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사 ‘다스’의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공판이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해 변호인 옆 피고인의 자리가 비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한겨레> 신소영 기자
“과거 대법원 판례를 보면, 직권남용죄의 직무를 법상, 제도상, 사실상 인정되는 굉장히 넓은 것으로 봐왔습니다. 직권이 법령상 있다 없다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19일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에서 법원의 직권남용죄 무죄 판단이 잇따르는 상황을 “어불성설”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김재수 전 미국 엘에이(LA) 총영사 등에게 다스 소송 법리 검토와 처남의 상속세 절감 방안 검토를 지시한 행위(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에 무죄를 선고했다. 윤 지검장의 작심 발언은 최근 법원이 직권남용 인정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본다는 법조계 일각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에게 직권남용죄를 묻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이런 지시를 할 직무상 권한(직권)이 있는지 △김 전 비서관 등이 ‘의무 없는 일’을 했는지 △또 직무 때문에 이런 일을 했는지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 판단을 정리하면 ‘개인 소송을 검토하라는 식의 지시는 직무상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직권남용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조계 일부에선 재판부가 직권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혀 봤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은 구체적인 법령으로 열거할 수 없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법원도 ‘사실상 영향력이 있다고 해석’되는 경우로 직권을 폭넓게 인정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부도 현대차가 최순실씨 쪽 광고회사와 계약을 맺도록 한 행위에 대해 “대통령은 기업체 활동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재판부가 김 전 비서관을 단순히 ‘이명박의 집사’로 정리한 대목도 문제로 꼽힌다. 재판부는 김 전 비서관 등이 사적 인연으로 다스 소송을 챙겼으니, 그가 ‘의무 없는 일’을 한 게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는 ‘직권남용 행위’와 ‘의무 없는 일’의 사이의 인과관계를 ‘지시가 없었다면 하지 않을 일’을 기준으로 따져왔다. 법원 내부에서는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09~2010년 벌어진 처남 상속세 절감 방안 검토 지시 역시 ‘사적 관계’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판사는 23일 “과연 대통령의 위치가 아니었어도 청와대의 역량과 자원을 투입해 소송 검토 등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판사도 “법 취지를 살리려면, 직권은 넓게 인정하되 사적 목적으로 남용됐는지 판단하는 게 맞다. 이 전 대통령 1심 판결은 법 테두리 안의 권한행사는 처벌하는데 오히려 법을 넘나드는 권한행사는 처벌할 수 없는 모순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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