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 노동의 눈물┃ 화장품 판매노동자 건강실태
김승섭 교수 연구팀 화장품 판매 2806명 건강 조사
의자, 화장실, 휴게실의 부재…노동자들은 병들었다
발 질환 일반인의 67배, 일부러 큰 치수 신발 신어
“고객용 화장실 이용하다 걸리면 관리자 난리 쳐”
온종일 서서 근무, 태아 흘러내려 유산하기까지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백화점·면세점 노동자들이 판매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증언하고 있다.
‘앉지 못하는 의자, 사용 못 하는 화장실, 쉬지 못하는 휴게실’
17일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열린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건강실태 조사 결과 발표 및 증언대회’의 제목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이 공동개최한 이날 발표회에는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 연구팀(김승섭·최보경·김지환·윤재홍·유정훈)이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 노동자 2806명의 건강실태 등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샤넬, 이브 생로랑, 디오르, 랑콤, 조르지오 아르마니, 바비 브라운…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내로라하는 ‘브랜드’ 화장품을 파는 노동자들은 아프고, 병들고, 지쳐있었다. 판매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부재들’로 요약된다. 의자와 화장실, 그리고 휴게실의 부재. 각각의 부재는 노동자의 몸을 갉아먹었다.
의자는 나의 것이 아니다
종일 서서 일하는 판매직 노동자들에게 의자는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몸의 무게를 오롯이 견디는 두 발과 다리의 부담을 잠시라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매직 노동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자 하나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 김승섭 연구팀 조사결과 응답자의 27.5%는 매장에 직원용 의자가 없다고 답변했다. 의자가 있지만 앉을 수 없는 경우 37.4%였다. 판매직 노동자 세명 중 두명은 매장에서 의자를 사용할 수 없는 셈이다. 앉지 못하니 발과 다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상식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근무 중 발의 통증을 경험한 경우는 2806명 중 2555명으로 전체의 91.1%에 달했다.
통증은 쌓여 질병이 된다. 이번 조사에 응한 판매직 노동자들의 7.9%는 족저근막염, 6.7%는 무지외반증으로 최근 1년 사이 병원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다. 족저근막염은 발바닥 중앙을 평평하게 받치는 인대에 염증이 생기는 질병이고, 무지외반증은 엄지발가락 관절이 튀어나와 변형되는 질병으로 모두 발에 생기는 병이다. 이 수치를 건강보험공단데이터(2013년·20~49세 직장 여성)와 비교 분석하면 일반인보다 족저근막염은 15.8배, 무지외반증은 67배 더 앓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통증은 발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리 정맥이 비틀리는 하지정맥류를 겪는 판매직 노동자는 전체의 15.3%로 일반인보다 25.5배 높았다. 허리도 무사하지 않다. 요통을 겪는 판매직 노동자는 76.6%로 일반인의 5.3배다. 척추측만증 질환자의 경우 11.1%로 일반인보다 55.5배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면세점에서 17년 동안 일을 해온 최상미 엘카코리아 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일을 한 지 17년만인 최근에야 의자가 들어왔다. 그 전에는 서류 작업을 위해 고객용 의자에라도 잠깐 앉으면 관리자들이 귀신같이 찾아와 지적했다”라고 말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판매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등에 대한 실태 조사에 나서자 일부 백화점과 면세점은 지난 8월부터 매장에 직원용 의자를 비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배치가 안 된 곳이 많고, 의자가 있어도 앉아도 되는지 모르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서 있기’를 강요당하는 노동자의 발과 다리는 붓는다. 그래서 매장에서 유니폼처럼 신어야 하는 ‘유니화’는 자신의 치수보다 큰 것을 신는다. 김수정 한국시세이도 노동조합 사무국장은 “(발이 붓고 변형되어) 맨발로는 창피해서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다. 유니화 신청할 때 한 단계 크게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김승섭 연구팀의 심층 인터뷰에 응한 10년 차 면세점 노동자 한민영(가명)씨도 “9시간 구두를 신다 보면 무지외반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무지외반증 말고도 티눈이 엄청 많이 생긴다. 그래서 신발 치수가 원래 245㎜인데 260㎜를 신고 일한다. 신발이 엄청 크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티눈이 안 생긴다”라고 이야기했다. 실제 김승섭 연구팀 조사결과 유니화를 본인 사이즈보다 크게 신청한 경험이 있는 판매직 노동자는 72.9%였다.
온종일 서서 일하다가 유산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조사결과 임신 경험이 있는 노동자 중 유산을 경험한 비율은 11.4%였다. 최상미 부위원장은 “임신 5개월째부터 아이가 밑으로 처져 있어 의사가 복대 착용을 권유했다. 온종일 서 있으니 아이가 밑으로 흘러내려 유산이 되는 경우도 많이 목격했다. 아이가 더 아래로 흐르지 않게 (자궁경부를) 꿰매는 수술을 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장시간 서서 일하면 배 속에 있던 아이는 아래쪽으로 계속 흘러내린다. 이 경우 유산의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자궁 쪽으로 공 등을 넣어 태아를 위로 밀어낸 뒤 자궁경부를 봉합하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방광염, 일반인의 3.2배
화장실의 부재 역시 판매직 노동자들을 아프게 한다. 사실 화장실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판매직 노동자들은 ‘고객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한다. 자신이 일하는 층에 직원용 화장실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아니면 다른 층의 화장실을 써야 한다. 손님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다.
