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소속 활동가들이 유치원 비리를 비호하고 방조한 교육부에 대한 감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치하는엄마들 제공.
“교육 당국이 지금 물러터진 태도를 보이면, 한유총은 늘 투쟁에서 승리해온 역사입니다. 그들은 항상 집단 행동으로 승리했어요. 지금은 하늘이 주신 기회입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비리 유치원 실명 공개를 이끈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립 유치원 공공성 확보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한 교육부를 질타하고 나섰다. 박 의원은 6일 서울시의회 주최로 시의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및 공공성 강화를 위한 열린 간담회’에서 발제자로 나서 ‘박용진 3법 국회 통과’ 필요성 촉구와 함께 교육부에 대해 쓴 소리를 뱉었다. 박 의원이 속한 민주당은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해둔 상태다.
박 의원은 무엇보다 막대한 정부 재정이 투입되고 있는 사립유치원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교육부와 17개 시·도 교육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의원은 “지난 2012년부터 정부가 유치원에 누리과정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면, 17개 시·도 교육청이 지원금을 받는 기관에 대해 전수 조사나 부분감사를 하는 것이 당연하며 법적인 의무 사항”이라며 “왜 6개 시·도교육청 빼고 나머지는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서울시교육청, 대한민국 교육부 다 마찬가지”라며 “정말 실망스러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의원은 또 교육부가 감사 결과를 비공개한 점에 대해 꼬집어 비판했다. 박 의원은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요구한 정보공개 청구 관련해 지난 7월 교육부가 주관해 감사관 회의가 있었고 정보 공개를 하기로 한 회의 자료를 봤다”며 “교육부 관계자가 국감에서 ‘정보공개청구한 사람한테만 준다’고 답하는 것을 보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개해야할 책임과 권한이 있는 교육 당국이 공개를 안하면 그걸 누가 하냐“며 “교육 당국의 안이한 태도와 무책임함에 놀랐다”고 질책했다.
유치원 비리 관련해 <한겨레>와 의원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용진 국회의원.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는 이렇게 교육부를 강도높게 비판하면서도 유은혜 교육부 장관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박 의원은 “유은혜 장관이 문제제기 20일 만에 대책을 냈고, 관련된 개정 법안이 당론으로 국회에까지 갔다”며 “그래도 믿을 것은 교육 당국뿐”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이 간담회에서 교육부에 대해 쓴 소리를 뱉는 동안,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는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유치원 비호·방조한 교육부에 대한 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열였다.
정치하는엄마들이 감사원에 이날 제출한 감사 청구서 안에는 △비리 유치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법무부 유권해석에도 교육부가 명단을 즉각 공개하지 않은 점 △지난해 추진하던 사립유치원 회계시스템 도입 사업을 돌연 취소한 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수차례 위력을 행사해 정부 주최 토론회를 무산시켰는데도 공무집행방해로 고발하지 않은 점 등을 감사 청구 이유로 밝혔다.
김신애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교육부가 법률 자문을 통해 '감사 결과를 비공개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유권해석을 받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개인 영업의 이익에 피해를 주는 것이므로 비리 유치원의 명단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한 교육부는 학부모의 알 권리를 이렇게 박탈해도 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또 교육부 주최로 열린 세미나를 파행으로 이끈 한유총을 교육부가 업무 집행죄로 고소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따져 물었다.
김 활동가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아이들을 비즈니스 수단으로 삼는 나라에도 미래는 없다”며 “유치원이 아이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을 때 교육부는 무엇을 했는지 강성하라”고 촉구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의 법률지원을 맡은 류하경 변호사는 “모든 공무 사항 서류를 법률에 따라 공개하는 게 원칙인데 교육부는 현재 관련 사항이 수사 중이라는 사실과 개인 정보 등 두 가지 이유를 들며 비공개하고 있다”며 “교육부가 법률 자문 결과까지 무시하면서까지 정보 공개를 거부한 것에 대해 내부적인 사정을 들여다봐달라고 감사원에 청구했다”고 설명했다.
류 변호사는 “일반인이 했으면 바로 현행범으로 체포될 일인데도 토론회나 세미나에서의 한유총의 폭력, 공무집행방해 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안 했다”며 “책임자부터 이에 대한 사유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왜 국회가 대다수 시민과 학부모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사립유치원 원장의 이익을 애써 대변해왔는지 규명하고 싶다”며 “앞으로 어떤 정치인이 한유총을 두둔하고 유아교육 정상화와 공공성 강화를 막았는지 알아내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례적으로 기독교방송(CBS) 김영태 선임기자도 참석했다. 김 기자는 2017년 교육부가 추진하던 사립유치원 회계시스템 도입 사업이 돌연 중단된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김 기자는 “이 사건은 한유총이 교육부에 압력을 행사해 자기의 이익을 관철시킨 교육농단 사건”이라며 “앞으로 이익집단에 의해 교육정책이 절대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교육당국에 경고하기 위해 기자회견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국무조정실은 사립유치원 비리 개선 대책을 내놓으면서 사립유치원에 국가관리회계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고 관련 예산 6억6천만원을 편성했으나 불용 처리했다.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유아교육 5개년 계획'에서 '유아교육종합정보시스템 구축'을 돌연 삭제하고, 2018년에도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만 사실상 사업을 중단했다. 2018년 2월 서울시교육청 담당자가 교육부에 문의한 결과, 교육부 담당자가 구두로 '그 사업은 중단됐다'고 통보한 것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감사적발 유치원 명단이 공개되면서 사립유치원 비리 백태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일어났고 교육부가 국공립유치원 및 초중고 회계관리시스템인 ‘에듀파인’을 사립유치원에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상 비리유치원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오히려 국가회계시스템 도입을 포기하고 사립유치원의 방만한 회계를 교육부가 묵인했다고 볼 수 있다.
김 기자는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실종사건에 대해서 반드시 감사원 감사를 실시해서 진상을 밝혀야 한다”며 “교육당국이 익명성이라는, 유령과 같은 관료집단 속성에 숨어 이익집단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일은 더 이상 있게 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양선아 홍석재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