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기 의혹에 휩싸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이아무개 삼성전자 재무팀 부사장이 구속됐다. 이건희 회장 시절부터 삼성의 핵심 ‘재무통’으로 삼성바이오 회계 문제에도 깊게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 부사장이 구속되면서, ‘증거인멸’을 넘어 그룹 차원의 ‘회계사기’ 관여 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증거인멸 교사 등 혐의를 받는 이아무개 삼성전자 재경팀 부사장과 안아무개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TF) 부사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5일 새벽 “범죄혐의가 상당부분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피의자의 지위와 현재까지의 수사경과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이아무개 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반면 안 부사장에 대해서는 “피의자의 가담 경위와 역할, 관여 정도, 관련 증거가 수집된 점, 주거 및 가족관계 등에 비추어 구속 사유의 필요성, 상당상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번에 구속된 이 부사장은 이건희 회장 시절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구조조정본부’의 재무부 팀장과 전략기획실 전략지원팀 부장을 거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래서 미래전략실 전략팀 임원을 지낸 그룹 핵심 ‘재무통’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내 ‘회계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밝은 삼성전자의 주요 임원이 삼성바이오의 ‘증거인멸’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뚜렷해진 셈이다.
이 부사장과 안 부사장은 금융감독원이 회계사기 의혹과 관련해 삼성바이오에 ‘조치사전통지서’를 보낸 지난해 5월께 삼성바이오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의 회계 관련 자료에 대한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결정하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지난해 5월5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회의를 열고,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의 회계자료와 내부보고서를 은폐하거나 조작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고있다.
특히 검찰은 ‘5월5일’ 회의의 주체가 ‘지분매입티에프’였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지분매입티에프’(별칭 ‘오로라 프로젝트’)는 지난 2017년 삼성에피스의 합작사인 미국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삼성 그룹 내 극비조직이다. 두 부사장이 증거은멸 뿐만 아니라 삼성에피스의 지분매입 등 회계 문제 전반에 깊게 관여한 정황인 셈이다.
이들이 주재한 ‘5월5일’ 회의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는 수십 테라바이트의 공용서버를 공장 마룻바닥이나 직원의 자택에 숨기고, 직원들의 휴대폰과 노트북에 ‘JY(이재용)’, ‘지분매입’, ‘오로라’ 등 민감한 검색어를 입력해 삭제하는 등 대대적인 ‘증거인멸’ 작업을 벌였다. 이렇게 삭제된 삼성바이오의 내부 파일 중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바이오젠 대표와 삼성에피스의 나스닥 상장과 콜옵션 행사에 대해 논의하고, 삼성에피스 쪽으로부터 관련 진행상황을 보고받은 내용이 담긴 통화녹취록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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