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최고재무책임자(CFO)가 2015년 말 엔브렐(자가면역치료제) 등 바이오복제약 판매 승인과 관련해 “회계처리를 변경하기 위해 급조한 ‘이벤트’였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엔브렐과 레미케이드를 복제한 바이오복제약이 국내외에서 판매 승인을 받으면서 가치가 급등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 회계처리 방식을 장부가액(종속회사)에서 시장가액(관계회사)으로 변경했다는 기존 설명과 배치된다.
25일 <한겨레> 취재 결과, 삼성바이오 최고재무책임자인 김동중 전무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엔브렐과 레미케이드 등 바이오복제약 승인은 애초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삼성바이오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삼성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이었다”며 “나스닥 상장이 좌절된 이후 바이오복제약 승인을 주요 ‘이벤트’로 급조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피스는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가치가 부풀려졌는데, 그 결과 2대 주주인 미국 쪽 합작사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특정 시점에 지분을 살 권리)의 가치가 덩달아 커지면서 삼성바이오는 완전 자본잠식 위기에 빠진다. 이에 삼성바이오는 2015년 11월 자회사인 삼성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꿔, 회사 가치를 3천억원에서 4조8천억원으로 부풀렸다.
본래 회계기준상 종속회사를 관계회사로 바꾸려면 기업의 본질적 가치에 중대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삼성바이오는 애초 그 ‘중대한 변화’로 삼성에피스의 미국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했지만, 이게 무산되자 ‘바이오복제약 2종 국내외 판매 승인으로 인한 기업가치 상승’으로 방향을 틀었다. 바이오복제약 판매 승인으로 바이오젠 기업가치가 올라 바이오젠이 삼성에피스의 지분율을 50%-1주까지 사들이는 콜옵션을 발동할 가능성이 커진 만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처리 방식을 바꿨다는 얘기였다.
삼성바이오는 지난해 금융당국의 회계사기 조사 때도 웹툰과 보도자료, 설명자료 등을 통해 엔브렐과 레미케이드(크론병 치료제)의 바이오복제약 시판 승인이 얼마나 중요한 이벤트인지 집중 홍보했다. 삼성바이오는 당시 금융당국 등에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엔브렐, 레미케이드는) 전 세계 의약품 중 매출 3위(연간 9.8조), 4위(연간 9.7조)에 해당하는 블록버스터 제품”이라며 “판매 허가는 바이오시밀러 개발회사의 기업가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매우 결정적인 이벤트”라고 홍보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해명 카드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당시 참여연대 등은 삼성 쪽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바이오복제약의 판매 승인이란 게 국내 혹은 일부 국외 시장에 불과하고, 판매 승인만으로 막대한 매출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홍순탁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는 삼성 쪽 설명 변화와 관련해 “삼성에피스의 실질적 가치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회계처리를 변경했다고 인정한 것”이라며 “분식회계(회계사기)를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는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에피스의 콜옵션 가치를 평가(2014년 기준)한 내용을 보고받았다는 취지의 내부 보고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2014년 11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경우 삼성에피스의 지분을 재매입해 경영권을 확보한다는 내용의 계획을 보고받고, 2015년 6월에는 바이오젠의 대표와 이 계획을 직접 논의한 녹취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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