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1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4조5천억원 규모의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사기에 관여하고 지시한 혐의를 받는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김 대표의 구속을 바탕으로, 회계사기를 지시한 윗선인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임원들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로 나아가려 했던 검찰 수사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사건에서 증거인멸이 아닌 ‘회계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처음이었다. 김 대표는 지난 5월에도 증거인멸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돼 구속을 피했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19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와 김아무개 전무(최고재무책임자·CFO), 심아무개 상무(재경팀장) 등 3명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이튿날 새벽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명 부장판사는 20일 새벽 2시반께 “주요 범죄 성(립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 증거수집 되어 있는 점, 수사에 임하는 태도, 주거 및 가족관계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김 대표의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특히 명 부장판사가 기각 사유로 ‘주요 범죄 성립 여부에 다툼이 있다’고 밝혀, 이번 사건의 본류인 ‘회계사기’ 혐의를 놓고 향후 검찰과 삼성 간에 치열한 다툼이 예상된다.
검찰은 이에 대해 “혐의의 중대성, 객관적 자료 등에 의한 입증 정도, 임직원 8명이 구속될 정도로 이미 현실화된 증거인멸, 회계법인 등 관련자들과의 허위진술 공모 등에 비춰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추가 수사 뒤 구속영장 재청구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 등은 2015년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의 회계처리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4조5천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들이 합병 전 분식회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2016~2017년에도 추가로 분식을 저지른 정황도 파악했다.
검찰은 2016년 11월 이뤄진 삼성바이오의 코스피 상장도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 대표와 김 전무는 상장 이후 규정에 없는 상여금 명목으로 회삿돈 수십억원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도 받고 있다.
김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회계사기를 지시한 그룹 윗선으로 곧장 향하려던 검찰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검찰은 2015년 회계사기가 삼성바이오 차원이 아니라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전실 등이 직접 관리하고 관여한 것으로 보고,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사장 등을 소환하려고 했다. 검찰은 김 전 대표에 대한 보강 수사를 통해 다시 영장을 청구하는 방안과 김 전 대표를 건너뛰고 윗선을 곧장 수사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검찰 조사도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사건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무리하게 부풀리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삼성바이오 회계사기와 합병 등으로 발생한 이익의 최종수혜자로, 두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보고받고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신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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