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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주 52시간제 한달 ‘판교의 오징어배’ 불은 몇 시에 꺼질까요?

등록 2018-08-03 15:14수정 2022-08-18 16:24

판교 대형 게임회사들, 52시간제 ‘대부분 준수’
“생각했던 것보다 잘 지켜져” 직원들 만족감 높아
중소 게임회사는 2년 뒤 시행…“그때까지 살아남을까” 걱정

‘구로의 등대’ ‘판교의 오징어배’란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이른바 크런치 모드(게임업계에서 신작 출시 등을 앞두고 회사에서 비정상적인 장시간 노동을 지속하는 것) 등 악명 높은 노동강도 탓에 마치 ‘등대나 오징어 잡이 배’처럼 밤 늦은 시간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게임업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서울 구로구는 국내 게임업계 시가총액 1위인 ‘넷마블’의 소재지고, 경기도 판교는 넥슨·엔씨소프트·엔에이치엔 엔터테인먼트·네오위즈 등 국내 굴지의 게임회사는 물론 150여개의 중소 게임회사들이 몰려있는 ‘게임도시’입니다.

세간의 관심이 이들에게 집중됐던 건 주 52시간제 도입을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3~4월 12개의 주요 게임회사를 감독한 결과, 12개사 노동자 3250명 중 63.3%에 해당하는 2057명이 주 1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연장근로 수당’ 등 44억여원의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관련기사: “다 불행하니까 아무도 안 불행한” 게임업, 체념도 취재가 되나요)?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게임업계가 주 52시간제를 지키는 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먼제 제도 시행 열흘 전이었던 6월21일과 25일 판교 테크노밸리에 직접 가봤습니다. 주 52시간제가 시작된 지난달 1일 이후에도 세 차례 방문했는데요, '판교의 오징어배' 불이 진짜로 꺼졌을까요?

지난 6월21일 밤 9시10분께 엔씨소프트 사옥 앞에서 발길을 멈췄습니다. 전체 건물의 30%는 불이 켜져 있었고, 이 빛은 회사 앞 하천과 산책로를 밝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아직 회사 안에 퇴근하지 않은 직원들이 남아 있는 것인지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반대편에 위치한 사옥 정문으로 가봤습니다. 밤 9시30분이 다 된 시간, 예닐곱 명의 엔씨소프트 직원들이 출입문으로 들어가더니 출입카드를 찍고 사무실로 올라갔습니다.

6월25일 밤 9시59분께
6월25일 밤 9시59분께

다른 게임회사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나흘 뒤 엔씨소프트 사옥에서 500여미터 떨어진 엔에이치엔엔터테인먼트 사옥으로 향했습니다.

밤 9시59분. 계단을 내려온 한 직원이 퇴근을 하기 위해 출입카드를 찍고 회사를 나섰습니다. 이 건물에는 게임개발 부서 뿐만 아니라 벅스, 페이코 등 엔에이치엔엔터테인먼트 및 관계사의 사무실 등이 함께 입주해 있어서 이 남성을 꼭 ‘게임 노동자’라고 단정하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로부터 약 5분 동안 10여명의 직원들이 출입게이트를 통과해 귀가했습니다.

6월25일 밤 9시57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엔에이치엔엔터테인먼트 사옥에 불이 켜져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6월25일 밤 9시57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엔에이치엔엔터테인먼트 사옥에 불이 켜져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판교의 직장인들은 밤 10시가 될 때까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이들은 10시 전에 업무를 마친 뒤 동료와 대화를 나누거나, 잠시 웹서핑을 하거나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늦은 밤까지 회사에 머물며 보낸 시간을 휴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었습니다.

6월25일 밤 10시16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넥슨네트웍스의 한 직원이 회사에 남아 일을 하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6월25일 밤 10시16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넥슨네트웍스의 한 직원이 회사에 남아 일을 하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6월25일 밤 10시23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네오위즈 사옥에 불이 켜져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6월25일 밤 10시23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네오위즈 사옥에 불이 켜져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 다시 게임회사들이 모여있는 판교 테크노밸리를 찾았습니다. ‘판교의 오징어배’ 불은 꺼졌을까요?

6월25일 밤 10시32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네오위즈 사무실에서 내려온 남성들이 건물 뒷문을 나서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6월25일 밤 10시32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네오위즈 사무실에서 내려온 남성들이 건물 뒷문을 나서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8월2일 밤 11시55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엔씨소프트 사옥 전경.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8월2일 밤 11시55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엔씨소프트 사옥 전경.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8월3일 밤 12시15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엔에이치엔엔터테인먼트 사옥 전경.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8월3일 밤 12시15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엔에이치엔엔터테인먼트 사옥 전경.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판교 게임회사의 불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역 게임 노동자들은 여전히 주 52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늦은시간 회사 출입문을 나오는 게임회사 직원들을 붙잡고 “왜 이제 퇴근하세요?”라고 물어봤습니다.

