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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국내 굴지 회계법인들은 어쩌다 삼성 꼭두각시가 되었나

등록 2019-07-18 06:00수정 2019-07-18 08:01

더 친절한 기자들ㅣ삼바 회계사기
조작보고서로 합병비율 정당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
삼성-회계법인 ‘한 몸’처럼 움직여
물산 가치 줄이고 바이오는 부풀려
‘합병비율’ 정당화 위해 내용 조작

대리인 자처하며 ‘허위 의견서’도
삼바 회계사기 ‘콜옵션’ 문서도 조작
삼정, 신평사와 이메일 주고받으며
작성시점 바꾸고 문구까지 조율
회계법인 ‘삼성 공모자’ 역할 수행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017년 대우조선해양 회계사기 사건에 연루됐던 회계사들이 징역형을 선고받으며 타격을 입었던 회계업계가 최근 더 큰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사기 및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의혹에 깊이 관여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안진·삼정·삼일 등 국내 최대 회계법인과 신용평가사들은 삼성 쪽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숫자 조작은 물론 허위 자료까지 만들었다고 검찰 조사에서 실토했다. 독립성과 객관성 대신 고객 입맛을 의식하는 회계업계의 관행이, 삼성 승계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회계법인 ‘조작 보고서’로 정당화된 ‘합병비율’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삼성과 회계법인들은 ‘한몸’처럼 움직였다. 두 회사가 합병을 결정하고 주주 설득에 나선 2015년 5월 말, 안진과 삼정은 각각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의뢰로 ‘합병비율 검토보고서’를 작성했다. 핵심 쟁점은 제일모직 1주를 삼성물산 3주와 맞바꾸는 ‘1 대 0.35’ 합병비율이 두 회사의 기업 가치에 비춰 적정한가였다.

안진 회계사들은 삼성 쪽 요구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정당화하기 위해 보고서 내용을 조작했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주식은 23.2%나 보유했지만 삼성물산 주식은 한 주도 없어 제일모직 가치가 높게 평가될수록 이득이었다. 안진 회계사들은 제일모직 가치를 높이려 실체 없는 제일모직 바이오사업 가치를 2조9천억원으로 평가하고, 증권사 보고서들을 평균 계산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부풀렸다. 반면 삼성물산의 가치는 축소됐다. 현금성 자산 1조7천억원을 누락했고, 1조원에 이르는 삼성물산 광업권도 평가에서 사실상 제외했다.

‘국내 최대 회계법인의 공인된 보고서’는 결국 주주들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하는 주요한 근거로 작용했다. 안진이 50여쪽 분량의 합병비율 검토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얘기만 듣고 다수 주주들이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삼성물산 1대 주주(지분율 11.6%)로서 합병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도, 안진이 조작한 보고서를 검토한 뒤 합병에 찬성하기로 했다. 2015년 7월 합병안은 하한선인 66.7%(3분의 2)를 3%포인트가량 넘긴 69.5% 지지로 통과됐다.

‘삼성 대리인’으로 신용평가사에 ‘허위 의견서’ 받아내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사건에서도 삼성과 회계법인은 ‘콜옵션’ 관련 문서 조작 등을 서슴지 않았다. 삼성바이오는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를 설립하면서, 바이오젠이 원하는 시기에 삼성에피스의 지분 절반을 살 수 있는 콜옵션 계약을 맺었다.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앞두고 삼성바이오는 회계상 부채로 처리해야 할 콜옵션의 존재를 숨겨 기업 가치를 뻥튀기했고, 이후 완전 자본잠식 위기에 처하자 이를 벗어나려고 ‘회계방식 변경’이라는 꼼수를 썼다. 합병을 전후로 두차례의 회계사기가 발생한 것이다.

회계법인들은 이때 회계사기의 ‘공모자’ 구실을 성실히 수행했다. 2015년 9월, 삼성바이오는 나이스(NICE), 에프앤자산평가 등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를 차례로 접촉해 ‘콜옵션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거짓 의견서를 받았다. 콜옵션을 고의로 감춘 게 아니라 평가가 불가능해 공개할 수 없었다는 ‘논리’를 꾸미기 위해서였다.

