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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손배·가압류 당한 파업노동자 ‘월급 압류’ 지옥의 문…이겨도 낭떠러지

등록 2019-01-24 15:51수정 2019-01-28 10:41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사회역학팀 노동자 실태 조사
“자살 진지하게 고민” 일반인에 견줘 수십배 이상 높아
수십억 배상금에 극심한 스트레스…소송 이겨도 남는 건 병뿐
2014년 2월26일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 출범식에서 김명환 당시 철도노조 위원장(현 민주노총 위원장)이 손배가압류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4년 2월26일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 출범식에서 김명환 당시 철도노조 위원장(현 민주노총 위원장)이 손배가압류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50대 노동자 강만수(가명)는 회사의 이름을 말할 수 없다. “회사에 피해가 갈 수 있는 내용으로 언론과 인터뷰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회사는 저 문장을 약속이라고 말하지만, 강만수에게 이 문장은 협박이다. 강만수가 이를 어길 경우, 회사는 손해배상(손배)을 집행할 수 있다. 사연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만수의 회사는 2008년 노동조합에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강만수는 그때 노조 지회장이었다. 파업은 필연이었다. 회사는 이듬해,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호소하며 20여억원의 손배 소송을 냈다. 소송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가압류도 신청했다. 노조 간부들도 해고했다. 파업 참가자들의 월급을 떼어가고, 전세금과 집 등을 가압류했다.

2014년 1심 법원은 노조원들에게 10억여원의 회사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회사도 법원도 강만수의 굴종을 강요했다. 강만수는 모든 게 무너졌다. 노조원을 모두 탈퇴시키고 파업 해고자 7명의 퇴직금을 압류해가는 요구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현장에 복귀한 노동자들에게 건 손배는 집행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겨우 얻어낸 대가다. “빨가벗고 항복”했다.

끝이 아니었다. 회사는 여전히 2024년까지 손배금 압류 권한을 갖고 있다. 채권 소멸시효가 10년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그저 ‘꽃놀이패’를 들고 노동자들을 쥐락펴락한다. “파업을 함께했던 동료의 아내가 암에 걸렸어요. 모든 동료가 뭐라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죠. 파업 기간에는 임금을 못 받았고, 회사에 복귀한 조합원들은 가압류당해 돈이 없고…. 다른 것보다 그런 게 억수로 힘들었어요.” 주름진 강만수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노동자 상대 손배·가압류 30년, 사상 첫 실태조사

회사가 노동자를 상대로 처음 손배 소송을 낸 건 1989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로 꼬박 30년 동안 숱한 노동자들이 회사의 손배 앞에 죽거나 죽지 못해 살아왔다. 2003년 1월9일 파업 이후 회사의 손배에 시달리던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는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 없을 것”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몸에 불을 붙였다. 16년이 지난 지난해 6월27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김주중은 아내에게 “그동안 못난 남편 만나 고생만 시키고 마지막에도 빚만 남기고 가는구나”라는 글을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경찰은 2009년 옥쇄파업 진압 당시 장비 등 피해를 봤다며 101명의 쌍용차 노동자에게 손배 24억원을 청구했다. 김주중은 101명 중 한명이었다.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들의 고통을 깊이 들여다본 사회역학팀의 연구 조사 결과가 30년 만인 24일 세상에 공개됐다. 사회역학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구조와 제도, 관계 등을 추적하는 학문으로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연구팀(김승섭, 박주영, 최보경, 김란영)은 그동안 세월호 생존학생과 성소수자, 소방관 등의 고통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답을 들어왔다. 연구팀은 지난해 4월부터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 등과 함께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 236명을 만나 조사한 실태 조사 결과를 이날 오후 2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발표했다. 실태 조사 결과는 조사에 응한 236명 가운데 233명의 설문조사 답변을 기초로 작성됐다.

