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강릉 아산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학생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고압산소치료센터에 유은혜 교육부 장관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이 찾아 왔다. 강릉/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17일 발생한 강릉 펜션 가스누출 사망 사고 이후 교육부가 사실상 ‘체험학습 자제령’을 ‘안전점검 강화’ 대책으로 내놓으면서 교육계와 시민들의 비판을 사고 있다. 학생들이 안전하게 체험학습을 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아니라 세월호 참사나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참사 때처럼 학생들의 활동 자체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내놓은 것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체험학습 자제령 논란은 사고 이틀 뒤인 19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각 교육청에 체험학습 ‘재고’를 요청하면서 나왔다. 유 부총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17개 시·도교육청 부교육감회의 등을 열고 “교외체험학습에 대한 안전점검이 필요하다”며 “안전이 우려되는 개인체험학습은 학교장이 진행을 재고해 달라”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이어 “새로 승인할 때에도 안전 우려가 없는지 확실히 살펴달라”고도 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유 부총리의 발언을 두고 이번 사고의 원인이 체험학습이 아닌데 엉뚱한 대책을 내놨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 전아무개(48)씨는 “교육부는 안전점검을 강화하라고 하는데, 부모의 동의를 받아 떠나는 체험학습에 대해 교사가 어떻게 일일이 안전점검을 하겠느냐”라며 “이번 사고의 원인은 보일러 가스누출이었다. 교육부의 요청은 문제 원인과 동떨어진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페이스북에서 한 교사도 “우리는 입으로는 늘 학교 밖의 넓은 세상을 보라고 하면서, 위험이 닥치면 다시 학교 안으로 아이들을 가둬두려 한다. 물론 학교 밖은 위험이 많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품 안에서 학생들을 키울 수 있을까”라며 “우리는 아이들의 현장 체험학습을 막을 게 아니라, 현장 체험학습의 장소, 즉 사회를 행복하고 안전하게 만들 책무가 있다. 정말로 높은 분들께서는 이걸 모르신단 말인가”라고 물었다. 경기도의 또 다른 고등학교 교사 ㄱ(30)씨도 “안전점검을 할 수가 없으니 학교로서는 체험학습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학교에 책임이 돌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들도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자신을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은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체험학습 관련) 예약까지 다 했는데 (학교에서)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한다”며 “세월호 참사 때문에 수학여행 금지, 지금은 체험학습 금지 이렇게 잠시만 금지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고 본다”고 썼다. 다른 누리꾼들도 “사건의 본질이 호도되고 있다. 숙박업소가 안전하게 규정과 매뉴얼에 따라 관리를 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가스누출로 사고가 났는데 왜 문제를 체험학습 쪽으로 돌리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하는 글을 청원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의 근원을 찾기보다 당장 눈앞의 ‘금지’부터 거론하는 교육 당국의 조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교육부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일이 지난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는) 수학여행 중 발생한 사고”라며 초·중·고교의 1학기 수학여행을 중지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교육부는 앞서 2014년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건물이 무너져 부산외대 학생 9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뒤에도 학생회 주최 새내기 오리엔테이션 폐지를 검토했다. 결국 오리엔테이션은 폐지되지 않았지만, 교육부는 당시 ‘입학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반드시 대학의 주관 하에 실시하고, 대학과 무관하게 진행된 입학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사고 발생 시 엄정히 대처한다’는 매뉴얼을 각 대학에 내려보내 논란이 됐다. 이듬해 전국 사립대는 학생처장단 회의를 열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교내에서 진행하자’는 논의를 했고 이로 인해 일부 총학생회와 갈등을 빚었다.
학생들의 자살 대책으로 엉뚱한 조처를 한 교육 당국도 있었다. 2012년 대구시교육청은 학생들의 투신자살이 잇따르자 전체 430개 초·중·고교에 3층 이상 교실 창문이 20~25㎝까지만 열리도록 고정하는 장치 설치를 권장하는 공문을 내려보내 비판을 샀다. 대구에선 2011년 12월부터 2012년 6월까지 10명의 중고생이 잇따라 투신하면서 경쟁교육 체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었다.
‘체험학습 자제령’ 논란이 이어지자 교육부는 20일 설명자료를 내고 “교외 체험학습 자체를 위축시키거나 금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최소한의 안전조치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ㄱ교사는 “19일 학교에서 고3 학부모에게 ‘학부모가 체험학습 장소를 꼼꼼히 확인해주시고, 장거리 이동은 자제해달라’는 단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전아무개 교사도 “(교육부의 해명은) 교육부 장관의 발언이 일선 학교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모른다는 것”이라며 “현장 안전점검이 사실상 불가능하니 체험학습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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