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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시사만화가 감옥 간 사례 없다”는 윤서인의 발언은 사실일까

등록 2018-09-13 10:53수정 2022-08-18 16:24

[뉴스AS]
만화가 윤서인, 고 백남기씨 유족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1년 구형
“만평으로 만화가가 감옥에 간 사례는 과거 군사정권에도 없었다” 주장
1956년 81살 생일날 선물로 받은 서예 작품을 이승만 대통령(가운데)과 부인 프란체스카(왼쪽 둘째)씨가 살펴보고 있다. e영상역사관
1956년 81살 생일날 선물로 받은 서예 작품을 이승만 대통령(가운데)과 부인 프란체스카(왼쪽 둘째)씨가 살펴보고 있다. e영상역사관

고 백남기씨 유족의 명예를 훼손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만화가 윤서인씨와 김세의 전 문화방송(MBC) 기자가 지난 11일 각각 징역 1년을 구형받았습니다. 이들은 2016년 10월 백남기씨가 위독한 상황에 백씨의 딸이 국외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겼다는 허위 사실을 담은 만평과 글을 인터넷 사이트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혐의로 기소됐는데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 7항 ‘불법 정보의 유통 금지 등’을 보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이나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정보를 불법 정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형 사실이 보도된 이후 윤씨가 직접 밝힌 입장도 화제입니다. 윤씨는 구형 직후인 11일 자신의 SNS에 “언론사에 그린 만평으로 만화가가 감옥에 간 사례는 과거 군사정권에도 없었다”며 “미안하지만 난 선고에서 무죄가 될 것을 확신한다. 아무리 미친 세상이라도 이걸로 만화가를 감옥에 보내지는 못할 거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13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 한 번 “아직도 제가 왜 감옥에 가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이슈를 따라가야 하는 직업 시사만화가로서 세태를 풍자한 것”이라며 “명백한 허위사실을 만화로 그린 시사만화가라도 지금까지 감옥에 간 경우는 없다. 도의적으로는 미안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이라면 감옥에 가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동아일보>에 실린 고바우영감. 국립중앙도서관
<동아일보>에 실린 고바우영감. 국립중앙도서관

하지만 누리꾼들은 윤씨가 “언론사에 그린 만평으로 만화가가 감옥에 간 사례는 과거 군사정권에도 없었다”고 쓴 부분이 틀렸다고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신문에 실린 글이나 만평 때문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신문이 폐간되는 등 처벌을 받는 일은 여러 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재정권은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를 붙였지만, 대부분 국가원수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모욕했다는 이유였죠. 대표적인 사건을 소개합니다.

만화가 윤서인씨 페이스북 갈무리
만화가 윤서인씨 페이스북 갈무리

■ ‘견통령’, ‘괴뢰 이승만’ 사건 한자 활자를 직접 활판에 꽂아 신문을 만들던 시절에는 비슷한 모양의 한자를 헷갈려 찍는 바람에 신문사 사장이 구속되거나 신문이 무기정간 처분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이승만 대통령의 ‘큰 대’자를 찍을 때 ‘개 견’자 활판과 헷갈린 겁니다.

‘대구매일신문’은 1950년 8월29일 1면 머리기사의 본문에 ‘이 대통령’을 ‘이 견통령’으로 오식(활판에 활자를 잘못 꽂음)해 무기정간 조치를 당하고 사장 이상조가 2개월간 구속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상조는 신문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10월1일자로 천주교 대교구장 최덕홍 주교에게 인계되었다. 주간은 사임하였다.

또 1953년에는 전북 이리에서 발행되던 ‘삼남일보’ 7월11일자 기사 제목과 충북 청주에서 발행되던 ‘국민일보’ 7월23일자 기사에서 ‘대통령’을 ‘견통령’으로 오식하여 두 신문은 8월 12일 무기 정간 처분을 받았으며 담당자들이 구속돼 구류 처분을 받은 일이 있었다.

-강준만 <한국대중매체사>

이승만 대통령 이름 앞에 ‘괴뢰’라는 단어가 붙는 실수가 벌어져 국가보안법 및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된 사건도 있습니다.