손배가압류 피해노동자 236명 첫 실태조사결과발표회가 24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려, 박래군 손잡고 운영위원이 기조 발언을 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손배가압류 피해노동자 236명 첫 실태조사결과발표회가 24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려, 박래군 손잡고 운영위원이 기조 발언을 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은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경험을 묻는 말에 남성 노동자 30.9%, 여성 노동자 18.8%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일반 남성·여성에 견줘 각각 23.8배, 13.4배 높은 수치다. 실제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남성 노동자는 6명으로 응답자의 3%였다. 이는 일반 남성을 상대로 같은 질문을 했을 때 나온 0.1%의 30배 수준이다. 지난 1주일 우울 증상을 경험한 경우도 남성 노동자 59.7%, 여성 노동자 68.8%로 일반 인구보다 각각 9.5배, 6.7배 높았다.

손배 가압류로 인한 경제적 고통은 이들의 실제 몸을 갉아먹고 있기도 했다. 병원 진료가 필요했지만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는 대답은 남성 노동자의 경우 33.8% 일반 남성에 견줘 4.3배 높았다. 여성 노동자들은 37.5%가 진료를 받지 못했다고 대답했는데, 일반 여성의 1.1배 수준이다. 여성 노동자들의 50%가 진료를 받지 못한 이유로 ‘진료비가 부담되어서’를 꼽았다. 특히 이들의 열악한 경제적 상황은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 두드러졌다. 남성 노동자 중 34.3%가 치과 치료를 제때 받지 못했고 이 가운데 42%가 진료비 부담 때문이라고 답했다. 여성 노동자의 경우 40.6%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고, 이 가운데 69.2%가 진료비 부담을 그 이유로 들었다. “돈이 없으니 아파도 병원을 미루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결혼을 미루는 조합원들이 있어요. 아이 계획은 꿈도 꾸기도 힘들죠. 노조 사무실이 평소 왁자지껄한데 전자월급명세서가 게시되는 9일이 되면 조용해집니다.” 경북 구미의 반도체 회사 케이이씨(KEC)의 손배·가압류와 싸우고 있는 38살 노동자 이종희의 말이다.

이종희(38) 금속노조 케이이씨(KEC) 지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중구 정동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연서 기자
이종희(38) 금속노조 케이이씨(KEC) 지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중구 정동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연서 기자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 4명 중 3명 10억 이상 갚아야

이종희는 2016년 9월 이후 150만원 이상이 찍힌 월급 통장을 본 적이 없다. 한 회사에서 20년 동안 일을 했는데도 그렇다. 이종희는 그래도 “나는 혼자 사니까 다행”이라며 웃었다. 고통이 몰려오는 건 동료들의 삶을 바라볼 때라고 했다. “그래도 아빤데, 천원짜리 과자를 사달라는 아이의 말에 멈칫하게 된다”고 어떤 동료가 말했을 때, 이종희는 목이 잠겨오는 걸 느꼈다. 케이이씨에는 30년을 넘게 일했어도, 야근을 해도, 주말 특근을 해도 한달 월급 150만원을 넘기지 못하는 노동자 41명이 일한다. 역시 회사의 손배 소송 때문이다.

회사는 2010년 파업 때문에 손실을 봤다며 2011년 케이이씨 노동자들에게 301억원의 손배 소송을 냈다. 2016년 9월 법원은 30억원으로 양쪽이 조정하라는 강제 조정안을 내놨다. 노동자들은 조정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지옥’이 열렸다. 법에서 압류를 금지한 최저생계비 150만원을 뺀 모든 돈이 회사로 꼬박꼬박 입금됐다.

이런 일은 비단 강만수와 이종희의 회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김승섭 교수 연구팀 조사에 응한 노동자들 4명 가운데 3명이 10억원이 넘는 손배 금액을 지고 있었다. 회사나 정부가 이들에게 제기한 손배 금액이 10억~100억원인 경우는 40.3%, 100억~200억원인 경우는 10.3% 200억원 이상인 경우는 24%였다. 10억원 이상을 다 합치면 74.6%나 된다.

