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거부로 국회 인준 표결이 지연되는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 한겨레 자료사진
11일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국회 추천 재판관의 임명 지연으로 인한 헌재의 ‘기능마비’가 쟁점이 됐다. 헌재는 기능마비 상태를 호소하며 조속한 해결을 요청했고, 여야는 ‘헌재 마비’의 책임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김헌정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은 이날 국감에서 업무보고를 통해 "9월19일 재판관 9명 중 5명이 퇴임한 이래 아직까지 국회 추천 재판관 3명이 임명되지 않아 재판관 공백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종석·이영진·김기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조속히 임명해 심판기능 전면 마비 사태를 조속히 해결해줄 것을 호소했다.
김 처장은 “현재 6인의 재판관으로는 헌법재판소법상 심판정족수 7인이 충족되지 않아, 평의 변론이나 선고 등 심판기능이 전면 마비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본안 재판에 앞서 부적법 여부를 결정하는 지정재판부도 구성하지 못하는 등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판관회의 역시 정족수 미달로 개최가 불가능하고, 배당조정 등 행정사항 처리도 어렵다. 업무 공백이 조속히 해결돼 재판소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국회가) 적극적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10일 “국회가 헌법재판소 공백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며 “헌법이 부여한 기본 책무를 다해달라”고 촉구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의사진행발언 등을 통해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강변했다. 김도읍 의원은 “문 대통령이 헌재 공백에 대해 국회를 비판했지만 그건 문 대통령 탓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고위공직자 임명의 기준과 원칙을 스스로 파기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은재 의원도 “기능마비는 청문경과보고서도 채택되지 않은 이석태·이은애 재판관 임명을 강행한 것 때문이다. 야당의 정당한 문제 제기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기능마비의 책임을 야당에 떠넘겨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제원 의원은 “국감 첫날부터 대통령이 국회에 훈계하고 야당을 저격했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오늘의 이 국면을 야기한 주범”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의 주광덕 의원은 “헌재 공백은 유감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인사권을 주권자인 국민 뜻에 어긋나게 행사하고도 모든 책임을 국회에 전가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형식적으로는 국회에 책임이 크다고도 볼 수 있지만, 사안의 본질에서 보면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가 문제다. 야당의 일방적 발목잡기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송기헌 의원은 “후보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표결을 해서 부결하면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회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 책임을 여기서 따지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표결조차 거부하는 야당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같은 당의 김종민 의원은 “선거결과에 승복하듯 절차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정해진 절차대로 국회에서 빨리 표결해야 한다. 왜 또 다시 인사청문회를 하자는 것이냐”고 말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식물 헌재를 만든 국회가 과연 헌재에 대한 국정감사를 할 자격이 있는가 의문이다. 오히려 헌재가 위헌 상태를 만든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재판을 해야 할 지경이다. 법사위의 여야 의원 전원 명의로 헌재재판관 후보자 3인에 대한 청문경과보고서 채택 및 본회의 표결을 조속히 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자”고 말했다.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어진 본 질의에서 “헌재가 정상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만든 책임을 통감한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 사과한다”며 일어나서 헌재 관계자들에게 90도로 절을 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헌재 결정을 기다리는 사건이 너무 많다. 보건복지부는 낙태죄에 대한 위헌 여부 결정을 기다리느라 낙태 시술 의사에 대한 처벌을 유예하고 있고,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대한 위헌 여부 결정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헌재가 심리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당사자인 국민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의 금태섭 의원은 “헌법에서 입법·사법·행정부가 재판관을 세명씩 지명·추천하도록 한 것은 삼부가 서로 존중하라는 것이다. 국회도 대법원장의 재판관 지명이나, 상대당의 추천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응천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선 자유한국당 쪽이 김이수 권한대행의 인사말도 못 받겠다고 해서 파행이 되더니, 올해는 청문경과보고서 채택에도 동의해주지 않는 바람에 헌재의 기능 자체가 마비됐다. 유독 헌재에 대해서만 이렇게 가혹하게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라고 야당 쪽을 겨냥했다.
박지원 의원은 “지금 대치상황을 보면 당분간 헌재가 식물 상황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헌재소장은 국회의장과 야당 원내대표를 방문해, 바른미래당 추천으로 여야의 이견이 없는 이영진 후보자만이라도 의결해달라고 요청해 정상화를 서두르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권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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