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핵심 ‘재무통’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조직적인 증거인멸뿐 아니라 회계사기에도 깊게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는 이왕익 삼성전자 재경팀 부사장이 구속기소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는 이왕익 삼성전자 재경팀 부사장을 증거인멸 교사와 증거은닉 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이왕익 부사장은 지난해 5월부터 벌어진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의 조직적인 증거인멸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증거인멸 관련 혐의로 구속기소된 삼성 임직원은 8명에 이른다.
이 부사장은 구속 이후 종전 태도를 바꿔 증거인멸 혐의를 일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는 지난 14일 입장을 내 “증거인멸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기업이 증거인멸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 부사장의 구속기소는 다른 임직원들의 구속기소와 그 의미와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 총수 일가의 ‘금고지기’라고도 불리는 이 부사장은 삼성바이오 회계 관련 극비조직인 ‘지분매입티에프’의 핵심 구성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의혹과 긴밀하게 연관된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도 깊숙하게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사장의 구속기소가 ‘증거인멸’ 국면에서 ‘회계사기·합병’ 등 본안 수사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 탓에 검찰과 삼성은 이 부사장을 두고 각각 ‘공격’과 ‘방어’에 공을 들여왔다. 삼성은 지난 5일 함께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안아무개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 부사장보다 이 부사장의 구속을 막는 데 더 힘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원은 안 부사장에 대한 영장은 기각하면서도 이 부사장에 대해서는 “범죄혐의 상당 부분이 소명된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검찰 또한 구속기한을 한 차례 연장해가며 이 부사장을 집중적으로 수사했다.
검찰은 이 부사장 구속기소 이후 회계사기 ‘본안’ 수사에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조만간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인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TF) 사장을 한 차례 더 불러 ‘회계사기’ 관여 여부 등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총장 후보 지명으로 수사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추측에 대해 “수사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인사가 중요 사안의 일정이나 수사 내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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