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3수’ 끝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뇌물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과거 검찰이 두차례 무혐의 처분했던 사건을 스스로 뒤집었고, 검찰의 부끄러운 스폰서 문화를 드러낸 점 등도 성과로 인정받을 만하다. 하지만 과거 경찰·검찰 수사가 왜 엉뚱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 과거 수사팀엔 “공소시효 지나” 면죄부 수사단은 2013년 검찰 부실수사 의혹에 대해 전·현직 검사 8명을 12차례 불러 조사했다고 밝혔다.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을 압수수색도 했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지나 부실수사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4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검찰수사단 여환섭 단장(청주지검장)은 수사 결과 발표를 하며 “직무유기 공소시효는 5년이다. 부실·봐주기 수사 의혹에 대해 엄격하게 조사하려면 강제수사를 해야 하는데 공소시효가 남아 있지 않아 불가능했다”고 했다. 검찰 내·외부의 부당한 개입이나 압력 등 직권남용 의혹에 대한 관련 진술이 나오지 않았고, 수사할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전·현직 검사 8명을 상대로 어떤 조사를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앞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검찰 부실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경찰과 검찰은 윤중천씨의 성접대를 뇌물로 보지 않았다. 피해 여성 이아무개씨가 윤씨의 강요에 의한 성노예 생활을 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지만, 이 또한 신빙성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 단장은 “당시 경찰과 검찰은 윤씨 주변 인물을 많이 조사했지만 대가성을 못 찾아 성접대를 뇌물죄로 의율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피해 여성이 주장하는 피해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사진이 발견되지 않아 여성을 믿지 못했을 것”이라며 과거 수사팀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과거에는 왜 그렇게 못 했냐’고 이야기하기는 쉽다. 그러나 수사하는 입장에서는 불분명한 상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혼선을 빚기도 한다”고 했다. ‘어려운 수사’였던 것이지 봐주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자로부터 대가성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으로 법무부 차관이 낙마한 초유의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왜 관련자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수사 결과다.
■ 청와대 외압은 “증거불충분 무혐의” 수사단은 ‘박근혜 청와대’가 경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사실로 판단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곽상도 전 민정수석(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변호사)의 직권남용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앞서 과거사위는 곽 전 수석과 이 전 비서관이 2013년 3월1일께 내사 중인 경찰을 질책하고, 수사 지휘라인을 부당하게 인사조치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청와대 행정관을 보내 동영상 감정 결과를 확인해 수사에 개입했다며 수사권고했다. 하지만 수사단은 이미 감정 결과를 경찰에 회신한 뒤에 결과를 확인하려 한 것이어서 국과수 감정이나 경찰 수사에 개입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찰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서도, 당시 경찰들이 청와대 관계자 등 외부로부터 질책이나 부당한 요구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성접대의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해 뇌물죄를 적용하지 못했을 뿐, 최선을 다해 수사한 결과라고 항변했다는 것이다. 또 과거사위 조사에서 경찰 질책 및 수사 외압이 있었다고 진술해 수사권고의 근거가 됐던 청와대 행정관은 수사단 수사 때는 진술을 바꿨다고 한다.
당시 경찰 지휘라인에 부당한 인사조치가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인사권자인 경찰청장과 경찰청 인사담당관 등이 통상적인 인사로 부당한 인사조치가 아니라고 진술했고, 자료를 검토해도 부당한 인사라고 볼 사정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여 단장은 “근무기간이 짧은데 보직이 변경된 점이 섭섭하다는 (경찰) 진술은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동일하게 인사가 났다. 새 정부 들어 경찰청장이 새로 바뀌는 시점이라 대규모 변경이 있었다. 잘못된 인사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경찰 허위보고에 따른 문책성 인사”였다는 곽상도(민정수석)·조응천(공직기강비서관) 의원 등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과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 직권남용 혐의 입증에 이르지 못한 수사단이 당시 인사권자(청와대)의 설명까지도 부인하고 나선 셈이다. 또 당사자·관계자들이 부인하는 진술만 늘어놓고 ‘증거가 부족해 수사할 수 없다’고 밝히는 것은 1, 2차 ‘김학의 동영상’ 수사 때 검찰이 보인 모습이기도 하다.
■ 한상대·윤갑근·박충근은 “수사 근거 못 찾아” 수사단은 한상대 전 검찰총장 등 윤씨와 유착됐다는 의혹이 있는 전직 검찰 간부 3명은 ‘현재로서는 수사 불가’라고 결론내렸다. 과거사위원회가 지난달 29일 이들의 실명을 사실상 공개하며 수사를 촉구한 지 엿새 만의 반응이다.
여 단장은 “(유착의) 단서가 없어서 수사에 착수할 수 없다”고 했다. 구속된 뒤 검찰 조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윤중천씨의 ‘입’을 뺀 나머지 자료에서는 “객관적인 범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과거사위는 한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2011년 윤씨의 민원을 받고 수사 주체를 바꿔줬다는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2005년 인천지검 1차장검사 때의 명함이 윤씨 별장에서 발견됐고, 윤씨가 나중에 번복하기는 했지만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조사에서 “한 전 총장에게 돈을 줬다”고 말한 점 등이 그 근거였다. 그러나 수사단은 당시 수사라인에 있던 검사들이 한 전 총장의 개입을 부인하고, 2013년 압수된 윤씨 휴대전화에 한 전 총장의 전화번호가 들어 있지 않아 유착을 의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의 친분을 뒷받침할 최소한의 증거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에 대한 과거사위 수사 촉구는 윤씨 운전기사의 진술에서 비롯됐다. 2013년 경찰 조사 때 윤 전 고검장의 사진을 보고 “별장에도 오고, 호텔 등에서 윤씨와 만난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운전기사는 이번 검찰 조사에서 윤 전 고검장의 사진을 보고는 “윤씨와 만난 사람인지 자체를 모르겠다”며 이전 진술을 뒤집었다고 한다. 윤중천씨 또한 진상조사단 조사 때는 “한상대가 골프장에 데리고 왔던 것 같다”고 말했으나, 수사단 조사 때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을 바꿨다.
박충근 전 춘천지검 차장검사는 변호사 개업 이후인 2011년 윤씨의 딸에게 송금한 450만원이 사건 소개 대가로 건넨 리베이트라는 의심을 샀다. 박 전 차장은 “단순 대여”라는 상식과 어긋난 해명을 내놨으나, 수사단은 변호사법 공소시효(7년)가 지난해 끝났다고 설명했다. 최우리 기자,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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