그런 예다. 자본시장법상 금지된 시세조종(주가 조작)에 해당할 수 있다.
당시 삼성의 주가 관리는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결정된 합병 비율(제일모직 1 대 삼성물산 0.35)에 불만을 제기할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요 주주들에게서 합병 찬성 뜻을 끌어내 제일모직 대주주인 이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를 돕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전실이 두 회사의 합병 절차와 일정을 챙기고, 구체적인 합병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삼성은 양사 합병에 대해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위한 두 회사의 자체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하며 미전실 개입을 부인했다. 문건은 이를 뒤집는 명백한 증거물이라 할 수 있다. 미전실 문건에는 ‘시너지 효과’에 대한 언급이 없고, 이재용 부회장·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사주 일가의 합병 전후 지분율 변동 사항은 자세히 담겨 있다. 합병 추진의 목적을 드러내는 정황이다.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이 국민연금을 비롯한 상당수 다른 주주들에게는 손실을 입혔다. 부정 청탁, 분식회계 문제와 함께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