1955년 3월 14일에 일어난 ’동아일보’ 오식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졸렬했다. 동아일보는 기사 제목에서 이승만의 이름 앞에 괴뢰라는 단어가 첨가된 실수를 윤전기가 돌아가기 시작한 지 10분 뒤에서야 발견하였다. 발견 즉시 윤전기를 세웠지만 이미 인쇄된 신문은 가판대에 나간 상태였다. ‘동아일보’는 신문 회수 소동을 벌였지만 300부 가까이 회수하지 못했다.

이 실수로 인해 ‘동아일보’의 업무 관련자 3명이 구속되었으며, 이들에게는 국가보안법 및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되었다. 이들은 20여일 만에 풀려났으나 징계 해직 형식으로 신문사를 떠났고, 불구속 기소된 주필 겸 편집국장 고재욱은 사임했다가 7개월 뒤에서야 주필로 복귀할 수 있었다. 신문은 한 달간 정간을 당했는데, 당국이 ‘동아일보’에 보낸 정간명령서는 그 실수를 ‘반민족적인 중대 과오’로 규정했다. 정부는 4월 16일 정간을 해제하며 “이 대통령 각하께서 이것이 직접 자신에 관련된 것임에 관대히 조처하라는 분부가 있었으므로” 봐준다는 식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강준만 <한국대중매체사>

역시 금서로 묶인 까닭에 초판은 희귀본이 됐다. 한겨레DB
역시 금서로 묶인 까닭에 초판은 희귀본이 됐다. 한겨레DB

■ 고바우 영감의 ‘경무대 똥통’ 사건

한국 시사만화 가운데 가장 오래 연재된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 화백도 동아일보에 실린 만평 때문에 끌려간 적이 있습니다. 이승만 독재정권 당시 경무대(현 청와대)를 정면으로 풍자하는 내용의 4컷 만화였습니다. 이 사건은 이른바 ‘경무대 똥통’ 사건으로 불립니다.

“앗! 저기 온다.”

“귀하신 몸 행차하시나이까?” “어흠”

“저 어른이 누구신가요?” “쉬”

“경무대서 똥을 치는 분이요.”

1958년 1월2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이 4단 만화 <게재번호 1031>에 담긴 위의 대화는 경무대의 똥지게를 지는 사람도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중략) 김성환 화백은 이 만화를 게재한 뒤 사흘간 문초를 당하고 즉결(심판)에 넘어가 벌금 450환을 낸다.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고바우 현대사 1권>

1975년 민청학련 사건 공판 당시 김지하 시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75년 민청학련 사건 공판 당시 김지하 시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오적필화’, ‘노예수첩’ 사건

박정희 정권 시기에도 필화 사건은 계속됐습니다. 1960년대에는 ‘이영희필화사건’, ‘분지필화사건’ 등이 발생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언론과 문인에 대한 통제가 더욱 강화되며 필화 사건도 늘어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김지하 시인의 ‘오적필화사건’을 알고 계실 겁니다. 김지하 시인은 시 ‘오적’을 발표한 뒤 반공법 위반으로 100일간의 옥살이를 했습니다. 이보다 덜 알려졌지만 양성우 시인도 필화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습니다.

‘한일협정반대운동’에 참여했던 김지하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을 ‘오적’이라 지칭하며, 그 치부를 신랄하게 비판한 담시 오적을 1970년 5월에 <사상계>를 통해서 발표했다.

박정희 정부는 '오적'의 유포를 막을 요량으로 <사상계>의 시판을 중단했다. 일단 이 선에서 마무리된 듯했던 '오적'이 다시 문제가 된 것은 야당인 신민당의 기관지 <민주전선> 6월 1일자에 '오적'이 실렸기 때문이다. 6월 2일 새벽 1시50분쯤 중앙정보부와 종로경찰서 요원들에 의해 <민주전선> 10만여 부가 압수되고, 6월 20일 김지하 시인 및 <사상계> 대표 부완혁, 편집장 김승균, <민주전선> 출판국장 김용성 등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적필화 사건’

1985년 3월 출간된 시집 &lt;노예수첩&gt;(풀빛출판사)
1985년 3월 출간된 시집 <노예수첩>(풀빛출판사)

양성우 시인은 1977년 발표한 시 ‘노예수첩’에서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국가모독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3년을 받았습니다. 양 시인은 “심문 첫날 정보부 요원들이 군홧발로 다가오더니 ‘다시는 글을 못 쓰게 해주겠다’면서 내 오른손을 짓밟아대는 바람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부러졌다”고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일본의 다카사키 소지 교수가 ‘노예수첩’을 일본 시사잡지 <세카이>(세계·이와나미서점 발행)에 갖다 줘 1977년 6월호에 전격적으로 실리게 됩니다. 하지만 나는 ‘세카이’에 시가 실린 사실을 몰랐기에 평상시처럼 출근하다가 1977년 6월13일 오전 9시께 대한성서공회가 있는 종로서적 건물 입구에서 체포됐어요. 남산의 중앙정보부 5국 지하실로 끌려갔죠.

