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의 고발로 시작된 검찰의 4조5천억원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수사가 넉달째 ‘제자리걸음’이다. 수사팀의 상당수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 투입되며 수사 역량이 분산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검찰의 사건 관계자 공개소환 폐지 등으로 수사가 ‘깜깜이’로 진행되면서, 삼성바이오가 조 전 장관 수사와 검찰개혁 혼란기의 최대 수혜자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삼성바이오 본사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강제수사에 착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현재는 반부패수사4부 수사)는 지난 6월 분식회계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삼성 임직원 8명을 구속기소하며 속도감 있게 수사를 진행해왔다. 수사 속도가 더뎌진 건 지난 7월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부터다. 김 대표는 검찰이 회계사기와 관련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첫 삼성바이오 관계자였다. 김 대표 구속을 시작으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려던 검찰로서는 뼈아픈 결과였다. 당시 검찰은 “혐의의 중대성에 비춰 영장 기각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구속영장 재청구 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검찰의 삼성바이오 수사는 ‘시계 제로’ 상황이 됐다. 김태한 대표의 영장 기각 한달 뒤인 8월27일 검찰은 조국 전 장관 관련 의혹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전체가 조국 수사에 총동원됐는데, 삼성바이오 수사를 맡은 반부패수사4부 역시 ‘사모펀드 관련 의혹’ 수사에 투입됐다. 반부패수사4부는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공판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도 인력을 투입하고 있어, 삼성바이오에 투입할 수사 역량은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조국 사태 이후 수사가 사실상 ‘깜깜이’로 진행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검찰의 수사 상황은 지난 9월23일 삼성물산과 국민연금, 케이씨씨(KCC) 등 10여곳 압수수색 이후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앞서 영장이 기각된 김태한 대표가 추가로 소환됐는지는 물론, 그 윗선인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사장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는지도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덧붙여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참고인·피의자 등 사건 관계인에 대한 공개소환도 전면 폐지됨에 따라, 향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검찰 조사 역시 ‘비공개’로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고, 검찰 수사도 결국 그와 결을 함께하는 것”이라며 “조 전 장관 수사로 속도가 떨어졌지만 수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수사를 견인한 시민사회가 조국 사태 이후 분열한 것도 삼성에는 호재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참여연대에서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폭로를 이끈 김경율 회계사는 조 전 장관 수사 국면에서 갈등을 빚고 참여연대를 탈퇴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9월 대법원의 국정농단 선고 뒤 이재용 부회장의 빠른 소환조사를 촉구하는 논평을 낸 뒤,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김경율 회계사는 “검찰 수사는 이재용 부회장의 관여 여부에 대한 규명 정도를 남겨두고 있었다”며 “중요한 순간에 시민사회가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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