“(늦게 퇴근한)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요. 공부 좀 하다가… 출근은 아침에 했었고요. 52시간 넘어 일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요. -7월30일 밤 9시42분 회사를 나온 네오위즈 직원-

“(회사에서) 운동하고 나왔는데요. 주 52시간제 저희 팀은 잘 지켜지고 있어요. 저도 ‘이게 될까?’ 했었는데 생각보다 잘 지켜지는 것 같더라고요.” -7월31일 밤 9시48분 퇴근길에 오른 넥슨 직원-

“주 50시간 일하는 것 같네요. 보통 오전 10시 반에 출근해서 10시 넘어 퇴근해요. 밥 먹는 시간 포함하면 (52시간) 넘겠지만, 그건 빠지니까. 주말에는 근무 안 하고요.” -8월2일 밤 10시56분 회사 앞에 있던 넥슨 직원-

판교에서 만난 게임회사(300인 이상 사업장) 직원들은 ‘주 52시간제는 잘 지켜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늦은 시간까지 게임회사의 불은 꺼지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 각 게임회사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현재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원칙적으로 밤 10시 이후 야근은 금지하지만 신작 게임 출시를 앞두고 있거나 서비스 중인 게임의 업데이트·서버 장애 등으로 업무가 몰릴 땐 (야근을 하고) 다음날 늦게 출근할 수 있습니다. 그런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주 52시간제를 한다고 해서 어느 날 사옥 전체 불이 꺼지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넥슨-

“기본적으로 유연근무제에 탄력적 근무제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게임업계 특성상 새 게임의 출시를 앞두고 있거나 업데이트가 예정돼 있을 땐 어쩔 수 없이 장시간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기간을 포함해 최장 주 52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의 불이 켜져 있을 수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희는 밤 9시와 10시에 전체 소등을 하는데, 추가 근무가 필요한 경우 개별적으로 불을 다시 켤 수 있습니다” -엔씨소프트-

“저희 건물 2·3층 사무실은 회사가 지원하는 스타트업 업체가 사용하고 있고, 7·8층의 경우 다른 게임회사가 입주해 불이 켜져 있다고 해도 저희 회사 직원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엔 인사팀 직원이 저녁 8~9시 사이에 회사를 돌아다니며 회사에 남아 일을 하는 직원들에게 퇴근을 독려하기도 합니다. 또 탄력적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오전에 일이 있어서 오후에 출근한 직원이 회사에 늦게 남아 있다고 강제로 소등을 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네오위즈-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 야근을 하는 직원은 있지만, 한 달 평균 주 52시간 근무를 맞춰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월 단위로 근무표를 짜는데, 예를 들어 8월 첫째주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아 야근을 많이 하게 되면 업무가 적은 주에는 하루 6시간 근무를 하는 식입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를 봐도 회사가 주 52시간제를 잘 지키고 있다는 반응입니다.” -엔에이치엔 엔터테인먼트-

8월3일 밤 12시18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넥슨 사옥 전경.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8월3일 밤 12시18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넥슨 사옥 전경.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과거 판교에 있는 회사에서 야근을 마치고 서울에 있는 집으로 향하던 게임회사 직원들의 동반자(?) 택시기사님들도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3월 전에는 11시에 여기(넥슨 사옥 앞) 오면 바로바로 (손님) 태우고 갔어요. 그 시간부턴 (회사에서) 택시비를 지원해주니까 야근한 사람들이 택시 잡고 (서울) 올라갔단 말이에요. 오후 4시쯤 나와 새벽 4시까지 일하면 서울과 판교를 3~4번은 왕복했거든요. 어쩔 땐 5번도 하고. 근데 3월 이후부터는 (영업이) 안 돼. 52시간제 시작한 뒤부턴 더 그래. 보통 이 시간에 늦어도 30~40분이면 차가 나가야 하는데 지금은 야근을 안 하니까 (서울과 판교를) 1~2번 오가기도 힘들어요. 1주일에 한번씩은 (판교) 왔다가 2~3시간 그냥 기다렸다 올라가기도 하고... 수입도 거의 1/3로 줄었죠. 6개월(계도기간) 끝나면? 그땐 일하는 시간을 바꿔야죠. 야간 대신 주간에 일하는 걸로. 그래도 낮에는 손님이 있지 않겠어요?” -3년 전부터 판교 게임회사 앞에서 영업을 해 온 택시기사 백아무개(53)씨-

이제 ‘판교의 오징어배 불은 몇 시에 꺼질까요?’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결론은 “300명 이상이 일하는 게임회사의 주 52시간제는 잘 지켜지고 있지만, ‘판교의 오징어배’ 불이 몇 시에 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입니다. 무슨 결론이 그렇게 애매하냐고요?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있지만, 여전히 300명 이하 직원이 근무하는 중소 게임회사들은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판교에는 이런 회사가 무려 150곳 넘게 있습니다. 이 게임회사들 중 한 곳에 근무하는 개발자 한 분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이유입니다.

“(게임업계가) 직원들 불만이 생기면 금방 여기저기 소문이 나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아직까지 ‘(회사가) 주 52시간제 안 지킨다’라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큰 회사(300인 이상 사업장)들 기준으론 잘 지켜지는 것 같아요. 게임회사들이 정부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달까? ㄴ사에 다니는 아는 분은 요새 회사에 일찍(오전 9시 이전) 출근해 8시간 근무하고 오후 5시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하더라고요.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는 게임 노동자들 입장에선 다행이죠. 그래도 300인 이하 중·소규모 게임회사들은 (주 52시간제 시행이) 2020년(50∼299명 이하 사업장) 정도로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라… (게임업계의 노동시간 단축이) 여기까지 온 건 다행이지만, 그때까지 잘 살아남아야 할 텐데요…” -판교 게임회사 노동자 김아무개(35)씨-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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