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조상땅 찾기’ 나선 친일파 이근호 후손
“특별법의 필요성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친일의 정확한 판단 기준이 뭡니까?”
지난 8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오욕의 근현대사를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움직임에는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 땅 찾기’에 대한 여론의 반발도 한몫했다. 지난달 15일에는 친일파 이근호의 후손이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의 땅 223평을 돌려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을 수원지법이 각하하면서, 친일파 후손들에게 더욱 눈길이 쏠리고 있다.
223평 돌려달라고 소송 냈다가 여론 포화
“특별법은 인정합니다” 이 소송을 낸 이아무개(78)씨는 노환으로 사건 파악이 뚜렷하지 못해, 사실상 소송 당사자인 그의 아들(53)을 자신 소유의 서울 강북의 한 3층짜리 다가구주택에서 만났다. 이씨는 “사업에 실패”해서인지 형편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들 이씨는 기자에게 한동안 문을 열어주지 않다가 “소송이 언론에 오르내리며, 큰돈이나 번 듯 주변에서 쑥덕대는 통에 살기가 힘들었다”며 입을 열었다. 이씨는 2003년 시작된 ‘조상땅 찾기 운동’을 알고 소송에 나섰다고 했다. “사업이 어려워져 도움 받을 데가 없나 하던 참에 예전에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땅이 있다고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그는 4천~5천평 가량의 땅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시작했는데, 패소가 확정되거나 스스로 취하한 5건을 뺀 나머지 소송들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아직 소송으로 되찾은 땅은 없다는 설명이다. 화성시 남양동 땅 소송에 대해 수원지법은 “친일파 후손의 재산환수 소송은 반민족 행위이자 헌법파괴 행위”라며 법률적 기준 마련 때까지 재판청구권을 일시 정지한다는 이유로 각하 판결을 내렸지만, 이씨는 이달 초 항소했다. 그는 “증조부께서는 을사늑약에 참여하지 않았고, 지금의 장관급 이상을 지낸 사람들에게 작위를 준 것인데, 단지 남작 작위를 받았다고 친일파로 모는 것은 심하다”며 “땅을 찾아주겠다더니 이게 뭐냐”고 항변했다. 또 증조부의 동생이자 을사오적인 이근택의 적극적 친일행위 때문에 더 큰 불명예를 안게 됐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어했다. 이씨는 “동생(이근택)이 워낙 심하게 친일을 하니까 형제간에 의가 상해 왕래가 끊겼다”며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 이근호’라고 표현한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8월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3090명을 발표하면서 이근호를 이완용, 송병준, 이근택 등과 함께 친일 정도가 심한 ‘매국형 친일파’ 133명(중복자 포함) 가운데 한 명으로 분류한 민족문제연구소 쪽은 시각이 다르다. 대한제국 관료 이근호는 합방에 기여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동생 이근택이 받은 ‘자작’보다 한 단계 낮은 ‘남작’ 작위를 받았다. 백동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이근호는 합방 때 대한산림협회 총재를 지내다가 작위와 함께 은사금 2만5천엔을 받았고, 1915년 친일 불교 재편을 위해 구성된 30본산연합사무소 고문으로도 활동했다”며 “이를 종합할 때 그가 매국형 친일파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친일 행위의 기준이 무엇인지,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형편만 좋았다면 욕심도 내지 않았을 테고, 억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법대로만 해결된다면 불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 촬영을 사양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특별법은 인정합니다” 이 소송을 낸 이아무개(78)씨는 노환으로 사건 파악이 뚜렷하지 못해, 사실상 소송 당사자인 그의 아들(53)을 자신 소유의 서울 강북의 한 3층짜리 다가구주택에서 만났다. 이씨는 “사업에 실패”해서인지 형편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들 이씨는 기자에게 한동안 문을 열어주지 않다가 “소송이 언론에 오르내리며, 큰돈이나 번 듯 주변에서 쑥덕대는 통에 살기가 힘들었다”며 입을 열었다. 이씨는 2003년 시작된 ‘조상땅 찾기 운동’을 알고 소송에 나섰다고 했다. “사업이 어려워져 도움 받을 데가 없나 하던 참에 예전에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땅이 있다고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그는 4천~5천평 가량의 땅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시작했는데, 패소가 확정되거나 스스로 취하한 5건을 뺀 나머지 소송들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아직 소송으로 되찾은 땅은 없다는 설명이다. 화성시 남양동 땅 소송에 대해 수원지법은 “친일파 후손의 재산환수 소송은 반민족 행위이자 헌법파괴 행위”라며 법률적 기준 마련 때까지 재판청구권을 일시 정지한다는 이유로 각하 판결을 내렸지만, 이씨는 이달 초 항소했다. 그는 “증조부께서는 을사늑약에 참여하지 않았고, 지금의 장관급 이상을 지낸 사람들에게 작위를 준 것인데, 단지 남작 작위를 받았다고 친일파로 모는 것은 심하다”며 “땅을 찾아주겠다더니 이게 뭐냐”고 항변했다. 또 증조부의 동생이자 을사오적인 이근택의 적극적 친일행위 때문에 더 큰 불명예를 안게 됐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어했다. 이씨는 “동생(이근택)이 워낙 심하게 친일을 하니까 형제간에 의가 상해 왕래가 끊겼다”며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 이근호’라고 표현한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8월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3090명을 발표하면서 이근호를 이완용, 송병준, 이근택 등과 함께 친일 정도가 심한 ‘매국형 친일파’ 133명(중복자 포함) 가운데 한 명으로 분류한 민족문제연구소 쪽은 시각이 다르다. 대한제국 관료 이근호는 합방에 기여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동생 이근택이 받은 ‘자작’보다 한 단계 낮은 ‘남작’ 작위를 받았다. 백동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이근호는 합방 때 대한산림협회 총재를 지내다가 작위와 함께 은사금 2만5천엔을 받았고, 1915년 친일 불교 재편을 위해 구성된 30본산연합사무소 고문으로도 활동했다”며 “이를 종합할 때 그가 매국형 친일파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친일 행위의 기준이 무엇인지,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형편만 좋았다면 욕심도 내지 않았을 테고, 억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법대로만 해결된다면 불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 촬영을 사양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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