설문에 응한 노동자들은 회사 쪽이 손배 소송을 거는 이유(복수응답)로 ‘점거에 따른 업무방해’(74.2%), ‘파업 등에 따른 영업손실’(58.4%) 등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회사가 손배를 거는 목적(복수응답)에 대해 물었을 때는 ‘노동 쟁의 제한 및 노동조합 위축’(94.4%), ‘파업 노동자 보복’(69.1%), ‘노조 탈퇴’(66.1%)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회사가 파업으로 인한 손해 보전보다는 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손배를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겨레>가 직접 만난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케이이씨의 이종희는 “회사가 손배 노동자들에게 여러 차례 퇴직을 하면 손배에서 빼주겠다고 이야기했고 실제 그렇게 회사를 떠난 조합원이 1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2017년 9월 케이이씨 지회장 이종희씨의 상여금 명세서. 140만1600원의 상여금 중 135만8500원을 회사가 떼어갔다. 지급금액은 3만3990원. 같은달 이종희씨의 월급은 144만8790원이었다. 이달 이종희씨가 받은 월급과 상여금은 총 148만2780원이다. 이 돈에 이종희씨가 낸 노동조합비 1만7220원을 더하면 법으로 압류하지 못하도록 정해져있는 150만원이 나온다. 이종희 제공.
2017년 9월 케이이씨 지회장 이종희씨의 상여금 명세서. 140만1600원의 상여금 중 135만8500원을 회사가 떼어갔다. 지급금액은 3만3990원. 같은달 이종희씨의 월급은 144만8790원이었다. 이달 이종희씨가 받은 월급과 상여금은 총 148만2780원이다. 이 돈에 이종희씨가 낸 노동조합비 1만7220원을 더하면 법으로 압류하지 못하도록 정해져있는 150만원이 나온다. 이종희 제공.
회사와 정부의 손배·가압류는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나눠지는 게 아니라 남에게 전가하도록 강제한다. ‘부진정연대채무’가 대표적이다. 케이이씨의 경우 애초 손배 금액 30억원을 나눠서 져야 할 노동자는 66명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회유로 25명이 회사를 떠나거나 노조를 탈퇴했다. 41명만 남았다. 하지만 갚아야 할 돈은 그대로다. ‘부진정연대채무’는 쉽게 말해, 한 사람이 손배 책임을 면제받으면 그 몫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나눠서 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41명은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다. 남아 있을 동료에게 고통을 떠넘길 순 없었다고 했다. “손배는 노조를 깨기 위한 거였다고 생각해요. 아마 회사도 우리가 남을 줄 몰랐을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더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종희가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강만수의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회사가 손배를 걸고 월급을 가압류하자 하나둘씩 노조를 탈퇴했다. 회사는 노조를 탈퇴한 사람에게 가압류한 월급을 돌려줬다. 노조원 수는 금세 반 토막이 났다. 실제 김승섭 교수팀의 실태조사에 응한 노동자 94.9%가 ‘손배 이후 동료가 노조를 탈퇴했다’고 말했다. ‘손배 이후 조합원이 절반 이상 줄었다’는 답변은 64%에 달했다. 동료의 노조 탈퇴 이유(복수응답)는 ‘회사 관리자의 탈퇴 권유 때문’이라는 응답이 49.4%로 가장 높았다. 가압류나 압류 방식(복수응답)은 ‘임금이나 전세보증금 등 채권 압류’가 55.8%로 가장 많았다.

현대자동차 노동자 이도한(43)씨와 현대자동차 해고 노동자 엄길정(48)씨가 지난 22일 울산 북구 ’공동으로 투쟁하고 행동하는 노동자 공동행동’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연서 기자
현대자동차 노동자 이도한(43)씨와 현대자동차 해고 노동자 엄길정(48)씨가 지난 22일 울산 북구 ’공동으로 투쟁하고 행동하는 노동자 공동행동’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연서 기자
■회사는 불리해도 여전히 ‘꽃놀이패’를 들고 있다

