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이 새삼 이채롭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달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을 받기에 앞서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윤석열 검찰총장의 ‘1호 사건’ 수사 대상이 조국 후보자일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그만큼 검찰의 27일 압수수색(압색)은 신속하게, 전격적으로, 수사 상식을 깨고서 이뤄졌다.
검찰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의혹과 관련해 압색을 한 전례는 찾을 수가 없다. 처음 보는 일이다. 압색 대상에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 의혹이 제기된 곳이 거의 망라됐다. 속도와 강도, 폭 모두에서 이번 압색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정치권이 난항 끝에 인사청문회 일정에 합의한 바로 다음날이라 파급력은 배가됐다. 누군가는 과장을 좀 보태 ‘검찰 쿠데타’라는 표현까지 썼다.
기자단 공지)문의가 많아 답변드립니다. 오늘, 입시, 사모펀드, 부동산, 학원재단 등 관련 사건 수사를 위하여, A의전원, B대학교, C사모펀드, D학원재단 관련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였음. 본건은 국민적 관심이 큰 공적 사안으로서, 객관적 자료를 통해 사실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크고, 만약 자료 확보가 늦어질 경우 객관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임. (
특수2부)
이례적으로 집에 머물던 조 후보자는 오후가 돼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명 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전에 광화문 사무실로 출근했었다. 당혹한 청와대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며 입을 닫았고, 여당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법조계에선 크게 두 가지에 주목했다. 우선 검찰 공지의 맨 끝에 있는 ‘특수2부’다. 그동안 명예훼손 사건을 주로 다루는 형사1부가 조 후보자 관련 사건을 맡고 있다고 알려졌는데, 수사 주체를 인지부서로 바꾼 것이다. 정치적 색채가 강한 고발 사건을 인지부서로 재배당하는 일은 매우 드문 데 10여 개 고발 사건 전부를, 부패 범죄를 전담하는 특수2부로 재배당했다. 물론 윤석열 총장의 재가를 받아서다. 단순한 고발 내용을 넘어 ‘+알파’를 밝히겠다는 검찰의 의지가 드러난 대목으로 일단 해석된다.
게다가 8월 인사로 새로 부임한 고형곤(사법연수원 31기) 특수2부장은 과거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팀에 파견돼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혐의를 전담 수사했다. 말하자면 ‘대입 부정’ 사건 전문가인 셈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고 부장이 특검 때 그쪽 수사를 아주 집요하고 깔끔하게 잘했다”고 말했다. 삼성바이오 수사를 맡고 있는 특수4부를 제외한 특수1~3부 가운데 유독 특수2부를 콕 집어 이 사건을 재배당한 데는 이런 고 부장의 능력과 경험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다음은 시점, 즉 수사의 속도다. 통상 압색이나 출국금지는 수사 ‘액션’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진다. 검찰 안팎에선 적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뒤 검찰이 나서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빗나갔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그래서 검찰의 의도가 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 “(수사) 상식을 깨는 압색이라서 아침에 소식 듣고 깜짝 놀랐다. 너무 일찍 발을 담근 것 아닌가 싶다”(검찰 관계자)는 반응이 나온 것은 검찰의 이번 압색이 기존 ‘수사 문법’을 완전히 파괴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농반진반, “윤 총장이 문 대통령의 당부대로 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달 25일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집권 세력에 대해서도 공정한 수사가 필요하고, 그래야 권력 부패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조하는 것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눈치도 보지 않고 아주 공정하게-자세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 청와대든 정부든 여당이든 그쪽에 대해서도 정말 공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라고. 그렇게 해야만 권력 부패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말씀’을 곧이곧대로 듣고 그대로 따른 것인지, 다른 심모원려가 있어서인지는 당장 확인하기 어렵지만, 이 시점의 궁금증은 ‘왜 하필 지금 압색에 나섰느냐’로 모인다.
그에 대한 공식 답변은 27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 이유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공적 사안이라고 신속하고 효율적인 수사를 위해서다. (…) 제기된 의혹에 대해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자료 확보가 늦어지면 사실관계 규명이 어려워질 것 같았다. 그외 다른 사정은 없다.” 한마디로 수사 초기, 자료 확보 차원이라는 것이다.
