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피하기 위해 청계천 모전교 아래 발을 담근 직장인들.
서울과 강원·경기 지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16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 횡단보도 앞에 설치된 좁은 그늘막으로 5~6명가량이 서둘러 모여들었다. 저마다 손에 든 광고지나 부채 등을 흔들며 “정말 덥네”라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 휴대용 선풍기를 든 유아무개(23)씨는 “선풍기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며 “땡볕을 그대로 맞으면 어지러울 정도인데, 그늘막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역대급 폭염’을 온몸으로 견디며 걸어야 하는 시민들에겐 작은 그늘막이 ‘오아시스’였다.
선풍기 바람만으로 폭염을 견디기 어려운 사람들은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무더위 쉼터’로 몰려들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무더위 쉼터’ 중 한 곳인 서울 금천구 독산1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이아무개(84)씨는 “한낮엔 집에 누워만 있어도 땀이 흐른다”며 “올여름은 무더위 쉼터에서 보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각 지자체는 장애인, 독거노인 등이 마음 편히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각 지역의 경로당, 주민센터, 일부 은행 등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해 뒀다. 서울시에만 무더위 쉼터 약 3000여곳이 있다. 무더위 쉼터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보통이지만, 폭염 경보나 주의보가 발령되면 밤 9시까지로 연장되는 곳도 많다. 자세한 운영시간과 위치 등은 행정안전부 누리집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금천구 독산1동 주민센터 앞에 붙은 ‘무더위 쉼터’ 알림표지판. 주민센터·경로당 등 서울지역에만 약 3000여곳이 있다
에어컨 대신 도심 속 피서지에서 더위를 피하는 시민들도 있다. 종로구청 인근에서 일하는 직장인 이아무개(36)씨와 임아무개(39)씨는 점심 뒤 매일 청계천 모전교 아래에 자리를 잡는다. 그늘에 앉아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청계천에 발을 담근 이씨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매일 출근도장 찍듯이 온다. 발을 담그는 게 에어컨 카페보다 낫다”고 했다.
8살, 9살 두 아이를 키우는 김민지(34)씨는 지난 주말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시내 한 아웃렛에 갔다. 김씨는 “종일 에어컨 틀어놓기가 부담스러워 어린이용 워터파크를 개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웃렛으로 향했다”며 “아이들은 물놀이하고 나는 쇼핑을 했는데, 너무 더워서 나도 아이들 노는 물에 들어가고 싶더라”며 웃었다.
노숙인 250여명이 상주하는 서울역 인근에선 혹서기 땡볕이 더 따가운 듯했다. 노숙인을 보호하는 서울시 산하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는 노숙인들에게 얼린 생수를 나눠주고 혹서기 대피소를 운영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이수범 다시서기센터 실장은 “현재까지 특별한 피해는 없지만 혹서기가 한 달 이상 간다고 해서 ‘초긴장’ 상태”라며 “일회용 생수를 얼려서 나눠주고 있고 115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응급대피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 상주 간호사와 함께 건강이상자 발생을 대비해 거리를 순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서기센터는 냉방시설을 갖춘 응급대피소를 혹서기 동안 주말에도 24시간 개방할 예정이다.
글·사진 장수경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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