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최근 삼정·안진·삼일 등 국내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들을 집중적으로 소환 조사하고 있다. 수사에 대비해 ‘내부정리’를 마쳤을 것으로 보이는 삼성 대신에 분식회계 과정에 밀접히 관련돼 있으면서도 ‘삼성 외부인’인 회계법인을 ‘약한 고리’로 보고 우선 공략 대상으로 삼은 모양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는 지난해 12월 삼성바이오 본사와 함께 삼정·안진 등 회계법인 4곳을 동시 압수수색한 뒤, 최근 이들 법인 소속 회계사를 여럿 소환해 2015년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과정에서의 역할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 삼성바이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합작파트너인 바이오젠이 보유한 1조8천억원 규모의 ‘콜옵션’(특정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 부채를 숨겨오다 2015년 회계장부에 반영해야 할 상황이 되자,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바꾸는 방법으로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들 회계법인이 분식회계를 방조하는 수준을 넘어 깊숙이 관여하고 함께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2015년 11월 삼성바이오가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미전실)에 보고한 문건에는 삼정·삼일 등 회계법인과 삼성바이오의 자본잠식을 막기 위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삼성바이오가 올 초부터 분식회계 의혹을 해명하겠다며 배포한 선전용 소책자와 웹툰 등에도 “삼성바이오 회계처리 변경은 국내 3대 회계법인으로부터 회계기준에 부합한다는 일치된 의견을 받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회계기준을 바꾼 ‘중대한 사정변경’이라고 주장하는 ‘바이오시밀러(복제 바이오의약품) 2종 승인’이라는 신약개발 성과도 선후 관계가 뒤바뀐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주요 이벤트가 생겨 회계처리를 변경한 게 아니라,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회계처리 변경 방안’을 마련하면서 사후에 신약개발 이벤트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2015년 11월 미전실 보고 문건에도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신약개발이 아닌 같은 해 12월 좌절된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신청’이었다. 삼성바이오는 올 초 펴낸 선전용 소책자에 엔브렐과 레미케이드 등 바이오시밀러 2종이 각각 2015년 10월과 12월 국내 승인을 받았다는 내용을 주요 이벤트라고 밝혔지만, 전체 매출에서 국내 바이오시밀러 시장 진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번 수사의 핵심은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작업 간의 연관성 규명으로 모아진다. 이른바 ‘회계처리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된 2015년 11∼12월은 숱한 논란 끝에 그해 9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1 대 0.35의 비율로 합병된 직후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대주주(지분율 23.23%)인 제일모직 가치가 높게 평가돼 이익을 봤는데,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의 대주주(46.79%)였다. 삼성바이오가 2015년 이전부터 자본잠식 상태였다고 판정되면, 제일모직 가치는 크게 떨어지고, 합병 비율이나 합병 과정의 정당성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김경율 회계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는 “삼정과 삼일은 삼성바이오와 삼성물산의 외부감사인이었다”며 “이들이 회계처리 방안을 기업과 함께 만들어내고, 그 결과를 스스로 감사하는 것은 투명한 회계감시라는 시장의 룰을 깨는 중대 범죄”라고 말했다.
임재우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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