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에서 공사 관계자 등이 화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기름 260만ℓ(시가 34억원어치)를 태우고 화재발생 17시간만에 진화된 고양시 저유소 화재 원인으로 풍등이 지목된 가운데 실시간 검색어에 ‘풍등’이 오르는 등 풍등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새해맞이 기원을 하며 대규모로 풍등을 날리기도 한다.
이번 국가적 화재의 근본적 원인은 1차적으로 화재예방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저유소 관리 실패에 있지만, 풍등으로 인한 화재 위험은 이전부터 지적돼 왔다. 풍등이 불이 붙은 연료를 품고 날아다니다가 불씨가 살아있는채 건축물이나 산 등에 떨어져 화재를 일으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1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상공을 떠다니던 연등 불씨가 소망탑에 옮겨붙어 불이 나기도 했고, 지난해 정월대보름 땐 부산의 달집 태우기 행사장 근처에서 풍등이 잡목에 떨어져 임야를 태우기도 했다. 2015년 1월엔 강원도 동해시와 경남 거제에서도 관광객이 날린 풍등이 떨어져 화재가 발생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26일 소방기본법 12조가 ‘풍등 등 소형 열기구를 날리기, 그 밖에 화재예방상 위험하다고 인정되는 행위의 금지 또는 제한’이라는 내용이 추가돼 개정됐다. 따라서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이 풍등 날리기 금지 또는 제한 명령을 내렸는데도 풍등을 날리다가 적발되면 2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소방청 관계자는 “풍등을 날리도록 허가를 내주는 게 아니라 지역 소방본부나 소방서에서 한시적으로 풍등 사용 금지 명령을 내렸을 때, 풍등을 날리면 단속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과 올초 부산과 속초 등에서 소방기본법을 근거로 풍등 단속에 나선 바 있다.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장종익 형사과장(왼쪽)이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된 풍등과 동일한 제품을 공개하며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는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에 대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전날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ㄱ(27)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사진(시계방향)은 경찰이 공개한 CCTV에서 ㄱ씨가 날린 풍등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 풍등이 저유소 쪽으로 떨어지는 모습, 저유소에 폭발이 일어나는 모습, 저유소에 풍등이 떨어진 뒤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연합뉴스
풍등의 화재 위험성에도 풍등을 날리는 것이 전통문화라고 취급돼 온데다 화재 요인이라는 인식이 없어 여전히 각종 행사에서 풍등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대다수의 소셜커머스에서 1000원대 저럼한 가격에 풍등을 손쉽게 구매할 수도 있다. 고양 저유소 화재를 일으킨 혐의로 붙잡힌 ㅂ(27)씨도 인근 초등학교 행사에서 띄워보낸 풍등이 ㅂ씨가 일하는 공사장 근처에 떨어지자 주워 날린것으로 밝혀졌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풍등이 더 큰 참사로 이어질 뻔 했던 화재 원인으로 지목되자 시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김아무개(36)씨는 “풍등이 화재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큰 불이 옮겨 붙을 것을 대비해야 하는 저유소가 작은 불씨에도 무너지는 것을 보니 어이없다”고 말했다. 누리꾼 krap****도 “저 중요한 시설을 저렇게 허술하게 관리한 공사에 책임이 있다면 더 있지, 저 젊은이한테 모든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고 밝혔다.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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