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 관련 수사 과정에서 달아오른 ‘피의사실 공표죄 ’ 논란은 피의사실 공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공보준칙 개정·시행이 연기되면서 한풀 가라앉았다 . 하지만 검찰 수사 보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 이에 대한 답을 찾지 않으면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시민권 침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은 ‘검찰 공화국’이고, 검찰에 대한 정보는 언론으로부터 나온다. 사회 갈등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서초동 검찰청으로 수렴되는 나라에서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으로 자리잡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두 개의 칼을 쥐고, 기소편의주의와 기소독점주의라는 날개까지 달고 있다. 이런 검찰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토록 중요한 검찰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만난다. 우리가 아는 검찰은 언론이 전하는 검찰이다. 그럼에도 검찰에 대해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검찰 수사를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도 찾아보기 어렵다. 정권이 바뀌어도 강고하게 유지되는 ‘검찰 공화국’의 비밀은 여기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18일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서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히 금지하는 ‘형사사건 수사공보 개선 방안’을 자신의 가족 관련 수사가 마무리된 뒤에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개정안이 ‘조국 지키기’를 위한 것이라는 공격이 쏟아지는 마당에,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타이밍’ 논란에서 벗어나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져볼 시점이 됐다. 피의사실 공표는 당략과 정쟁의 제물로 삼고 치우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피의사실 공표죄 1953년 제정…수사관계자 처벌은 0명
형법 제126조에 규정된 피의사실 공표죄는 수사기관 종사자가 직무 수행 중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 외부에 알릴 경우 처벌하는 조항이다. ‘피의자’는 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과 달리 아직 형사소송의 당사자가 아니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수사기관은 판관이 아니다. 그저 혐의를 의심할 뿐이다. 법정에서 무죄가 나오면 그 의심은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 검사의 의심을 받는다고 해서 피의자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시민의 눈에 피의자는 곧 범죄자를 의미한다.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혐의 내용이 마치 확정된 사실인 양 언론에 보도되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공소 제기 전부터 수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피의사실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여론으로부터 유죄를 선고받게 되면 이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기 어렵다. 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여론의 기대를 뒤집는 판결을 내리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고, 언론 보도로부터 유죄의 심증을 갖게 될 수도 있다. 피의사실 보도가 비판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일정한 수준의 피의사실 보도는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종류의 범죄에 대한 수사 정보는 그 자체로 공익성을 띤다. 고위공직자의 비리,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 국민의 안전에 직결된 범죄의 경우가 그렇다. 가령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수사 과정을 언론이 보도하지 않고 지나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뿐 아니다. 형사소송 절차를 독점하는 검찰이 정치인과 재벌 등 권력 집단을 수사할 때 국민들은 수사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신뢰하지 못한다. 시민사회가 검찰 수사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면, 언론이 수사 과정에 대한 보도를 통해 그 역할을 대신 할 수 있다. 검찰이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중대한 사건을 덮으려 할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힘은 언론에 있다.
이 때문에 피의사실 공표 문제의 본질은 흔히 ‘피의자 인권 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가치 사이의 충돌로 이야기된다. 법 논리 차원에서는 정확한 분석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절반의 진실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문제가 놓여 있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정치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배제된 진단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비극에도 변화 없어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와 보도 관행이 고착화한 원인은 검찰과 언론의 공생에서 찾아야 한다.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급소는 권력의 공백을 틈타 검찰과 언론이 스스로 권력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데 있다. ‘언론 권력’과 ‘검찰 공화국’이 차례로 탄생한 것이다. 권력화된 검찰과 언론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손을 잡고 서로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검찰과 언론의 밀월관계는 각자가 독점하는 것을 주고받는 형태로 맺어졌다. 검찰은 수사에 관한 정보를, 언론은 정보를 시민에게 제공하는 채널을 독점한다. 정보는 있지만 전달을 할 수 없었던 검찰과, 전달은 할 수 있지만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언론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거래는 성사된다. 언론은 보도의 소스를 얻고, 검찰은 여론에 접근할 수 있는 채널을 얻는다.
검사들은 흔히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말한다. 죽은 수사가 살아나는 비결은 언론플레이에 있다. 검찰은 언론에 정보를 흘리며 수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조직에 득이 되는 수사는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키웠고, 조직에 해가 되는 수사는 여론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 덮었다. 대개 전자는 ‘죽은 권력’을 겨냥한 수사요, 후자는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한 수사였다.
언론을 움직여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을 ‘기정사실’로 만듦으로써 피의자를 압박하고 재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도 했다. 언론이 피의자에게 범죄자라는 낙인만 찍어주면 법원으로부터 유죄를 받아내기가 한결 쉬웠다. 검찰 권력화의 싹은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 제도의 맹점에 숨어 있었지만, 그 싹에 물을 주어 키운 것은 분명 언론이었다.
