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2013년 8월27일 항소심 결심 공판을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을 나서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사회 현안에 대해 조직적으로 인터넷 댓글을 쓴 사실을 당시 경찰 최고 책임자가 시인했다. 또 이런 사이버 활동을 위한 별도 조직을 꾸린 사실도 29일 확인됐다.
조현오(63) 전 경찰청장은 최근 <한겨레>와 만나 “집회·시위를 비롯해 경찰 관련 쟁점에 대해 인터넷에 댓글을 쓰라고 지시한 바 있다”고 밝혔다. 조 전 청장은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고, 정치공작이라는 말은 터무니없고 여론조작이라는 말에도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사이버 공간에서 범죄예방 차원으로 진행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조 전 청장은 전문적으로 댓글 작업에 매달린 조직의 규모도 구체적으로 털어놨다. 그는 경기지방경찰청장(2009년 1월~2010년 1월)을 지낼 때 정보과 경찰을 중심으로 50여명, 서울지방경찰청장(2010년 1월~2010년 8월)을 지낼 때는 70~80명 규모로 이른바 ‘사이버대응팀’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또 경찰청장(2010년 8월~2012년 4월) 재임 시절에는 수사·기획·정보·공보 등 전 부서를 상대로 사이버 활동 강화를 수시로 강조했다고 밝혔다.
조 전 청장은 사이버 대응 활동 시 경찰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지시를 한 사실도 인정했다. 조 전 청장은 “서울청장 시절로 기억하는데, 참모 중 하나가 인터넷에서는 경찰이라고 밝히면 댓글 활동 자체가 안 된다고 건의를 해서, ‘그렇다면 비노출(익명)로 활동하라’라고 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정당한 직무집행’이라는 항변과 모순되는 대목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과 시행령 등은 ‘위험방지’ 등 직무집행 시 공무원증을 제시하는 등 소속과 신분을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댓글 작업의 범위도 갈수록 커졌다. 조 전 청장은 “경찰 관련 허위사실이 유포되지 않게 하고 집회·시위가 과격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단’은 2010년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정부의 공식발표인 데다가 민군합동조사결과를 무조건 불신하면서 사는 댁들 사상이 의심스럽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싫은 겁니까 아니면 이 나라 정부 자체가 전복되길 바라는 겁니까” 등 집회·시위 등과 직접 관련 없는 정치적 댓글을 경찰이 작성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조 전 청장은 “이왕 구성된 팀이 있으니 수사권 조정에도 (댓글 작업에) 투입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도 마찬가지다. 그게 비난받고 책임질 일이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또 “여당 정치인을 옹호한다거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 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적어도) 정치공작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경찰은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이 여론조작을 위한 댓글 작업을 한 정황이 <한겨레> 연속 보도(
▶ 관련기사 : [단독] ‘국정원 댓글 수사’ 경찰도 2012년 총·대선 앞두고 ‘댓글 공작’)를 통해 드러나자, 특별수사단을 꾸려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단은 이르면 다음 주 조 전 청장을 소환해 댓글 작업을 지시하는 과정에 직권을 남용하지 않았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정환봉 장수경 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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