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8년 전국 사립유치원 원장·설립자·학부모대표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유치원에서 (교사) 두 명은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박용진법 이런 거에 대한 생각이 없는데도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전국 사립유치원 교육자 및 학부모 대표 총궐기대회’ 현장에서 만난 유치원 교사 ㄱ씨는 ‘어떻게 참석하게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원장 선생님이 시켜서 천안에서 왔다”고 말했다. “유치원에서 두 명은 나가야한다고 하는데, 다들 일이 있다고 해 동료교사와 둘이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대절한) 버스를 타고 왔다”는 ㄱ씨는 “계속 뒤에 앉아서 딴짓만 하다가 너무 추워서 가려고 한다”며 자리를 떴다.
이날 광장에서는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이른바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막기 위한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주최로 열린 궐기대회에는 사립유치원 원장과 설립자, 학부모 등이 1만여명(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 3000여명) 참가했다.
한유총은 “유치원 3법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악법”이라며 유치원 3법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폐업도 불사하겠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덕선 한유총 비대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박용진 3법이 악법인 이유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인 개인재산에 대해 전혀 인정하지 않고, 처벌만 강화해 오히려 유아교육을 왜곡하고 교육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며 “결국 사립유치원은 문 닫고 국립 탁아소에서 획일적 인재만 키워 세계 경쟁에 뒤떨어지고 창의력을 말살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무시되고 박용진 악법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사립유치원 모두 폐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고도 말했다.
한유총은 집회를 통해 세 가지 사항을 정부에 요구했다. 요구 사항은 △정부가 사립유치원 교육이 필요 없다고 판단하고 나가달라고 요구하면 폐원하고 조용히 물러나겠다는 것 △정부에 필요한 유치원이 있다면 정상평가해서 매입하되, 사립 교사들도 모두 책임져달라는 것 △사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정상적인 시설 사용료를 지불해달라는 것 등이었다.
한유총은 사흘 전인 26일 미리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사립유치원 교육자 및 학부모가 ‘박용진 3법 반대’를 외치기 위해 총궐기대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회 교육위원회가 다음 달 3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유치원 3법’과 더불어 자유한국당이 발의한 유치원 관련 법을 심사, 처리하기로 합의하자 한유총이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8년 전국 사립유치원 원장·설립자·학부모대표 총궐기대회 뒤로 `정치하는 엄마들'이 띄운 메시지가 보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날 집회에서 한유총은 학부모, 유치원 교사의 인터뷰 영상과 현장 발언 등을 통해 “일부 유치원을 꼬투리 잡아 전체 비리로 확대해석한다”, “마녀사냥이다”와 같은 입장을 내보냈다. 고양에서 왔다는 한 유치원 원장은 <한겨레> 기자와 만나 “나는 20년 넘게 유치원을 운영했다. 박용진 3법은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법”이라며 “여론은 안 좋지만 고생은 진탕하면서 이렇게 푸대접받으니 여기 있는 원장들 다 자존심 상해서 나왔다. 횡령이라는 프레임이나 씌우고…”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 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차라리 거지가 되어서 동냥을 한다고 할 정도로 힘들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유치원 원장도 “우리는 지금 여기 생존권을 걸고 나와 있다”며 “말을 하면 그대로 써야 하는데 언론이 왜곡이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4시20분께 사립유치원 인가증을 찢는 퍼포먼스를 끝으로 집회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유치원 3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따라왔다’는 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경기도 군포시의 한 유치원 교직원 ㄴ씨는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원장 선생님이 가자고 해서 왔다”며 “교사들은 유치원에 남아있고 원장 선생님과 기타 직원들, 학부모가 함께 왔다”고 말했다. 울산에서 온 유치원 교사 ㄷ씨는 “원장 선생님이 나와 다른 교사 두 명을 데리고 왔다”며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식비와 교통비는 챙겨줘서 다행”이라고 했다. 일산에서 온 유치원 교사 ㄹ씨도 “박용진 3법 이런 것에 체감이 잘 안 된다”며 “동원된 게 맞다. 원장 선생님이 맨 앞에 있는데 춥다고 먼저 갈 수도 없다”고 했다.
유치원 관계자나 학부모가 아닌데 부탁을 받아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유치원 교사인 친구와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ㅁ씨는 “유치원에서 근무하거나 아이가 있는 건 아니고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친구와 같이 왔다. 박용진 3법이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강원도에서 온 조아무개(17)양은 “유치원을 운영하는 이모가 가자고 해 학교에 결석계를 내고 왔다. 엄마와 작은이모도 왔는데 모두 유치원, 박용진 이런 거 하나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유총은 총궐기대회를 앞두고 지난 23일 사립유치원에 공문을 보내 교사와 함께 ‘유치원당 2명 이상의 학부모’ 동원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치하는 엄마들'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아교육법 24조2항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2018년 전국 사립유치원 원장·설립자·학부모대표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편 이날 총궐기대회 현장 인근에서는 유치원 3법 통과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유아교육의 주인은 유치원 주인이 아니다. 바로 아이들이다!’라고 쓴 현수막을 풍선에 매달아 띄우기도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유아교육 정상화'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유치원 3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신민정 박윤경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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