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 될지 모르는 결혼의 그날까지 내 집 장만을 마냥 미루는 것이 1인 가구의 특징이지만, 결혼 전이라도 집을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1인 가구들도 늘고 있다. 커피값이나 택시비 등을 아껴 저축하고 리워드앱으로 포인트 적립까지 하는 ‘짠테크’파들도 많다. 일러스트 조재석
▶ 새해를 맞아 서점에 갔다. 재테크 관련 책들 가운데 1인 가구나 비혼을 대상으로 한 책들이 눈에 띈다. 1인 가구의 삶을 택하는 2030이 많아지고 있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재테크 도서들이 ‘4인 가족’ 기준으로 쓰였다. 나도 내 집 마련을 목표로 ‘짠테크’를 해볼까. ‘티끌 모아 티끌’은 아닐까. 내 집 마련, 이번 생에 과연 가능할까?
김혜미(33)씨는 2019년 새해 목표로 ‘저축 많이 하기’나 ‘절약하기’가 아닌 ‘큰 침대 사기’로 정했다. 1백만원이 넘는 큰 침대를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해의 목표까지 된 이유는 뭘까. 1인 가구로 살고 있는 혜미씨에게 ‘큰 침대’란 단순히 침대가 아니라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한 선언이나 다른 없는 결심이자 목표였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원룸에 살면서 쓰던 싱글 침대를 아직도 쓰고 있어요. 10년 넘게 써서 매트리스도 내려앉았고 삐걱삐걱 거려요. 그런데도 안 사고 있었던 이유는 막연히 ‘결혼하면 어차피 새로 살거니까, 결혼하면 큰 침대 사야되니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런데 제가 언제 결혼할지도 모르는데, 안 할 수도 있는데, 그동안 인생의 계획이 모두 결혼에만 초첨이 맞춰져 있었던 거 같아요. 결혼 전의 집은 임시 거처로 생각하고 살았던 거죠. 결혼 후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현재의 행복을 유예해왔어요. 앞으로는 결혼 대신 비혼, 1인 가구로서 어떻게 잘 살지를 고민하기로 했어요.”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2018년 9월 발표한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 비중은 28.5%로 2인 가구(26.9%)를 추월하며 한국에서 가장 보편화된 가구 유형으로 자리잡았다. 그간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삼아 출간됐던 재테크 책이 1인 가구로 타깃을 옮기고 있다. 이들을 겨냥한 금융 상품도 늘어나고 있다.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재테크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이 책들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결혼의 그날까지 내 집 장만을 마냥 미루는 것이 1인 가구의 특징이지만, 집부터 사는 것을 목표로 하라고 입을 모은다. 신지민 기자
집 장만이 목표···부동산 경매 공부까지
최근 몇달간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재테크 책이 잇따라 출간됐다. <1인 가구 돈 관리>(공아연), <나 혼자 벌어서 산다>(정은길), <결혼은 모르겠고 돈은 모으고 싶어>(김경필), <혼자 사는데 돈이라도 있어야지>(윤경희)와 같은 책들이다. <나 혼자 벌어서 산다>의 저자 정은길씨는 “1인 가구의 삶을 택하는 2030이 많은 데 비해 대부분의 재테크 도서들이 ‘4인 가족’ 기준으로 쓰인 것에 의문을 느끼며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책들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결혼의 그날까지 내 집 장만을 마냥 미루는 것이 이제까지 1인 가구의 특징이었지만, 이제 집부터 사는 것을 목표로 하라”고 입을 모은다. 집이 주거 안정은 물론 새로운 수입까지 보장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씨는 책에서 “내가 만약 만 60세 이상이 되었을 때 9억원이 넘지 않는 집을 한 채 가지고 있다면 주택연금을 받을 수 있다. 매달 받게 될 주택연금은 집값이 얼마나 오를 것인지, 내가 얼마나 오래 살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어쨌든 죽을 때까지 내 집에 살면서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내 집 마련이라는 명확하고도 확실한 목표가 불필요한 방향을 많이 줄여주는 것은 물론 미래의 새로운 수입을 창출해 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는 자연스레 ‘부동산 재테크’로 연결된다. 