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왼쪽)과 정현호 사장. 11일 검찰 조사를 받은 정 사장은 이 부회장의 최측근 인사로 꼽힌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11일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TF) 사장을 소환한 것은, 7개월째 접어든 수사가 이 부회장의 턱밑까지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삼성의 사실상 2인자’로 평가받는 정 사장은 이 부회장과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동문으로, 이 부회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장 등 그룹 내 핵심 보직을 맡아왔다. 2017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 부회장이 구속기소되면서 미래전략실이 해체되고 최지성·장충기 등 핵심 인사들도 회사를 떠났지만, 정 사장은 얼마 안 있어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부회장을 직접 보좌하며 사실상 그룹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 미래전략실’의 수장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정 사장을 소환한 검찰은 사업지원티에프 업무를 총괄하는 정 사장이 지난해 5월 삼성바이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에서 벌어진 증거은폐와 얼마나 관련됐는지 확인하는 데 1차 목표를 두고 있다.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도 낙관하는 분위기다. 정 사장 직속 부하인 백상현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 상무 등 삼성 임직원 8명이 증거인멸 교사 등 혐의로 구속됐고, 일부는 기소까지 된 상황이다. 앞서 법원은 ‘사업지원티에프가 증거인멸을 총괄했다’는 취지로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검찰은 정 사장을 구속한 뒤 이번 사건의 본류인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혐의와 대법원 선고를 앞둔 경영권 승계 작업의 불법성을 규명하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정 사장이 사업지원티에프 소속 ‘삼성바이오 지분매입티에프’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했는지도 수사의 핵심 포인트다. 정 사장이 보고받거나 지시한 내용은 이 부회장에게 다시 보고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해 5월10일 이 부회장이 그룹 수뇌부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집무실이었던 서울 이태원동 ‘승지원’으로 불러, 삼성바이오 회계 문제 등을 논의했다는 관련자 진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닷새 전인 5월5일 사업지원티에프 소속 임원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삼성바이오 증거인멸이 결정돼, 승지원 회의 때 이런 내용을 이 부회장도 공유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은 “당시 회의는 삼성바이오 경영진 등이 참석한 가운데 판매 현황과 의약품 개발과 같은 중장기 사업 추진 내용 등을 논의한 자리였다. 증거인멸이나 회계 이슈를 논의한 회의가 전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2015년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장(부사장) 당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도 깊이 관여했던 정 사장이 삼성바이오 회계사기에도 ‘결정적 조언’ 등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영수 특검은 이 부회장 공소장에 2015년 7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를 마친 이 부회장이 사후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정 사장이 참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바이오 기업가치 부풀리기→제일모직 기업가치 상승→제일모직 대주주인 이 부회장의 통합 삼성물산 지분율 상승(그룹 지배권 강화)의 밑그림 곳곳에 정 사장이 등장하는 셈이다.
한편, 검찰 안팎에서는 이날 정 사장이 비공개 소환된 것을 두고 이 부회장 역시 비공개로 조사하기 위한 ‘사전 작업’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검찰은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 조사 때는 사전에 이를 언론에 알렸다.
최현준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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