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하기에 앞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요즘 서초동 검찰청 담장 안팎에서 단연 화제는 ‘검찰오적’이다. 일제에 주권을 팔아넘긴 이완용 등 을사오적(1905), 그걸 패러디한 김지하의 담시 ‘오적’(1970)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데, 구체적인 이름까지 오르내린다. “마음에 안 들어도 ‘도둑 적(賊)’자까지 쓰는 건 과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주거니 받거니 이름을 맞혀볼 정도다. 대략 ㄱ, ㅇ, ㄱ, ㅇ, ㅈ 정도로 압축되는 명단의 면면은 검사이면서 하나같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눈에 띄어 ‘중용’되거나 ‘역할’을 부여받았던 사람들이다.
대개는 호사가들의 입방아라며 웃어넘기지만, 이 ‘심각한 농담’에서 검찰의 현주소를 ‘발견’하는 사람들도 있다. 검찰이 한때 적폐로 내몰렸던 ‘조국 사태’를 넘어 일종의 안도와 자신을 되찾은 것 같다는 것이다. 지난 6일 검찰총장 지시라며 느닷없이 발표된 ‘세월호 참사 전면 재수사’ 방침도 그런 신호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정확히 2년 반 전 세월호 사건에 ‘부채감’ 같은 것을 드러낸 적이 있다. “어린 학생 수백 명이 영문도 모른 채 죽었는데, 저 사건의 원인과 책임자를 규명하지 않고는 다른 사건 수사를 할 수가 없다.”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석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그가 언급한 ‘다른 사건 수사’가 수없이 진행된 그 후 2년 반 동안 세월호 재수사는 낌새조차 없었다.
<한겨레>가 검찰 내부 취재를 통해 지난 2014년 7월 말 당시 해경 123정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앞둔 검찰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빼도록 지시한 것을 비롯해 검찰의 세월호 수사에 ‘외압’을 넣은 배후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라는 의혹을 여러 차례 보도(법조외전 49-
‘세월호 수사’ 찍어누른 황교안, 끝내 그를 비호한 검경에 총정리)했음에도 검찰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검찰이 갑자기 11월6일 세월호 사건 전면 재수사 방침을 밝힌 것이다. 윤 총장 취임 후 첫 특별수사단 구성도 발표했다. 물론 검찰은 ‘갑자기’가 아니다, 윤 총장이 늘 세월호 사건에 부채의식이 있었다고 말한다. 2년 반의 침묵이 꺼림칙하긴 하지만, 윤 총장의 발언에서 나름의 일관성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왜 2019년 11월, 지금인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구조 학생 후송 지연’ 문제도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별도 수사단을 꾸릴 정도의 수사 단서로는 미흡하다고 법조인들은 말한다. “건다면 직무유기 정도가 가능할 텐데, ‘고의적 방기’를 입증하지 못하면 법원에서 유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그밖에 결정적 증거가 새로 발견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다른 각도의 해석들이 나온다. 윤 총장은 한동안 ‘적폐수사’의 영웅이었다. 실제 여권의 대접이 그랬다. 다섯 기수를 건너뛴 파격적인 총장 승진, 문재인 대통령의 ‘우리 윤 총장님’이라는 호칭, ‘윤석열 사단’을 검찰 요직에 전면 배치한 인사는 적폐수사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여당의 원내대표는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로 거듭나게 할 적임자”라고 평했고, 대변인도 “부당한 외압에 흔들림 없이 원칙을 지킴으로서 검찰 내부는 물론 국민적 신망도 얻었다”고 상찬했었다.