손배·가압류는 회사가 불리해졌을 때 역공을 펼칠 도구가 되기도 한다. 2010년 11월30일 현대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5일 동안 시티에스(CTS·자동차 문 찰탁 공정) 라인 점거 파업을 하는 바람에 영업손실을 봤다며 노동자 29명을 상대로 20억원의 손배를 청구했다. 2013년 1심 재판부는 “이 가운데 11명이 연대해 회사에 20억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손배라는 무기를 쥔 회사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로 구성된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을 상대로 회유에 나섰다고 한다. 비정규직지회가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집단소송을 취하해주면 손배 대상에서 빼주고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겠다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이기면 현대차의 불법파견이 인정되고, 이는 곧 현대차가 조합원들을 모두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많은 이들이 회사의 설득에 넘어갔다. 결국 29명 가운데 4명만 남아 회사와 싸우고 있다. 4명이 각각 5억원씩, 모두 20억원의 손배 금액을 나뉘서 지고 있다는 얘기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해도 상처는 남는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소속이었던 43살의 이도한은 회사의 설득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소하고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되는 다른 조합원의 모습을 보면서도 버텨냈다. 하지만 주거래 통장까지 회사에 압류된 채 5년을 보냈더니, 생활이 붕괴되고 말았다. 결국 회사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도장을 찍었다. “2003년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를 만들면서 회사의 고용 형태가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받기 위해 애써온 노동자들이 많았어요. 당연히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하하고 싶지 않았죠. 손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거지만…. 힘들게 싸워왔던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이 아직도 남아 있죠.” 이도한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신브레이크 노동자 정준효(42)씨와 조정훈(44)씨가 지난 19일 대구 달서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연서 기자
상신브레이크 노동자 정준효(42)씨와 조정훈(44)씨가 지난 19일 대구 달서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연서 기자
■손배 소송 이겨도 오랜 싸움 끝에 남는 건…

물론 손배 소송에서 노동자들이 이긴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땐 이미 모든 것이 망가진 이후다. “회사는 손배·가압류를 너무 쉽게 이용하는 데 노동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이겨도 낭떠러지, 지면 지옥인 거고….” 자동차 브레이크 패드를 만드는 상신브레이크 노동자인 42살의 정준효는 손배·가압류 소송의 보기 드문 승자다.

상신브레이크는 2010년 노조 간부 등 5명을 해고하고 2011년 그들을 상대로 10억원의 손배 소송을 냈다. 2010년 6월25일부터 57일 동안 파업 기간 비상근무를 하는데 들어간 근무수당과 같은 해 8월23일 직장폐쇄를 하면서 쓴 경비용역 비용 등이 손배의 명목이었다. 2012년 11월 1심 법원은 “쟁의 기간 동안 지출한 연장 특근비 등보다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임금이 훨씬 많은 이상 회사가 입은 손해는 없으며 회사가 직장폐쇄라는 쟁의행위를 스스로 결정한 이상 직장폐쇄를 유지하기 위해 발생하는 비용은 회사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회사의 손배 청구를 기각했다. 2015년 8월27일 대법원 판결로 기각 결정이 확정됐다. 노조 간부 등 5명 가운데 4명은 2017년 4월 해고무효 소송에서도 이겨 복직했다. 노조가 모조리 이긴 것이다.

하지만 6년 걸린 소송 기간 동안 정준효가 얻은 것은 병이었다. 2017년 6월 정준효는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 “암은 회사가 준 선물”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승리에도 불구하고 병을 얻은 건 손배 소송 판결 전 회사가 가압류로 위협을 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손배 청구 전 정준효 등 9명을 상대로 4억1000만원의 가압류를 걸었다. 가압류가 들어오고 손배 소장이 집으로 날아오자 부부 사이도 서먹해졌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정준효는 불안감에 아이를 낳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부부가 아이를 가지기로 한 것은 2012년 1심 판결이 나온 뒤였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지금 5살이다. 정준효는 아이를 가리키며 “승소 덕분에 태어난 아이”라고 말했다.

정준효는 2010년 8월 회사가 직장폐쇄를 했을 때 회사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손배 소송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끝까지 보여주겠다.” 그 말은 정준효의 암세포로 현실이 됐다.

이름 없는 회사의 노동자 강만수는 해고와 가압류의 고통에 허덕이던 2013년 월세 25만원짜리 신혼집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딸이 사는 집에 들러 반찬이라도 전해주고 싶어했던 장인과 장모에게 놀러 오라는 말도 한번 하지 못했다. 1년6개월 뒤 작은 임대아파트를 마련하고 나서야 장인, 장모가 집에 들를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정신이 없어서 슬픈 줄도 몰랐어요. 장인 장모에게 집에 놀러 오시라는 말을 한 뒤에야 갑자기 슬픔이 밀려오더라고요. 속으로 많이 울었죠.”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강만수가 몸과 정신을 세상에 압류당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오연서 정환봉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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