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 및 법관사찰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이날 건강 문제를 이유로 불출석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포토라인은 ‘왕회장의 이마’에서 탄생했다. 1993년 1월15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당시 통일국민당 대표)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기 위해 서울지검(현재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출석했다. 정 회장이 자신의 쏘나타 승용차에서 내리자, 대기하던 취재진 50여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취재진을 뚫고 청사로 들어가던 정 회장의 이마가 한 사진기자의 카메라와 부딪혔다. ‘왕회장’의 이마에선 피가 흘렀다. 2년 가까이 지난 1994년 12월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와 한국사진기자협회는 ‘포토라인 운영 선포문’을 만들었다. 이후 포토라인은 법적인 강제력은 없지만 의례적으로 치르는 하나의 ‘관행’이 됐다.
3명의 전직 대통령들도 포토라인을 피할 수 없었다. 10년 전인 2009년 4월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도착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착잡한 표정으로 포토라인에 섰다. “면목 없는 일”이라고 했다. 2017년 3월 탄핵 직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 앞 포토라인에서 “송구스럽다”고 했다. 1년 뒤인 2018년 3월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섰다. “역사에서 이번 일이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25년간 숱한 이들이 섰던 청색 또는 노란색 포토라인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패싱’으로 존폐 도마에 올랐다. 지난 1월 검찰에 출석한 양 전 대법원장은 취재진이 만든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 ‘여전히 제왕적 행태를 보인다’는 비판과 함께, ‘무죄추정원칙에 반하는 포토라인을 개선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제기됐다.
대검찰청은 ‘양승태 포토라인 패싱’ 논란 직후인 지난 2월 언론계 인사와 법학자, 변호사 등이 참여하는 연구모임을 꾸려 포토라인 운영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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