그랬던 윤 총장이 ‘조국 수사’를 개시하자 하루아침에 ‘반개혁’, ‘검찰 적폐의 대명사’가 됐다. 검찰이 애초 예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강력한 반격에 부닥쳤다. 여권이 일제히 등을 돌리면서 윤 총장의 입지도 한껏 좁아졌다. ‘임기 보장’마저 위태로워 보였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며 “조국-윤석열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개혁은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는 말을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법무부 핵심 간부는 “윤 총장이 일단 사표를 내고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조국 사태의 여파로 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취임 후 최저치인 39%(한국갤럽 조사 기준)를 기록했을 무렵이다. 즉 법률로 보장된 2년 임기와 무관하게 임명장을 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큰 부담을 지웠으니 정무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윤 총장은 최근에도 “중도에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다”(검찰 관계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를 따르는 ‘윤석열 사단’은 위기감을 가질만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전면 재수사는 윤 총장과 검찰에 회심의 ‘반전 카드’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검찰은 세월호 유족들, 그들을 지지하는 여권 성향 국민의 강렬한 기대를 업게 됐다. 여권은 반색하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이 특수단을 구성해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결정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한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 여권 인사들은 검찰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까지 겨냥하리라는 기대를 부정하지 않는다. 검찰의 조국 수사 초기 윤 총장과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의 ‘내통설’까지 제기했던 박주민 민주당 최고위원조차 두 손 들어 반겼다. 자연스럽게 윤 총장의 조국 수사 책임론은 사그라지고, ‘균형 맞추기’ 효과도 거둘 수 있다. 2년 임기 보장은 덤이다. 대검은 이번 재수사가 윤 총장의 지시, 즉 ‘총장의 직접 지휘 사건’이라는 점을 유달리 강조하고 있다. 이제 다시 ‘윤석열의 시간’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윤 총장이 세월호 재수사를 직접 지휘한다는 데, 누가 사표 얘기를 꺼낼 수 있겠나. 이 카드로 윤 총장 재신임 얘기는 쏙 들어가게 될 것이다. 국회 패스트 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 수사는 예정, 예고돼 있던 거라 ‘신선’한 뉴스가 아니다. 누가 해도 할 수밖에 없는 수사니까. 또 ‘원외’인 황교안 대표한테까지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세월호 재수사는 다르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시점에 전격적으로 칼을 빼 들어 ‘아 드디어 검찰이 수사를 하는구나’ 하는 안도감을 주었다. ‘외압’을 수사하게 되면 종착점은 황 대표가 될 수밖에 없다.” (검찰의 한 간부)
임관혁 세월호 특별수사단장이 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브리핑룸에서 수사단 출범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번 수사는 정해진 기한이 없다. 임관혁(53·사법연수원 26기) 수사단장의 일성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미진한 부분은 다 훑어서 더는 맺힌 한이 없도록 매듭짓고자 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으니, 제법 시간이 걸릴 수사라는 뜻이다. 검찰 안팎에서도 “내년 4월 총선까지 가는 수사”라고들 예상한다. 구체적으로 ‘사고 원인→침몰·구조 실패 책임자 처벌→외압 규명’의 순으로 수사가 진행될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수사단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려면 2014년 검찰 수사를 넘어서는 ‘무엇’을 찾아내야 한다. 이미 여러 차례 수사와 재조사가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을 일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수사의 책임자들은 문 정부 들어 검찰의 핵심 요직에 기용돼 있다. 2014년 당시 사고 원인 규명 수사를 맡았던 목포지청장은 현재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있는 이성윤 검사다. 당시 해경 수사를 담당했던 윤대진 광주지검 형사2부장은 현재 수원지검장이 돼 있다. 두 사람 모두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파견 검사로 문 대통령과 ‘민정수석-특별감찰반장’의 인연을 맺은 덕분에 이 정부 들어 계속 중용됐고, 윤 지검장은 윤 총장이 “친형제나 다름없다”고 말한 사이다.
2014년 당시 법무부와 대검 사정을 잘 아는 한 법조계 인사는 “수사단은 이성윤과 윤대진이 했던 사고 원인 규명과 해경 수사를 넘어서야만 하는 부담이 있다. 근데 그게 쉽겠냐”며 “결국은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은 ‘외압’ 부분에서 성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요컨대 2014년 당시 ‘외압’의 배후로 지목됐던 황교안 대표가 이 수사의 정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시 청와대가 법무부에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임 단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미진한 부분을 스크린(검증)하고 채워 넣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사실만으로도 황 대표에겐 상당한 부담이 된다. 황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2위를 달리고 있다. 총선 일정에 가까워질수록 수사의 파장은 더 커지게 된다. 총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2014년 세월호 수사 당시 법무부의 전·현직 간부들이 줄지어 소환된다고 가정해 보자. 황 대표 조사 가능성이 주요 뉴스로 반복해서 거론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자유한국당에겐 엄청난 악재가 되고, 민주당엔 야당 공격의 호재가 된다. 