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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폐원 뒤 재개원하면 그만?…사과 요구에 ‘폐원 통보’한 비리유치원

등록 2018-10-18 05:01수정 2018-10-18 13:01

비리 사과는 커녕 폐원 일방 통보
“아이 어디로 가나” 학부모 발동동

폐원해도 회계 가사 안 이뤄져
재개원 막을 제도적 장치 없어
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주최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사립 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박 의원이 토론회 개최를 반대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주최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사립 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박 의원이 토론회 개최를 반대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리는 나 몰라라…. 운영 안 하고 폐원으로 일단락시키겠다니 밤새 잠도 안 오네요.” “폐원하겠다는 소리는 반협박이죠. 여기 없어지면 당신 아이들 어쩔 거냐. 이걸로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협박이죠.”(부천 지역 한 ‘맘카페’에 올라온 하소연)

교육청 감사에서 비리가 적발된 유치원들이 잇따라 폐원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장의 사과를 요구하던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지켜달라’며 읍소하는 처지로 바뀐 곳도 있다. 현행법은 유치원 문을 닫은 원장이 다른 곳에서 유치원을 다시 열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사과 대신 ‘폐원 통보’한 비리 유치원 경기도교육청 감사에서 비리가 적발된 부천시의 유치원 2곳이 학부모들에게 “신규 원아모집을 하지 않고, 유치원 문을 닫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ㅅ유치원은 방과후학교 업체에 교재비를 지급한 것처럼 서류를 작성한 뒤 원장의 동생에게 주는 등 4천여만원을 부당하게 사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문자로 신규 원아모집 중단을 통보한 ㅎ유치원은 교비 6500만원을 원장의 개인활동비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난 곳이다.

문제는 사립유치원이 ‘갑작스러운 폐원’을 통보하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유치원이 폐원 사유서를 작성해 교육지원청에 폐쇄인가를 신청하면 교육청은 서류를 검토해 인가를 내줘야 한다. 물론 재원 중인 아이들과 교사의 재배치 계획서가 제출돼야 한다. ㅅ유치원의 한 학부모는 “사과 뒤 투명경영 다짐을 기대했지만 적반하장”이라며 “아이가 정들어버린 유치원을 갑자기 옮겨야 한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ㅎ유치원의 신입 모집을 기다리던 한 학부모는 “소사·범박·옥길 지역은 유치원이 포화상태인데 내년에 신입생 모집을 안 한다니 당혹스럽다”며 “다른 유치원 경쟁률이 더 높아지겠다”고 우려했다.

■ 국고 지원에도 폐원 때 감사 절차 없어 매년 수억원의 지원금을 받지만 폐원 때 회계 감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교재·교구비를 지원받았다면 해당 물품을 교육청에 반납하는 것으로 끝이다. 비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유치원 원장들이 ‘폐원 카드’를 내미는 이유다. 정인숙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은 “(유치원에 지원되는 돈이) 보조금이 아니라 지원금이라는 이유로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며 “지원금이라면 학부모 계좌로 주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누리과정 지원비로 매달 1인당 29만원씩 사립유치원 통장에 입금해 주고 있다. 이런 국고지원금의 규모는 사립유치원 예산의 45%를 차지한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회계를 들여다보려면 감사에 착수해야 하는데 감사에 착수할 근거가 없다”며 “다만 ㅅ유치원은 비리 유치원 목록에 오르는 등 논란이 있는 만큼 학부모 민원이 들어온다면 살펴볼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 폐원 뒤 제재 없이 재개원도 가능 학부모들은 비리를 저지른 유치원 원장들이 교육계로 재진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유아교육법은 유치원 시설·설비를 갖춘 사람이 설립을 신청할 경우 교육감은 인가하게 되어 있다. 각 지원청이 폐원 관련 서류를 수기로 보관하는 등 전산화조차 되어 있지 않아 유치원 설립자의 과거 이력을 들여다볼 수도 없다. 경기도교육청 학원지원과는 “성범죄자만 아니라면 유치원 설립자에 대한 제한 사항은 하나도 없다”며 “교육청 간의 정보 교환도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와 학부모들은 사립유치원 비리 엄단 방침을 환영하면서도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혜경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강사는 “유치원이 교육기관이지만 지금껏 유치원 설립조건은 ‘재력’뿐이라고 할 만큼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며 “관련 제도를 강화해 더는 교비를 쌈짓돈처럼 쓸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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