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인사들은 종종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싸잡아 ‘종북’이라고 비난한다. 한국 사회에서 ‘종북’은 ‘빨갱이’와 더불어 낙인찍기를 통한 배제의 수단으로 오랫동안 활용됐는데, 최근 법원은 ‘종북’도 정치적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왜일까.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23일 이재명 경기지사가 극우 인사인 변희재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4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변씨는 2013~14년 자신의 트위터에 이 지사를 겨냥해 ‘종북세력에 기생하는 종북거머리떼들’ ‘종북세력’ ‘종북성향’ 등이라고 비난했다. 이 지사는 명예가 훼손됐다며 소송을 냈고, 1·2심은 “종북이라는 말은 현재 우리나라 현실에서 부정적이고 치명적인 의미를 갖는다. 단순히 수사적인 과장으로 허용될 수 없다”며 일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으며 “공론의 장에 나선 공적 인물의 경우 비판을 감수해야 하고, 이에 대한 해명과 재반박을 통해서 극복해야 한다” “정치적 이념에 관한 논쟁이나 토론에 법원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날 판결은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놓은 판례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2012년 변씨와 <조선일보> 등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등을 ‘종북’ ‘종북파’ ‘주사파’ 등으로 지칭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전 대표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깨면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 권리로, 이에 대해 불법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 전 대표가 당시 국회의원이자 공당의 대표였다는 점을 거론하며 “공인이나 이에 준하는 지위에 있는 이들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문제제기가 허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해당 발언이 ‘사실’이어야 하는데, 공적 인물에 관한 논쟁과 토론에서 ‘종북’이라고 지칭할 때는 의견(과장 또는 비유)으로 볼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당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박정화·민유숙·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은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는 관용을 전제로 하는데, ‘종북’ ‘주사파’라는 용어는 상대방을 민주적 토론에서 아예 배제하기 위한 공격 수단으로 사용돼온 측면이 있다”며 “극단적 표현을 제한하지 않으면 오히려 민주주의가 질식될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남북이 대치하고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는 현실에서 ‘종북’으로 지목될 경우 반사회세력이라는 치명적 의미를 갖게 된다. 표현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민사책임은 형사책임과 구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표현의 자유를 어느 선까지 인정해줄 것이냐를 두고 대법원 안에서도 의견 대립이 팽팽했던 셈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종북 발언이 모두 용납되지는 않는다. 전원합의체 판결 뒤인 지난해 11월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배우 문성근씨를 종북이라고 비판한 탈북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일부 물었다. 10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종북, 주사파 등의 표현”에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때도 “모욕이나 인신공격 등 불법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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