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강원도 한 골프장에서 목격…“건강해 보였다”
지난해 여름에도 같은 골프장에서 골프 친 것 확인
‘사자명예훼손혐의’ 재판 지난여름과 올 초 출석 거부
전두환씨. <한겨레> 자료사진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사실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88)씨가 지난해 8월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첫 형사재판 출석을 거부할 무렵 골프를 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달에도 전씨와 부인 이순자씨를 같은 골프장에서 봤다는 목격자가 나타났다. 병을 이유로 재판 출석을 거듭 거부하면서 멀쩡히 골프는 치러 다닌 셈이어서 비판이 거세게 일 것으로 보인다.
전씨는 2017년 4월에 낸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표현해 지난해 5월3일 불구속 기소됐다. 광주지법은 지난해 8월27일 첫 재판을 열었으나 전씨는 알츠하이머 증상 악화를 이유로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지난 7일 열린 두번째 재판에도 전씨는 역시 알츠하이머 증상 악화 등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16일 <한겨레> 취재 결과, 강원도 ㄱ골프장의 한 직원은 “(전씨가 첫번째 재판에 불출석한) 지난해 여름쯤 우리 골프장을 방문해 골프를 쳤다”고 말했다. 이 골프장의 다른 직원도 “구체적인 날짜를 밝힐 수는 없지만 (전씨가) 지난해까지 우리 골프장에 다닌 것은 맞다”고 확인했다.
알츠하이머 등을 이유로 두번째 재판을 불출석하기 한달 전인 지난달 6일에도 전씨는 이순자씨와 함께 골프장에서 목격됐다. 이날 ㄱ골프장에서 전씨를 목격한 김아무개(51)씨는 <한겨레>에 “그날 처음 (골프장에) 갈 때부터 이상했다”며 “대기 장소부터 귀에 이어폰을 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등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식당에 갔더니 전두환, 이순자, 여성 한명, 남성 한명 이렇게 네명이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골프장에서 만난 전씨가 건강해 보였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날 전씨를 목격한 이아무개(50)씨는 “화장실 갈 때는 (전씨가) 바로 앞에 있었으니까, 5m도 안 되는 거리에서 봤다. 그리고 골프를 치면서 뒤에서 라운딩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팡이나 누구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걸어 다니며 골프를 쳤고 별다른 건강 문제는 없어 보였다. 오히려 젊어 보였다. 가끔씩은 카트를 안 타고도 잘 걸었고, 경기 진행도 굉장히 빨랐다. 심각한 알츠하이머라면 대화가 안 될 텐데, (일행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도 하더라. 전씨가 그늘집에서 카트를 타고 웃으면서 멀쩡하게 이야기했고 너무 정정해 보였다. 그래서 눈여겨보게 됐다. 아버지가 35년생인데,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 훨씬 더 짱짱했다”고 덧붙였다. 김씨 역시 “‘80대 후반인데 그 정도 골프 칠 정도면 진짜 관리 잘한 거 아니냐’고 친구들과 이야기했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골프장에서 전씨를 목격한 박아무개(51)씨는 전씨가 알츠하이머로 법원 출석을 미룬 것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열 받는다”고 잘라 말했다. 박씨는 “물론 운동 삼아서 골프를 칠 순 있지만, 알츠하이머라고 하면서 재판 출석도 안 하는 사람이 공을 치는 건 다른 문제”라고 덧붙였다.
목격자들은 이날 전씨와 함께 골프를 친 일행이 골프장 회장이라는 말을 캐디에게 전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캐디가 ‘브이아이피(VIP)가 왔다’고 이야기했다. 자주 온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씨 또한 캐디가 “‘(전씨가) 자기 회장님이랑 너무 잘 알아서 (2018년) 봄까지 진짜 자주 왔었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 골프장의 회장인 이아무개씨는 2년 전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한 골프 동호회를 통해 한달에 한번 정도 라운드를 같이한다”며 “(전씨가) 나보다 평균 20~30야드 거리가 더 나간다”고 밝힌 바 있다.
전씨가 지난해 여름과 지난달 골프를 쳤다는 강원도 ㄱ골프장의 모습. 누리집 갈무리.