실제로 부동산 경매 학원에 등록해 공부하는 2030들도 늘고 있다. 과거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주류였던 부동산 투자시장에 2030세대가 주요한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법원경매 전문학원 ‘경사모’에 따르면 2030 수강생 비율은 전체의 50% 정도 된다. 경매에 관심을 가진 젊은 직장인들이 경매공부를 위해 만든 스터디 모임도 활발하다. ‘2030 경매 스터디’라는 검색어로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스터디를 모집한다는 글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비혼을 꿈꾸는 1인 가구의 비중이 늘자 보험 업계도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과거 남은 가족을 위한 종신보험이 유행했다면, 최근에는 ‘현재의 나’를 지키려는 실손보장보험, 소액단기보험이 인기를 얻는 중이다. 1인 가구는 향후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다는 점에서 보험에 무관심하기 쉽다. 하지만 병에 걸렸을 때 스스로 의료비나 간병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비한 보험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최근 2030세대의 생명보험 가입건수는 하락세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16년 20대의 생명보험 보유계약건수는 722만6590건으로 전년 대비 1만3265건 줄었다.
2015년에는 723만9855건, 2014년 726만6579건으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30대 생명보험 가입도 2016년 기준 1316만5214건으로 전년 대비 47만1846건이나 줄었다. 2015년 1463만7060건, 2014년 1513만4952건으로 감소세가 뚜렷하다.
그러자 보험업계에서는 앞다투어 미니보험을 내놨다. 미니보험은 보험기간이 짧고 보험료가 소액인 상품으로 소액단기보험이라고도 불린다. 대부분 보험기간이 일회성이거나 1~3년으로 짧다. 엠지(MG)손해보험은 월 1500원대의 1년 만기 운전자보험을 출시했으며 현대해상은 지난해 2300원짜리 모바일 스키보험을 선보였다. 라이나생명다이렉트는 지난해 3월부터 월 보험료 9900원인 치아보험을 판매 중이다. 이밖에도 한화생명은 최저 월 3800원으로 재해사망, 재해장해, 재해소득 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영플러스재해보험’을, 처브라이프생명은 월 630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유방암 전문 보험상품을 내놨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1인 가구가 늘면서 펫보험도 인기를 끈다. 현대해상과 롯데손해보험, 삼성화재가 펫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질병이나 상해는 물론 반려동물이 타인에게 입힌 피해도 보호한다. 또 반려견 사망시 장례지원비를 지급하는 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김송희(34)씨는 “삶의 모든 초점을 나와 고양이, 단 둘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고 10년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내 실손보험은 못 들어도 고양이 보험은 들어야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티끌 모아 먼지라도···‘짠테크’
그러나 적은 월급으로 월세만 내기도 빠듯한 2030세대 1인 가구들도 많다. 그들에게 내 집 마련이나 부동산 경매 낙찰 같은 목표는 너무 거창하고 먼 미래다. 갖고 있는 돈을 어떻게 불릴지 고민하기엔, 애초 기본 자산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비를 조금이라 줄이는 데 집중한다. 커피값이나 택시비 등을 아껴 저축하는 것이다. 이런 ‘짠테크(짠돌이+재테크)’파를 타켓으로 금융 상품도 나오고 있다. 저축 목표를 달성하면 각종 우대금리 등의 혜택을 얹어주는 등 흥미와 재미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카카오뱅크가 지난해 6월에 출시한 ‘26주 적금’ 상품은 넉 달 만에 50만좌를 돌파했다. ‘26주 적금’은 매주 납입 금액을 최초 가입금액만큼 늘려가는 상품이다. 1000원 상품의 경우 첫 주 1000원, 2주차 2000원, 3주차 3000원을 납입하는 구조다. 1인 가구만으로 타켓으로 한 상품은 아니지만 전체 중 20, 30대 비율이 70%가 넘는다. 