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아무개씨는 요즘 대한항공에서 주기적으로 보내오는 ‘소멸예정 마일리지’ 안내 이메일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내년 1월1일 0시가 되면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마일리지가 상당 부분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2008년 약관을 바꿔 기존에는 없던 마일리지 유효기간(10년)을 정했고, 올해부터 소멸이 시작됐다.
마일리지 제도는 1981년 미국 항공사 아메리칸에어라인에서 고객 우대 제도의 하나로 처음 실시됐다. 국내에서는 대한항공이 1984년 도입한 뒤 신용카드, 통신사, 주유소, 백화점, 쇼핑몰 등으로 퍼져 널리 사용되고 있다. 마일리지가 사실상 ‘환금’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마일리지 소멸·축소를 둘러싼 법적 분쟁도 끊이지 않는다.
우선, 소비자는 마일리지를 경제적 교환가치가 있는 재산으로 인식한다. 실제 마일리지는 항공사에 보너스 항공권이나 좌석 등급 상향 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 일종의 채권 구실을 한다. 신용카드 사용으로 쌓인 포인트 역시 현금처럼 상품 구매에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기존 혜택을 줄이거나 차감하면 소비자는 재산권 침해로 인식한다. 반면, 항공사나 신용카드사는 마케팅 수단 또는 서비스 이용에 따른 보상으로 판단한다.
유아무개씨는 2012년 10월 인터넷을 통해 ‘외환 크로스마일 스페셜에디션 카드’를 신청했다. 연회비가 10만원이나 됐지만 사용금액 1500원당 항공 마일리지 2마일이 적립됐다. 넉달쯤 뒤인 2013년 2월 말 카드사는 적립 마일리지를 2마일에서 1.8마일로 변경한다고 인터넷 누리집 등을 통해 알린 뒤, 그해 9월부터 축소된 기준을 적용했다. 유씨는 “카드사가 부가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축소했다. 개인회원 표준약관에 적시된 ‘설명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에 계약 위반”이라며 소송을 냈다. 카드사는 ‘부가서비스 변경 내용 등은 6개월 전에 홈페이지, 이용대금명세서, 우편서신, 전자우편 중 2가지 이상 방법으로 고지한다’는 여신전문금융업 감독규정 및 이를 반영한 약관에 따랐다며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주심 김상환 대법관)은 “약관을 따랐다고 해도 설명 의무가 면제되지 않는다”며 유씨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해당 여신 규정이 ‘부가서비스 관련 사항을 제대로 설명할 의무’를 규정한 상위법(여신전문금융업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부가서비스 변경이 신용카드 회원의 권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지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이 6개월 전에 변경 사유 등을 고지만 하면 된다는 것은 잘못됐다”는 설명이었다.
대법원은 2013년에도 마일리지 혜택은 소비자가 카드를 선택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는 만큼 변경 사항은 사전에 제대로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유씨 사건을 공익변론한 김상준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에스앤피)는 지난 19일 “법규 내용을 되풀이하는 수준의 약관은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별도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기존 대법원 판례였는데, 이번 판결은 그러한 법규와 약관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라며 집단소송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마일리지 소멸 정책을 둘러싼 소송도 진행 중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올해 1월 기준으로 마일리지가 사라진 두 항공사 회원 7명을 원고로 서울남부지법에 마일리지 소멸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조지윤 변호사(법무법인 평우)는 “외국도 마일리지 사용에 유효기간을 두지만 양도·매매할 수 있거나 유효기간이 연장되기도 한다. (두 항공사가 마일리지를)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하게 만들어두고 유효기간을 10년으로 정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