이 회장의 말처럼 전씨는 이 골프장의 단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ㄱ골프장의 한 전직 캐디는 “퇴사한 지는 1년 반 정도 됐는데, 당시 (전씨가) 골프장에 두세달에 한번씩 왔었다”며 “(전씨가 오면) 잘하고 경력이 오래된 조장들이 나간다”고 말했다. 다른 골프장에서 전씨를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다. 경기도에 있는 ㄴ골프장에서 일했던 전직 캐디는 “2017년 11월까지 근무하던 골프장에 전씨가 몇번 왔었다”며 “에쿠스 리무진 2~3대에 경호원들과 함께 타고 오는 걸 봤다”고 했다. 그는 “전씨가 올 때마다 코스가 막혀서 코스 딜레이가 생기기 때문에 캐디들끼리 전씨가 왔다는 걸 다 알게 된다”며 “브이아이피 라운지가 따로 있어서 직접 보긴 힘들지만 경호원들은 지겹게 봤다”고 전했다. 또 그는 “전용 캐디도 따로 있다. 입단속 때문이다. 전용 캐디들은 ㄴ골프장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들로 쓰고 골프장을 위해 뼈를 묻을 정도로 골프장 공지를 칼같이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ㄴ골프장의 한 현직 캐디는 “2018년에도 전씨가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골프 치러 왔었다”고 말했다.
ㄱ골프장에서 전씨가 목격된 바로 이튿날인 지난해 12월7일은 서울시 38세금징수과 기동팀이 체납 지방세 징수를 위해 전달 26일 전씨의 집을 찾았다가 “전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비서관의 말에 가택수색 없이 발길을 돌렸다는 보도가 나온 날이다. 목격자들은 이 보도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친구들끼리 얘기하면서 ‘웃기는 거 아니냐, 어제 골프 치는 걸 봤는데. 이거 제보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고 말했다.
전씨 쪽은 이제까지 전씨의 상태가 법정에 출석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말해왔다. 전씨의 비서 노릇을 하는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두번째 재판이 예정돼 있던 지난 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알츠하이머의 상태가 호전되는 경우는 없고 진행을 늦출 순 있지만 상태는 계속 나빠지는 것”이라며 “전 전 대통령은 방금 한 일도 기억이 안 되는 상태로 하루에 열번도 넘게 이를 닦고 그런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 불출석 의사를 거듭 밝히며 “거기(법정)에 왜 나가는지를 설명해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정상적인 진술을 할 수 없다”며 “알아들어도 2~3분이 지나면 까먹어서 기억을 못 하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첫 재판을 하루 앞둔 지난해 8월26일에도 민 전 비서관은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전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의료진이 처방한 약을 복용해오고 있다”며 “그의 현재의 인지 능력은 회고록 출판과 관련하여 소송이 제기되어 있는 상황에 관해 설명을 들어도 잠시 뒤에는 설명을 들은 그 사실조차 기억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런 정신건강 상태에서 정상적인 법정 진술이 가능할지도 의심스럽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는 전씨 쪽이 주장한 건강 상태로 골프를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신경과 전문의는 “병증 상태에 대한 설명이나 골프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나 위장이다. 진짜로 골프를 잘 쳤다면 (알츠하이머 병증에 대한 설명은)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이 전문의는 “골프는 인지가 굉장히 필요한 운동”이라며 “알츠하이머 초기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알아들어도 2~3분이 지나면 까먹어서 기억을 못 하는 상태’는 알츠하이머 중기”라고 설명했다.
민 전 비서관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제가 일상적으로 연희동에 근무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런 구체적인 일정은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런데 골프장에 가셨으면 뭐가 문제가 있느냐”라며 “알츠하이머라는 게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집에 누워 계시는 병은 아니니까, 일상생활과 신체 활동은 얼마든지 정상적으로 하신다. 지금 댁에서도 간단한 실내 운동 같은 것들을 꾸준히 하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 전 대통령보다 이순자 여사가 정례적으로 모이는 골프 모임과 식사 모임이 두세군데 있는데, 그런 곳에 가실 때 같이 가신다는 얘기는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주빈 정환봉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