검찰에는 때늦은 ‘늑장 압색’ 혹은 ‘제한 압색’으로 두고두고 두들겨 맞은 ‘쓰라린 과거’가 많다. 대충만 헤아려도 이명박 정부 때 국무총리실 윤리지원관실 사건, 박근혜 정부 들어 정윤회 문건 사건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처가 땅 특혜 매각 의혹, 특히 ‘최순실 게이트’ 수사 때 그랬다. 이를 모르지 않을 검찰 지휘부로서는 이왕 피해갈 수 없는 사안이니 발 빠르게, 관련 자료가 인멸되기 전에 확보하자고 했을 수 있다. 순전히 수사 실무적인 판단에서라면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만 생각하기엔 압색의 파급 효과가 너무 크다. 형사소송법의 압수수색은 증거 확보 차원의 초기 액션에 불과하지만, 국민정서법상 압수수색은 ‘범죄 혐의’의 낙인을 수반한다. 게다가 그 대상이 곧 자신들을 지휘할지 모를 법무부의 예비 수장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조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 혁명의 상징’이라고 추켜세운 일종의 아이콘이다. 며칠 새 누더기가 되긴 했지만, 대통령의 신뢰도, 지지자들의 팬덤도 여전하다. 정치권이 인사청문회 일정에 거의 합의해가고 있었으니 검찰로서는 더 지켜봐도 무방했다.
● “이건, 당연히 총장(윤석열)의 결심이다. 윤 총장이 후배들 얘기에 약하긴 하다. ‘총장님, 이거 지금 확보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틀림없이 문제 됩니다’라고 건의했을 수 있다. 그러나 최종 결심은 총장이 한 거다. 그 생각이 뭘까. 윤 총장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여기서 검찰이 세게 나가면 문 정부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 무엇보다 자신과 문 정부의 관계가 몹시 불편해질 거다. 나중 수사 성과에 따라 검찰에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조국 일가에서 구속자가 나오지 않고는 박수 못 받을 수사다. 탈탈 털어봤는데 아무 것도 없더라고 하면 ‘면죄부’ 줬다고 하지 않겠나. 게다가 조 후보자가 기어이 장관으로 임명되면 특검 도입이 불가피해진다. 지휘권자를 수사한 검찰의 결론을 누가 믿겠나. 그러니 청문회 등 상황 지켜보고, 진술 내용 봐가며 해도 늦지 않은데, 이렇게 전격적으로 들어간 것은 ‘이쯤에서 그만 물러나라’는 메시지인 것 같다.” (윤 총장을 잘 아는 선배 검사 출신 변호사)
● “총장을 하다 보면 자신을 임명해준 청와대(대통령)와 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드시 온다. 검찰총장의 숙명이다. 그런데 윤 총장한테는 그 시점이 좀 일찍 찾아온 것 같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여러 상황을 종합할 때 정면돌파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 아닐까.” (전직 검찰총장)
물론 법조계 일부에선 ‘약속대련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장면을 연출해 의욕은 과시하되 압색의 실질적 효과는 의도적으로 최소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조 후보자의 집과 사무실이 압색 대상에서 빠진 것을 주요 근거로 든다. “조 후보자를 살리는 길은 검찰이 끊어주는 ‘법적 면죄부’밖에 없다. 그런데 가장 많은 증거가 남아 있을 후보자 집과 사무실 등을 압색 대상에 넣지 않은 것은 겉으로 드러난 외양만큼 수사 의지가 있지 않다는 방증이 아닐까.” (검찰 출신 변호사)
어렵게 잡힌 인사청문회가 뜻밖에 맹탕이 될 개연성도 커졌다. 청문회에서, 특히 조 후보자는 물론 여당 의원들이 각종 의혹들에 대해 ‘검찰이 의지를 갖고 수사 중이니 결과를 지켜보자’며 방어막을 칠 명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청문회가 열리고, 재송부 요청 한 번이면 문 대통령으로선 ‘합법적으로’ 임명 절차에 들어갈 길이 열린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쇼라고 하기엔 이날 압색으로 입은 조 후보자와 문 정부의 타격이 상당하다. “검찰 수사받는 주제에 무슨 법무부 장관을 하느냐”는 야당의 공격에 한층 힘이 실렸다. “조 후보자의 집과 사무실을 압색 대상에서 뺀 것은, 수사의 에이비시(ABC)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 정도 할 때 나가라’는 의미로 최소한의 예우와 강력한 경고를 한 것 아니겠냐”(검찰 관계자)는 해석도 나온다. 검찰이 법무부를 통해 청와대에 압색 계획을 사전에 보고한 것 같지도 않다.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볼만한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사실이 어느 쪽이든, 문제는 압색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압색은 수사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런데 일반적인 예상보다 훨씬 일찍, 크고 장대하게 ‘서곡’을 연주한 모양새가 됐다. 수사 결과에 대한 기대치도 한껏 높여놨다. 그만한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검찰에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검찰의 전격 압색이 정면돌파였는지, 약속대련이었는지도 수사 결과에서 드러날 일이다.