특히 삼성바이오의 회계를 감시해야 할 감사인이었던 삼정은 직접 신용평가사 쪽과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며 ‘콜옵션 평가 불능서’의 세세한 문구까지 조율했다. 2016년 1월 삼정 회계법인의 이사는 에프앤자산평가 쪽과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미래 추정이 불확실해 가치 측정이 어렵다’는 문구를 추가해달라고 요구했다. 에프앤자산평가 쪽은 전자우편을 받은 지 9분 만에 요구대로 내용을 바꿔 다시 의견서를 보냈다. 에프앤자산평가는 2016년 1월에 작성된 공문을 2014년 12월에 작성된 것처럼 날짜를 고치고 문서번호를 바꾸기도 했다. 이렇게 조작된 콜옵션 평가보고서는 금융당국 조사와 삼성바이오 행정제재 집행정지 재판 때에 삼성 쪽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자료로 제출됐다.

회계사기 ‘컨설팅’ 해결사 정황
삼바 자본잠식 피하려 분식
삼성 내부문건엔
“3대 회계법인과 협의해 도출”
금융당국·검찰 “회계사기” 판단

“업계 관행 바꿀 분기점”
삼바 회계사기·삼성 부당합병 의혹
안진·삼정·삼일 ‘굴지의 법인들’ 연루
‘대우조선 회계사기’ 회계사 중징계
“기업 맞춤형 보고서 관행 청산을”

계약서 조작 초안·분식회계 방안 내놓는 ‘해결사’ 노릇도

회계사들이 삼성 쪽에 회계사기 방법을 컨설팅해준 정황도 있다. 2015년 삼성바이오 재경팀이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에 보고한 내부문건을 보면, 2015년 11월 삼성바이오는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삼성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꿔 4조5천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방안을 회계법인들과 함께 고안해 냈다.

그해 11월17일 작성된 내부문건에는 “(바이오젠 콜옵션 반영에 따른) 부정적 영향(부채/손실 증가)을 최소화할 수 있는 회계처리 방안을 3대 회계법인(삼일, 삼정, 안진)과 협의해 도출”했다고 돼 있다. 이 방안이란 “(삼성)에피스를 연결 대상에서 지분법 대상 자회사로 변경해 콜옵션 가치뿐 아니라 에피스 가치에 대한 평가이익도 함께 반영”하는 것이다. 회사는 그대로인데 계산식만 바꿔 자본잠식을 피하고, 나아가 수년 동안 적자였던 회사를 2조원 가까운 흑자 회사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훗날 금융당국과 검찰이 ‘회계사기’라고 판단한 방법이다.

애초 삼성바이오는 콜옵션 계약 내용 자체를 ‘소급’ 수정하는 방식으로 조작하려 했다. 그해 11월10일 작성된 삼성바이오 내부문건을 보면, 합작계약서 내용을 수정하는 방안을 바이오젠과 논의하고 있다며 “삼정, 삼일 회계법인 및 양헌 법무법인과 드래프트(초안) 작성을 완료”했다고 돼 있다. 회계법인들이 ‘초안’까지 작성해가며 도왔던 이 방안은 바이오젠의 거부로 좌절된다.

국내 굴지 회계법인 대부분 연루…“업계 관행 바꿀 분기점”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및 삼성 부당합병 의혹에는 안진·삼정·삼일 등 국내 대표 회계법인이 대부분 연루돼 있다. 사건에 직접 관여한 회계사들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위반으로 기소되거나, 삼성 관계자들이 받는 자본시장법 위반과 사기·배임 혐의 등의 공범으로 묶일 가능성이 크다. 앞서 대우조선해양 회계사기를 묵인·방조한 혐의로 기소된 안진 소속 회계사들은 징역 1~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회계업계와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객(기업)의 요구에 따라 맞춤형 보고서를 작성해주곤 했던 업계 관행을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소송 전문인 김광중 변호사(법무법인 한결)는 “여태까지 중견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회계법인들이 미심쩍은 보고서를 써주고 합병 과정을 정당화한 사례는 많이 봤지만 이처럼 회계법인이 스스로 조작을 인정하고 법적 처벌까지 가시화된 경우는 처음”이라며 “회계업계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을 상대로 유사한 소송을 진행 중인 법조계에도 여파가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순탁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회계사)은 “회계법인들이 이때까지는 전문성을 가진 감시자 역할을 하기보다는 ‘영업맨’이 되어왔다. 일감을 많이 따는 게 미덕이다 보니 고객인 기업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아무런 죄의식이 없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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