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 지분을 미국 합작사로부터 되사려 했으며, 검찰 수사가 예상되자 이런 사실을 은폐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바이오는 “미국 업체 바이오젠이 지분의 절반을 가져가는 ‘콜옵션’을 행사해 삼성에피스 지배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커져 자연스레 회계처리 기준을 바꾼 것”이라며 회계사기 혐의를 부인해왔는데, 내부적으로는 지배력을 잃지 않기 위해 조치를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콜옵션 평가 가능 여부, 2014년 이전 상장 검토 등에 이어 ‘콜옵션’을 둘러싼 삼성 쪽 주장의 허점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15일 <한겨레> 취재 결과, 검찰은 증거인멸 등 혐의로 구속된 삼성전자 보안선진화티에프(TF) 소속 서아무개 상무 등이 삼성에피스 직원들의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조사해 문제가 되는 문건 등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검색어로 ‘JY’(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합병’ 등의 단어 외에 ‘지분매입’을 사용한 사실을 발견했다. 삼성에피스 지분매입과 관련한 문건을 없애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삼성 관계자는 “2015년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경우 (바이오젠이 갖게 될) 지분 일부를 되사오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지난해 ‘지분매입’ 관련 자료를 삭제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해 11월 <한겨레>가 보도한 ‘삼성 미래전략실 문건’(2015년 11월18일 작성)에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와 일부 지분매입 및 협상력” 등 표현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는 2012년 삼성에피스 지분의 절반(50%-1주)을 바이오젠에 주는 콜옵션 계약을 했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삼성바이오가 보유한 삼성에피스 지분율이 85%에서 50% 수준까지 떨어져 지배력이 약화하는데, 지분을 되사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한 것이다.
검찰은 그룹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는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TF) 안에 그동안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지분매입티에프’가 꾸려진 사실도 확인했다. 지분매입티에프는 지난해 초 금융당국의 회계사기 혐의 조사가 시작되자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에피스의 지분 변동(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은 모회사인 삼성바이오가 삼성에피스의 회계처리 기준을 갑자기 바꾼 ‘공식적인 이유’다. 지배력이 떨어져 자회사(장부가 기준 평가)를 관계회사(시가 기준 평가)로 바꿨고, 그 결과 자연스레 4조5천억원대 평가이익을 봤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 가치 상승은 대주주인 제일모직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고, 그 덕분에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 제일모직 대주주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크게 이득을 봤다. 검찰은 ‘경영권 승계용 회계사기’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회계처리 기준 변경이 삼성 주장처럼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고 의심한다. 2015년 합병 전까지 숨겨온 콜옵션의 존재를 삼성바이오 재무제표에 반영할 경우 발생할 ‘완전자본잠식’ 위험을 피하기 위한 고의적 회계사기였다는 것이다. 콜옵션은 재무제표에 부채(빚)로 반영된다. 콜옵션을 회계장부에 반영할 경우 삼성바이오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고, 이는 제일모직 가치 하락→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때 제일모직 대주주 이재용 부회장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삼성의 콜옵션 관련 거짓말이 드러난 것은 세번째다. 삼성은 “콜옵션 가치평가가 불가능해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4년 이전에도 가치평가를 했고, 가치평가가 전제돼야 가능한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한 사실도 드러났다.
참여연대는 16일 바이오젠에 콜옵션 행사와 관련해 삼성 쪽에 지분을 되파는 협상을 했는지 묻는 2차 공개 질의서를 발송한다. 2018년 ‘콜옵션 행사 뒤 삼성 쪽에 지분을 되파는 협상’을 실제 진행했는지 등을 질의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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