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엘의 마지막 짐가방을 꾸리던 친구가 가만히 다가와 티엘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나를 도와주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사무치게 고마운 그 마음들, 고스란히 고향에 품고 갈게요.”
천만의 서로 다른 삶이 펼쳐지는 서울, 다세대주택이 촘촘히 이어지는 어느 동네의 골목길 단칸방에서 티엘(가명)을 만났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행을 감행한 여느 이주노동자처럼 2001년 그도 고국에 남은 가족과의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인생의 다음 장을 펼쳤다. 그러나 지금 그는 아픈 몸으로 귀향을 준비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던 티엘은 통증을 더는 견딜 수 없게 되어서야 친구들과 병원을 찾았고, 자궁경부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항암치료를 받으면 기대할 수 있는 여생을 2년, 치료를 포기할 경우 1년 정도로 가늠했다. 희망을 놓지 않았기에 병증만 생각한다면 한국에서 치료를 받는 쪽이 낫다. 그러나 지금도 공장에서 3교대로 일하는 동료들이 잠을 줄여가며 겨우 그를 돌보고 있고, 치료를 시작하면 들게 될 비용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티엘은 귀국을 택했다.
한국에 도착한 티엘이 이 거대한 도시에 흔적 없이 스며들었던 것처럼, 그의 떠남도 뜨는 해와 함께 사라지는 아침 이슬 같았으리라. 그러나 자캐오 신부는 그를 그리 떠나보낼 수 없었다. 자캐오 신부는 지역의 다양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섬기는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원장 사제이다. 할 일은 넘쳐나지만 재정은 늘 부족해 단체는 활동가마저 줄인 처지였고 공동체 안에는 티엘 외에 다른 환자들도 있었다.
3교대 근무 중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티엘을 돌보는 친구들이 그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하지만 자캐오 신부는 여러 고민을 접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티엘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그가 돌아갈 본국은 한국에 비해 의료 환경이 매우 안 좋은 곳이라 그를 위해 최대한 많은 돈을 모아 전달할 생각이라고, 그마저 없다면 본국에서 그가 맞이할 생의 마지막 기간은 더욱 어려울 테니. 티엘을 보호하기 위해 본명이나 국적, 정확한 나이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공유되고 댓글이 이어졌다. 얼굴도 모르는 이방인의 평안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였다.
티엘을 찾아간 날, 그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짐을 꾸리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그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과연 그에게 무엇이 남았나. 그래도 그가 고향까지 가져가고픈 가장 소중한 한가지가 있을까. 짐가방에 옷가지 등 소소한 살림살이만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며 물었다.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이라고 티엘이 답했다. 지금 그의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과 용산나눔의집 식구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자신을 위해 마음을 모아준 그 많은 한국 사람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티엘은 울었다. 일손을 멈추고 침대에 누운 그를 다독이던 친구가 티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티엘이 처한 상황을 처음 알게 된 9월 어느 날, 자캐오 신부는 `힘없는 이들의 삶과 권리는 언제나 나중으로 미뤄진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삶과 권리를 지키겠다”며 나선 그에게 많은 이가 손들어 함께했다. 선뜻 더 큰 우리가 되어준 이들에게 티엘과 자캐오 신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고마움을 전한다. 오늘 내민 그대 손의 온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불씨로 옮겨지다, 훗날 삶의 어느 순간에 다시 그대와 마주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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