검찰은 “당분간 압수물 분석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압수물 들고 앉아 노려만 볼지, 사람을 부를지, 부른다면 누구부터, 언제 부를지 이 모든 게 주목받는 상황”(특수통 출신 변호사)이 됐다. 검찰은 청문회도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후보자 본인은 물론 증인이나 참고인의 진술도 수사팀의 모니터링 대상이다. 검찰이 갖고 있는 증거물과 맞지 않은 진술을 하는 사람은 나중에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위증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청문회가 정치 과정을 넘어 수사 과정의 일부로 편입된 셈이다.
이처럼 예상 밖 압색으로 ‘조국 정국’에서 차지하는 검찰의 역할과 비중은 엄청나게 커졌다. 검찰이 심판자로 부상했다.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른바 ‘조국의 역설’이다.
조 후보자는 오랜 기간 자신을 검찰 개혁의 유일한 적임자로 ‘포지셔닝’해 왔다.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검찰 개혁을 못 할 것처럼 말해왔다. 계속해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학생 1천여 명이 ‘조국, 스톱’을 요구한 다음 날인 지난 25일 출근길에도 그는 검찰 개혁을 강조했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를 이행하라는 국민의 뜻과 대통령님의 국정철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면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저와 제 가족이 고통스럽다고 하여 제가 짊어진 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무슨 신앙인처럼 보인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인정하시면서도 검찰 개혁을 완수할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검찰 개혁이나 법무행정의 개혁은 우리 국민 전체의 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에 대한 따가운 질책 받아 안으면서 이 문제는 제가 계속 고민하고 추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8월26일 출근길, 기자들과 문답)
그런데 그가 인사청문회를 포함한 정치 과정에 검찰이 깊숙이, 과잉 개입하도록 길을 열어준 셈이 됐다. 물론 고발이 검찰 개입의 빌미가 됐지만, 조 후보자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국민의 60% 이상이 법무부 장관 부적격자(KBS·중앙일보 등 조사)라는 데도 그 자리에 연연하면서 생긴 일이다. 정치 검찰을 개혁하겠다던 조국이 검찰의 과잉 개입을 불렀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검찰 출신 법조인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광화문 풍경을 떠올렸다. 그만큼 충격적이고, 초유의 일이라는 뜻에서다. 윤 총장과 가깝고 조 후보자와도 잘 아는 사이지만, 비판이 매서웠다.
“이 정도면 광화문 네거리에 탱크가 나온 거나 마찬가지다. 군인이 아니다뿐이지 (압색이라는) 병장기를 들고나온 것 아닌가. 늘 유례 없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 게 우리나라라지만, 이건 상상초월 그 자체다. 누가 이 시점에 검찰이 저렇게 나오리라고 예상이나 했나. 어쩌면, 누군가는 초임 검사 때부터 꿈에 그리던 상황이 온 건지도 모르지만. 국민에게서 권력을 위임받지 않은 권력(검찰)이 수권 권력을 타고 앉는 상황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저런 게 극단적으로 가면 ‘검찰 파쇼’가 되는 것이다. 검찰이 이렇게 적극 개입한 마당에 국회 청문 절차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모든 시선이 다 서초동으로 쏠리고 있는데…. 수사가 과했다든지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이건 조국 후보자가 낙마하든 살아남든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검찰 개혁을 말하면서 직접 수사권을 존치하고,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전면·전진 배치할 때부터 제기된 우려가 금방 현실이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드리운 ‘조국의 그늘’이 예상보다 크고 길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