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호 태풍 ‘솔릭'이 지나간 24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의 한 애플망고 비닐하우스가 부서져 있다. 서귀포/연합뉴스
제19호 태풍 ‘솔릭’이 24일 오전 11시 동해로 빠져나갔다. 호남, 충청을 거쳐 강원 동해로 빠져나가는 동안 강풍을 동반한 많은 비가 내렸지만, 전국적 규모의 피해는 예상보다 적었다. 느린 속도, 제주 인근의 낮은 해수 온도, 육지 상륙 이후 마찰 등으로 태풍의 강도가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기상청은 이날 “솔릭은 중심기압 985헥토파스칼, 중심부근 최대풍속 초속 22m(시속 79㎞)의 약한 소형 태풍으로 세력이 약해진 상태로 오전 11시께 강릉 남쪽 20㎞ 지점을 통해 동해로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새벽부터 낮까지 제주 한라산 진달래밭에서 관측된 초속 62.0m를 비롯해 부산, 울산, 전남 신안, 여수, 경남 통영 등에서 초속 25m가 넘는 폭풍 수준의 최대순간풍속을 기록했던 것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태풍의 세력이 약해진 것에는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 우선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여 동해를 지나던 제20호 태풍 ‘시마론’의 영향이 있다. 솔릭의 동쪽에서 시속 30~40㎞의 빠른 속도로 북상하던 시마론은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을 약화시켰다. 이로 인해 그동안 북서 방향으로 올라오던 솔릭을 동쪽으로 당기는 힘이 가해졌다. 유희동 기상청 예보국장은 “솔릭이 동쪽으로 향하려는 힘과 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려는 관성력이 균형을 이루면서 솔릭의 이동 속도가 느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솔릭은 23일 오후 제주도 서쪽 해상에서 사람 걸음걸이 정도인 시속 4~6㎞의 느린 속도로 6시간 이상 머물게 됐는데, 여기서 다시 힘을 잃었다. 윤기한 기상청 통보관은 “태풍이 제주 서쪽 바닷물을 뒤집어 놓아 바닷속 찬물이 섞이면서 해수면 온도가 내려갔고, 이로 인해 태풍이 에너지를 얻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더해 전남 해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것도 세력 약화의 원인이었다. 윤 통보관은 “전남 해안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육지와의 마찰로 솔릭이 힘을 잃었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제19호 태풍 ‘솔릭'이 지나간 24일 오전 전남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의 배밭에서 한 농민이 강풍에 떨어진 배를 살펴보고 있다. 순천/연합뉴스
그러나 남부 지역에선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했다. 2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발표를 보면, 이번 태풍으로 실종 1명, 부상 2명, 이재민 46명 등의 피해가 났다. 정전 피해도 많았다. 전국 2만6826가구에서 정전이 발생했는데,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등 1만4639가구, 광주시 남구 진월동 일대 3개 아파트 1700여가구, 전남 해남·진도·순천 등의 2850가구에서 전기가 끊기는 등 제주와 호남 지역 주민의 불편이 컸다.
태풍의 길목이었던 제주에선 관광객 1명이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 폭우·강풍이 몰아친 서귀포시 대정읍의 망고·감귤 하우스 등 농작물 2700여㏊와 양식장 등에도 큰 피해가 났다. 태풍 상륙 지점이었던 전남과 광주에는 24일 오전까지 주택·담장 붕괴, 정전 등 태풍 피해 신고 163건이 접수됐다.
전북, 충남, 충북 등에선 가로수가 부러지는 등의 피해만 접수됐다. 태풍의 출구였던 강원은 설악산 204㎜, 대관령 119.7㎜ 등 많은 비가 내렸지만 주택 침수 등에 그쳤다. 애초 태풍의 상륙 지점으로 꼽혔던 전북, 충남과 내륙 주 관통 지역인 충북 등에선 가로수가 부러지는 등의 피해만 접수됐다.
이틀 동안 묶였던 하늘·바닷길은 정상을 찾고 있다. 아침 7시부터 항공편 565편이 운항을 시작했고, 오후 4시30분부터 제주항과 전남 녹동항을 오가는 여객선 운항이 재개됐다.
한동안 폭염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은 “25일에는 산둥반도 부근에 위치한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전국에 가끔 구름이 많고 기온은 평년보다 조금 높아 낮 기온이 30도 이상 오르면서 덥겠지만, 기압골의 영향으로 27일은 전국에, 28일에는 충청도와 남부지방, 제주도에 비가 오겠다”고 밝혔다. 기온은 평년보다는 높겠지만 33도를 넘는 폭염이 발생하는 지역은 극히 일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근영 선임기자, 오윤주 허호준 안관옥 박수혁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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