심문 첫날 정보부 요원들이 군홧발로 다가오더니, “다시는 글을 못 쓰게 해주겠다”면서 내 오른손을 짓밟아대는 바람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엄지를 제대로 못 씁니다. 정보부 사무실 벽면을 쳐다보니, 커다랗게 ‘양성우 국제간첩단 사건’이란 조직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나에 대한 기획수사를 오래전부터 해온 것입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내가 만난 일본인 교수와 미국인 여교수, 그리고 감리교 선교사 등 외국인들의 이름과 함께 그들이 나와 식사하는 장면, 다방에서 차 마시는 사진이 조직표 이름 옆에 붙어 있었죠. ”

-[길을 찾아서] “다시는 글 못 쓰게 해주겠다며 내 오른손 짓밟아” <한겨레, 2015년 1월 18일치>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도 안의섭 화백의 시사만화 ‘두꺼비’가 한국전쟁이나 대통령을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로 연재를 중단당했습니다. 비단 언론에 실린 글이나 만평뿐만 아니라 소설, 영화, 노래도 검열의 대상이 됐고 많은 문화예술인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거나 고문하는 사례가 반복됐습니다. (▶관련 기사 : [6월항쟁 특별판] 순자를 순자라 부르지 못하고…이거 실화냐?)

■ 윤서인 만화, 풍자가 될 수 없는 이유 물론 독재 권력을 비판해 구속되거나 고문당했던 위 사건들과 만화가 윤서인씨의 사건은 완전히 다릅니다. 윤씨는 최후 진술에서 “(유족들을) 개인적으로 모르고 비난할 의도가 없었다”며 “시사만화가로서 그 정도의 만평은 할 수 있는 것이 자유 대한민국의 기본적 권리라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만평은 보통 만화를 통해 사회를 풍자하거나 권력을 고발, 비판하는 삽화를 가리킵니다. 풍자는 주로 불합리한 권력이나 부조리한 사회 현상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이고요. 위에 소개한 만평들은 위세를 떨쳤던 독재 권력을 비틀고 풍자하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윤씨가 풍자했다는 대상은 잘못된 권력도, 불합리한 사회구조도 아닙니다. 오히려 경찰의 과잉진압에 희생된 피해자와 그 가족이었습니다. 윤씨는 만화에서 경찰의 권력남용에 대한 책임은 조금도 묻지 않았습니다.

2016년 10월4일치 자유경제원 한컷만화 갈무리
2016년 10월4일치 자유경제원 한컷만화 갈무리

그렇다면 윤씨의 주장대로 만화의 내용이 100% 진실이었을까요? 당시 백남기씨의 딸 백도라지씨는 동생 민주화씨의 ‘발리 여행’ 논란에 대해 “동생의 시댁 형님은 올해 1월 아들을 출산했고, 친정이 발리인 시댁 형님은 새로 태어난 손자를 친정 부모님에게 보여드리고자 발리에서 아들의 세례식을 하기로 해 가족들 모두가 간 것”이라며 “발리에서 가족들과 머물던 중 25일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셔 27일 남편과 아들은 물론 시부모님까지 함께 한국으로 왔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관련 기사 : 백도라지, 동생 발리 여행 논란에 “가족 모욕 그만 두라”) 외국에 살다 급하게 돌아와 몇달씩 아버지 곁을 지키던 딸이 시가 행사를 참석한 것을 두고 윤씨는 마치 휴양지 리조트에서 휴가를 즐기던 것처럼 만화에 묘사했습니다. 전후 맥락도, 사실관계도 완전히 틀린 셈입니다. 이는 풍자가 아닌 모욕과 비방일 뿐이죠.

재판부는 검찰의 구형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까요? 선고 공판은 다음 달 26일입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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