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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가위손은 노동자’ 대법 마침표가 필요해

등록 2019-08-21 22:32수정 2019-08-22 10:26

‘무늬만 사장님’ 헤어디자이너들의 염원

손님당 인센티브 도급계약 하지만
출퇴근 통제·업무지시 등 근로자 취급
퇴직금 요구에 점주와 갈등 빈번
하급법원 “노동자 맞다” 판결 잇따라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방치 안돼” 지
“점심식사 시간이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 있네요. 부원장님과 상의 후에 페널티를 만들고자 합니다.”

2014년부터 서울 강남 한 고급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일한 이아무개(29)씨의 카톡방에 뜬 메시지다. 미용실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은 미용실 업주의 각종 지시나 공지가 전달되는 통로였다. 20여명이 일하는 미용실에서 이씨는 업주와 손님이 결제한 금액의 20~30%를 받는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실상은 미용실에 소속된 노동자와 다름없었다. 출퇴근을 비롯한 일과와 업무가 철저한 통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전 9시30분에 출근해 1시간 동안 미용실 청소와 아침 조회가 이어졌다. 지각하면 새 고객 ‘베팅’(배당)에서 한차례 제외되는 벌칙을 받았고, 점심시간은 40분으로 제한됐다.

이씨가 미용실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미용실 업주는 ‘인센티브로 지급된 선불금 일부를 돌려달라’며 민사소송을 냈다. 이에 이씨와 또 다른 한 동료는 지난 3월 “우리는 개인사업자가 아닌 미용실에 소속돼 일했던 노동자”였다며 퇴직금과 미지급 임금 3천만원을 지급하라고 맞소송을 냈다.

이씨 사례는 미용업계에서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헤어디자이너는 미용실에 소속돼 업주의 지시를 받아 일하지만, 업주와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을 맺고 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경우 프리랜서에 가까워 노동자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이씨를 대리한 이호영 변호사(법무법인 삼율)는 “‘능력에 따라 인센티브를 가져간다’는 명분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것처럼 계약을 체결해 퇴직금, 4대 보험 등을 보장해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사용자 지시·감독을 받아 일하기 때문에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하급심 판단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월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이내주)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미용실 업주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프리랜서인 헤어디자이너에게 퇴직금을 주는 관행은 없다”는 미용실 업주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업주가 단체사진을 찍어 카카오톡방에 올리는 식으로 출퇴근을 관리하고, 1시간 이상 지각하면 지각비 1만5천원을 물리고, 상급자의 업무 지시를 거부하면 퇴사를 원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규칙을 만든 점 등을 들어 “(해당 헤어디자이너는) 사용자에 종속돼 임금을 받으며 노동력을 제공한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5월 서울북부지법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매출액에 따라 수당을 지급받던 헤어디자이너와 퇴직금 지급을 거부한 미용실 업주의 다툼에서 재판부는 헤어디자이너의 손을 들어줬다. “매달 지급받은 보수는 고정급이 아니라 매출액에 의해 정산된 금액이긴 하지만, 이는 노동의 양과 질을 평가하는 것으로 근로 대가인 임금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헤어디자이너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대표 직종이지만, 조직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이 없어 오랜 시간 방치돼왔다. 퇴직금 소송, 산업재해 인정 등의 사례가 쌓이면 근로자로 인정받는 길이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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