신한은행은 최근 ‘작심 3일도 여러 번 반복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콘셉트의 모바일뱅킹 쏠(SOL) 전용상품 ‘쏠편한 작심 3일 적금’을 내놨다. 매월 자동이체를 통해 1~3년 만기까지 적립하는 일반적인 적금 형태에서 벗어나 요일별, 소액 자동이체, 6개월 만기로 상품을 설계해 많은 고객들이 부담없이 적금을 만기까지 납입하고 목돈을 만들 수 있게 했다. 우리은행과 엔에이치(NH)농협은행, 케이이비(KEB)하나은행은 고객의 생활 목표에 초점을 둔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 은행은 다이어트나 금연, 걸음 수 등 개인의 목표를 달성할 경우 추가 금리 우대 혜택을 주는 ‘위비 꾹 적금’ ‘엔에이치올원해봄적금’ ‘도전 365적금’을 각각 운영 중이다.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재테크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이 책들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결혼의 그날까지 내 집 장만을 마냥 미루는 것이 1인 가구의 특징이지만, 집부터 사는 것을 목표로 하라고 입을 모은다. 신지민 기자
‘짠테크’가 유행하자 ‘앱테크’(애플리케이션+재테크)를 하는 1인 가구들도 늘고 있다. 앱테크란 스마트폰에 각종 ‘리워드앱’(보상앱)을 깔고 앱에서 요구하는 간단한 작업을 수행해 포인트나 소액 현금으로 보상받는 것을 가리킨다. 큰 돈을 벌 순 없지만 커피값 정도는 벌 수 있다. 2010년 이후 등장한 리워드앱은 초기엔 스마트폰 잠금화면을 해제할 때 나오는 광고를 보면 포인트를 주는 정도였지만, 최근엔 출석체크나 설문조사, 게임과 연계하는 등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걸음 수에 비례해 포인트가 적립되는 ‘캐시워크’가 대표적이다. 캐시워크 하루 이용자 수만 150만명이 넘는다. ‘캐시슬라이드’ ‘허니스크린’ 등은 스마트폰의 잠금해제만 해도 기프티콘이나 포인트로 바꿀 수 있는 고전적인 앱테크 유형이다. 최근엔 잠금해제 이후 광고를 보면 추가 적립해주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하나은행의 ‘하나멤버스’, 씨제이의 ‘씨제이 원’(CJ ONE) 등의 앱은 출석체크하는 이용자들에게 포인트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리워드앱이 이용자의 참여를 요구하지만 방치했을 때 보상을 해주는 앱도 있다. ‘공부타임’ ‘방치타임’ 등의 앱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시간 동안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기본적으로 방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급하는 포인트가 늘어난다. 일정 포인트가 쌓이면 문화상품권으로 교환하거나 상품들로 바꿀 수 있다.
2017년 하반기부터 캐시워크를 사용한 이선영(32)씨는 매달 약 3천원을 모았다고 했다. “하루에 최대 1만보까지 적립이 되기 때문에 하루에 벌 수 있는 돈이 100원이고 한 달이면 최대 3천원”이라며 “적은 돈이지만, 어느 순간 쌓여있는 캐시로 커피 기프티콘을 살 수 있어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테크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1인 가구들도 있다. 어차피 집을 사거나 큰 돈을 모으기 어렵다면 지금 이순간 작은 여유라도 즐기자는 사람들이다. 비자발적인 욜로(You only live once·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 생활인 셈이다. 신아무개(32)씨는 “적은 월급으로 원룸 월세 내고, 공과금 내면 하루 하루 살아가기도 빠듯하다”며 “재테크란 단어는 먼 일이다. 자발적이지 않은 욜로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김아무개(33)씨는 “서울에서 집을 사는 건 이번 생엔 포기했다”며 “연봉이 3000만원이든 8000만원이든 대출을 받아야하는 건 똑같다.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 장만과 결혼을 포기하고 나니, 내 자신을 위해 돈을 써도 여유가 생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여행을 다니며 하고 싶은 일에 모든 돈을 다 쓴다”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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