김승섭 연구팀의 심층 인터뷰에 응한 17년 차 백화점 노동자 김민영(가명)씨는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다 걸리면 난리가 난다. 백화점 관리자한테 ‘왜 고객용 시설을 이용하냐’라고 질책받는다. 고객들이 직접 컴플레인을 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김승섭 연구팀 조사결과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판매직 노동자는 77.4%에 달했다. 화장실에 갈 필요가 있었으나 가지 못한 경우는 41.9%였다. 그 이유(복수응답 가능)로는 ‘매장 인력이 없어서’가 62.4%로 가장 많았다. 이어 ‘화장실 칸수 부족’(24.1%), ‘화장실이 멀어서’(21.6%) 등의 이유가 나왔다. 응답자의 42.2%는 ‘화장실에 가야 할까 봐 목이 말라도 물을 안 마신 적이 있다’라고 답했다.
화장실을 못 가는 것도 병을 부른다. 김승섭 연구팀 조사결과 지난 1년 방광염을 진단받거나 치료받은 판매직 노동자의 비율은 20.6%였다. 비슷한 나이의 여성노동자 평균보다 3.2배 높은 수치다. 방광염만 문제가 아니다. 39.9%의 판매직 노동자는 화장실을 못 가 생리대를 교체하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로 인해 피부질환 등을 경험한 경우는 17.2%였다.
아픈 몸 누일 곳도 없어
아픈 몸을 잠시 쉬게 할 휴게실도 부족하다. 판매직 노동자들에게 휴게실은 손님과 관리자 등 사방에 존재하는 ‘눈길’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다. 매장에서는 앉을 수도 없고 벽에 기댈 수도 없고, 몸을 한 번 쭉 펴기도 힘든 판매직 노동자에게 휴게실은 그만큼 절박하다. 하지만 지난 한 달 휴게실을 사용했다는 판매직 노동자는 41.9%에 불과했다. 그 이유(복수응답 가능)로는 ‘휴게실에 의자가 부족해서’라는 답변이 65.7%로 가장 높았다. ‘휴게실 면적이 좁아서’(475.%), ‘휴게실이 멀어서’(26.3%) 등의 대답도 나왔다. 휴게실 대신 쉬었던 곳(중복응답 가능)은 백화점 노동자들의 경우 ‘카페’(47.9%)나 ‘직원식당’(38.6%), ‘비상계단’(37.5%) 등이 가장 많았다. 면세점 노동자들은 게이트 근처(44.1%), 카페(43.4%) 등에서 휴식을 가져야 했다. 최상미 부위원장은 “임신을 했을 때도 담요를 깔고 계단에서 쉬어야 했다”고 말했다.
제때 쉬지 못하는 것 역시 근육과 뼈에 문제가 생기는 ‘근골격계’ 질환을 부른다. 김승섭 연구팀 조사결과 지난 3개월 동안 팔 등이 아픈 ‘상지통’을 경험한 판매직 노동자는 77.1%, 다리 등이 아픈 하지통을 경험한 경우는 82%, 허리가 아픈 요통을 경험한 경우는 76.6%였다. 이를 제4차 근로환경조사(2014년·19~52세 여성노동자) 데이터를 참고해 비교·분석하면 판매직 노동자들은 일반인들보다 상지통은 2.3배, 하지통은 3.7배, 요통은 5.3배 더 앓았다.
산업재해 처리는 할 수 없다
온몸이 아프지만 산업재해 처리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김승섭 연구팀 조사결과 부상이나 질병을 경험한 판매직 노동자 368명 중 요양급여를 신청한 사람은 46명인 12.5%에 불과했다. 다만 산재신청을 한 사람 중 82.6%인 38명은 산재를 인정 받았다. 산재신청을 하면 인정을 받을 확률이 높지만, 대부분의 판매직 노동자들은 신청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회사도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다. 회사의 산재 신청 교육을 경험한 판매직 노동자는 17.4%에 불과했다.
전하영 엘브이엠에이치(LVMH) 코스메틱스 노동조합 위원장은 “산재 처리는 거의 못하게 되어 있다. 최근에는 회사가 실비 보험에 가입을 해서, 산재신청을 하려는 노동자들에게 실비로 정산하라고 회유한다. 산재 처리를 하면 점검 등이 나올 수 있다는 이유다. 실제 산재 승인을 받기도 쉽지 않다. 나도 허리 디스크로 산재 처리를 받으려고 했는데, 막상 병원 가니 그동안 계속 아팠다는 증빙이 쌓여있지 않으면 승인이 어렵다고 했다. 특히 하지정맥류 같은 경우는 증명이 너무 어려워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2일 서울 중구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판매직 노동자들의 ‘앉을 권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나온 판매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소박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 앉을 수 있게 해달라, 고객용 화장실을 쓰게 해 달라, 제대로 쉴 수 있는 휴게실을 마련해달라 등이다. 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절차도 복잡하지 않은 이 소박한 요구들은 십여년이 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김승섭 교수는 “화장실을 이용하게 해달라는 것은 18세기 산업혁명 때 나왔던 노동자들의 요구였다. 그 뒤로 3세기가 지난 2018년, 명품 화장품을 파는 노동자들이 화장실에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리고 생리대를 갈지 못해 피부염으로 아파하고 있다. 의자에 앉지 못해 하지정맥류와 족저근막염에 걸리고, 일하는 동안 기댈 수 없고 앉을 수 없는 상황에서 휴게실마저 가지 못해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다. 백화점·면세점의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상품의 대가를 노동자의 몸이 치르고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결과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 “이번 연구결과가 화장실이라도 편히 갈 수 있게 되거나 매장에서 노동자들이 잠시라도 마음 편히 앉을 수 있는 작은 변화로라도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글·사진 정환봉 최민영 기자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