상업주의에 매몰된 언론은 검찰로부터 남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제공받아 한발 먼저 보도함으로써 치열한 단독 경쟁에서 앞서나가고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 검찰은 때로는 언론사의 입맛에 맞게 수사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해주었고, 언론 기업의 부정을 눈감아주기도 했다.
나아가 언론은 검찰에 의존하게 되면서 힘겨운 사실 확인과 검증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됐다. ‘검찰의 말이 곧 팩트’라고 주장하면 되기 때문이다. 언론은 그저 검찰의 입만 바라보고 ‘받아쓰기’만 하면 됐다.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의 말대로, 검찰과의 관계에서 언론은 ‘우리에 갇혀 사육사가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생존하는 동물’과 다름없었다.
검찰과 언론의 공생이 빚어낸 최악의 비극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였다. 그를 겨냥한 수사 기간 내내 보수언론들은 검찰보다 한발씩 앞서가며 혹독한 수사를 재촉했고, ‘논두렁 시계’ 등 수많은 피의사실이 아무렇지 않게 언론에 오르내렸다. 검찰과 언론이 한배를 탈 때 내버려지는 것은 시민들의 기본권이다. 그 권리의 사각 안에서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조차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큰 희생을 치르고도 윤리적 각성이나 제도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사후인 2010년 기소 전 수사 내용 공개를 제한하는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 준칙’을 마련했지만, 끝내 구두선에 그쳤다.
1953년 제정 이래 현재까지 피의사실 공표죄로 수사 관계자가 기소돼 처벌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피의사실을 공표한 사람을 색출해 처벌하는 주체가 검찰인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검찰은 제 머리를 깎을 의사가 조금도 없어 보인다.
법무부의 수사공보 개정안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히 제한해 인권 침해를 막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의 문제의식과 개선 방향은 두말할 나위 없이 옳다. 지금과 같은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를 계속 방치할 수 없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모든 형사사건에 대한 정보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지극히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더 신중한 검토와 섬세한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피의사실 공표가 범람하게 된 한국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외국의 법령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하거나 소박한 법 논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시도는 자칫 의도하지 않은 위험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과도한 정보 통제가 검찰과 극소수 언론의 정보 독점을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과 언론을 ‘내부자들’로 만든 것이 정보의 독과점이다. 권력을 향한 검찰의 욕망은 그대로 둔 채 수사 정보의 공개만 막는다면, 검찰은 자신에게 집중된 정보를 지렛대 삼아 새로운 형태의 흥정을 시도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 사후에 만든 공보준칙도 편의적으로 악용해온 검찰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는 입맛대로 흘리면서 불리할 때만 피의사실 공표죄를 방패 삼아 침묵하는 식이었다. 검찰은 조직의 이해관계에 따라 예외적 공개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정치적 무기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정보가 온전히 통제되기는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보도들은 대부분 공식 브리핑이 아닌 은밀한 취재원, 즉 ‘빨대’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피의사실 공개의 전면적 통제는 ‘빨대’를 통한 교묘한 정보 유출을 부채질할 수 있다.
언론이 수사 정보에 공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당한 상태에서는 ‘단독’ 경쟁이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 피의사실 보도는 계속 쏟아질 것이다. 언론이 ‘빨대’를 통한 파편화된 정보 추구에 나서면서 추측성 보도와 오보로 인한 인권 침해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밀실 간담회는 이제 그만…정보 유통 투명해져야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를 근절하려면 근본적으로 검찰과 언론이 유착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 지금과는 반대로 되도록 많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도록 공유해 검찰과 언론의 정보 독과점을 해소해야 한다. 유통 가능한 모든 정보를 양성화하여 권력기관들이 물밑거래를 할 만한 자원을 고갈시키자는 것이다.
예컨대 중대 범죄 수사의 경우 피의사실 일부를 원칙적으로 공개하는 방향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때 피의사실의 공개는 검사와 기자들만의 밀실 간담회가 아닌, 생중계되는 공개 브리핑을 통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어떤 정보를 어떻게 공개할지를 검찰 지휘부의 판단과 재량에 맡겨서는 안 된다. 공개 범위는 검찰의 비중이 최소화된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한다. 비검찰 법조인과 시민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검찰은 위원회 결정에 무조건 따르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검찰에 대한 문민 통제다.
핵심은 검찰과 언론이 상호 의존하는 구도를 상호 견제하는 구도로 바꾸어내는 것이다. 정보의 투명성이 높아질수록 검찰과 언론이 은밀히 만나야 할 동기는 줄어든다. 서로가 견제의 대상이 된다면 피의사실을 주고받으려는 유혹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워질 것이다. 권력기관들 간의 거리는 멀수록 시민들에게 좋은 법이다.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2009년 6월12일 이인규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