윤 총장이 의도했든 아니든 세월호 전면 재수사는 여권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며 총선 정국을 뒤흔들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문 정부가 추진 중인 크고 작은 검찰개혁에도 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세월호 재수사라는 명분 앞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 특별수사 축소 방침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수사단 설치 자체가 그런 방침을 우회한 것이다. 법무부 검찰개혁위원회는 ‘파견 검사 축소’와 ‘사건 무작위 배당’까지 말하고 있는데, 검찰은 보란 듯이 전국 단위에서 수사 검사들을 콕콕 집어 8명 규모의 수사단을 구성했다. 수사가 진행되면 인원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수사단 이름에는 얼마 전 문패를 내린 ‘특별수사’까지 들어갔다. 수사단은, 지금은 없어진 과거 대검 중수부와 위상, 규모가 비슷하다. 한 달을 넘는 검사 파견은 법무부 장관이 필요하지만, ‘세월호’라는 수사 명분은 검찰개혁을 압도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초기와 상황이 흡사해 보인다. 당시 법무부는 대검 간부들을 포함해 대규모 개혁 인사 등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대검 중수부가 불법 대선 자금 수사에 전면적으로 나서면서 그걸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버렸다. 결국 타이밍을 놓쳤다. 수사권을 (정부가) 건드릴 때 검찰이 꺼내 들 수 있는 최선의 카드는 강력한 ‘수사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수비다. 중요한 수사를 한다는데 권한을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문 정부 들어 검찰의 직접 수사권에 손을 대지 않은 건 적폐수사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세월호 재수사가 그런 역할을 이어가게 됐다. 조국 전 장관 부임 이후에 나온 조사시간 제한, 심야 조사 금지, 피의사실 공표 금지, 파견 검사 제한 같은 것도 이번 수사를 계기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겠다는데 규정이 대수냐’고 할 수 있지 않나.” (특수통·검사장 출신 변호사)
검찰 안팎에선 수사단 단장을 맡은 임관혁 안산지청장의 ‘전력’이 새삼 논란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왜 하필 임관혁이냐’는 것이다. 대검은 “회의에서 ‘가장 지독하게 수사할 사람’을 고르다 보니 임관혁으로 의견이 모인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에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특별한 ‘인연’, 그리고 특정 수사에서의 실책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임 단장은 2005~2006년, 2년간 우 전 수석이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으로 일할 때 그 아래서 평검사로 근무했다. 이 짧지 않은 근무연 탓에 임 단장은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검찰 내부에서 ‘우병우 라인’으로 분류돼왔다. 일부에선 경합이 치열한 서울중앙지검의 특수 2, 1부장을 연임한 임 단장의 이력이 우 전 수석의 배려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 전 수석은 민정비서관이던 2014년 세월호 수사를 위해 해경 본청 압수수색에 나선 윤대진 당시 해경수사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압수수색 중단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지대한 관심과 개입 의도가 잠깐 노출된 장면인데, 임 단장은 이번 재수사의 어느 지점에선가 우 전 수석과 맞닥뜨릴 수도 있다.
임 단장은 또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때 ‘정윤회와 십상시 문건 사건’을 수사하면서 문건의 ‘유출 경위’에만 초점을 맞춰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내용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지라시(사설정보지) 얘기”라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멈춘 반면, 박 전 대통령이 “국기 문란 행위”라고 맹비난했던 유출에 대해서는 박관천 전 경정을 구속하고,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각당했다. 조 전 비서관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를 강행했으나, 1·2심에서 연거푸 무죄를 받았다.
이 수사 과정에서 나온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순위는 최순실”이라는 박 전 경정의 진술은 나중에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 그래서 한동안 검찰 내부에선 당시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를 겨냥해 “정윤회 문건 수사만 제대로 했으면 최순실 게이트도, 검찰의 (늑장 수사에 따른) 치욕도 없었을 것”이라는 비판의 말이 돌았다. 임 단장이 바로 아래 부장으로 지명한 조대호(46·연수원 30기) 대검 인권수사자문관은 정윤회 문건 수사 당시 특수2부의 수석 검사로 호흡을 맞춘 뒤 임 단장이 특수1부장으로 옮겨갈 때 부부장으로 승진해 동행한 사이다.
“조국 전 민정수석이 2017년 5월 임명되자마자 제일 먼저 재조사하겠다고 천명했던 것이 바로 정윤회 문건 사건이다. 물론 그 뒤로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아직도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사건의 주임검사를 다른 사건도 아닌 세월호 재수사에 투입한 윤 총장의 결정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건 임 단장은 다음번 검사장 승진 1순위 번호표를 받은 셈이다. 자기보다 한 기수 아래인 한동훈 대검 반부패부장 등 27기가 이미 2명이나 검사장이 된 상황이라 밀렸다는 조바심이 있었을 텐데 이번 인사로 안정권에 들었다. 임관혁에게 확실한 검사장 승진 기회를 주겠다는 것 말고는 이번 인사의 의미를 모르겠다. 그 또래 특수통이 임관혁만 있는 것도 아닌데….” (대검 간부 출신 변호사)
수사단은 11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문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돌고, 조국 수사가 계속 중인 상황에서 윤 총장의 이번 ‘묘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진의는 결국 시간이 가려줄 터이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