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orz’를 통해 낮게 웅크린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서 낮밤을 바꿔 일하는 제조업체 노동자와 감정·감시 노동의 이중고를 겪는 콜센터 노동자,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들의 삶을 전해드렸습니다.
기술 발달로 배달대행 앱 등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위탁계약’을 맺은 탓에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됩니다. ‘노동orz’의 이번 장면은 두 바퀴에 몸을 의지해 아스팔트 위로 쫓기듯 내몰린 배달대행기사들입니다.
“연남동 하나 떴으니까, 제 예상으로는 연남동 가면서 ○○김밥 하나 뜨면 잡고, △△찜닭 하나 뜨면 잡고, 그러면 딱 좋겠는데….”
오토바이를 3대나 갖고 있다는 영민(23)님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신흥 에이스다. 싹싹한 인상에 말투도 친절해 업장에서도 인기가 많다. ㄱ업체에서 일한 지 1년째인 영민님이 정산하러 사무실에 들어오면 다들 물어본다. “오늘은 몇개나 했냐? 한 70개 했냐?” 영민님은 “아니에요” 하며 멋쩍게 웃었다.
영민님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사진 찍는 게 마냥 좋아 사진과에 갔지만, 투자한 만큼 성공하기 쉽지 않아 보여 중도에 그만뒀다. 지금은 사이버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한다. 배달하고 쉬는 하루에 수업을 몰아 듣는다고 했다.
어느 날 영민님이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전투복같이 생긴 오토바이 전신 안전복을 입고 사무실에 왔다. ‘썸’ 타고 있는 △△찜닭 알바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만나지 못했단다. 영민님은 “전 보호장구에는 돈 안 아껴요. 바지 안쪽에 무릎보호대가 붙어 있는 청바지도 있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영민님은 ‘썸녀’에게 보여주고 싶을 때만 보호장구를 착용할 뿐, 정작 배달할 때는 무릎보호대조차 하지 않았다. “무릎보호대는 쉬는 날 착용해요. 일할 때 하면 콜 잡는 게 10개는 줄어들걸요. 12시간 내내 뛰어다녀야 하는데 자꾸 흘러내리고 불편해요.” 콜 수가 줄어들까봐 부상 위험도 감수하는 영민님은 퇴근 30분 전부터는 콜을 잡지 않았다. 썸녀와 함께 퇴근하기 위해서다. 연애는 위대했다.
기자가 3주 가까이 일한 배달대행 ㄱ업체와 ㄴ업체를 통틀어 헬멧을 제외한 무릎보호대 등 보호장구를 했던 이는 기자를 제외하면, ㅁ햄버거와 배달대행업체에서 투잡을 뛰던 박경수님, 그리고 입사 두달 만에 “무서워서 더는 못하겠다”고 퇴사한 박선명님 두명뿐이었다. 무릎보호대가 흘러내릴까 뒤뚱거리며 뛰는 기자를 보며, 다른 기사들은 “언제까지 하는지 보자”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내뱉었다. 배달 기사들이 보호장구마저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단 하나, 콜을 많이 잡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배달 기사가 받는 콜 수수료는 주문 매장과 배송지까지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ㄱ업체에서는 매장에서 배송지의 거리가 500m까지 2450원, 500m~1㎞ 2750원, 1㎞~1.5㎞ 3175원, 1.5㎞~2㎞ 3675원 등으로 500m 단위로 수수료가 늘었다. 경력에 따라 1~4등급으로 나눠 근속일수가 길수록 수수료를 조금 더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발표한 배달대행업체 기사 건당 평균수수료가 3011원인 것을 고려하면, 배달 한건당 20분씩 잡아도 최저시급을 살짝 웃도는 수준이다.
플랫폼 환경이 빚은 ‘죽음의 전투콜’
고정급보다 성과급업체서 더 경쟁
모든 기사가 동시에 콜 확인 가능
플랫폼의 압박에 마음 더 조급해져
보호장구는 거추장스러워 잘 안해
“무릎보호대 하면 콜 10개는 줄어요”
수수료는 직선거리 기준이지만
실제 주행거리는 훨씬 더 걸려
횡단보도 주행·신호위반 다반사
“준법 100점 지키면 돈 못 번다”
수수료 산정 기준이 되는 거리는 도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지도상의 직선거리였다. 4월27일 마포의 한 국숫집에서 숙명여대까지 기자가 배달한 주행거리는 2.8㎞였지만, 지도상의 직선거리는 1.7㎞였다. 배달 기사로서는 실제 주행거리와 직선거리를 최대한 일치시킬수록 효율적인 운행을 하는 셈이다. 차선을 넘나들며 자동차 사이를 주행하는 ‘칼치기’와 신호 위반, 횡단보도 주행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가 두번째로 일한 ㄴ업체에서 만난 이승준(23) 팀장의 특기는 ‘역주행’이다. 용산 지역을 꽉 잡고 있어 ‘용산의 아들’로 불렸던 준헌님은 중앙선을 타고 달리다 성민(47)님에게 혼나기도 했다. “애○○들이 위험한 줄 모르고 아무렇게나 타고 있어.” 준헌님은 ㄱ업체에서 일하는 1년 동안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10번이나 당했다고 한다. 2016년 전국 오토바이 사고 건수는 1만3076건으로 모두 428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서울 지역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13%(48명)가 이륜차 사망자다.
장수경 기자가 지난달 2일 서울 마포구 빵가게에서 음식을 받아 배달하고 있다. 배달대행 기사들은 콜을 받기 위해 음식을 배달하는 중에도 한손에는 휴대전화를 놓지 않는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기자는 주문배달대행인 ㄱ업체에서 배달대행만 하는 ㄴ업체로 직장을 옮긴 첫날, □□치킨 픽업→◇◇떡볶이 픽업→□□치킨 배송→△△통닭 픽업→△△통닭 배송→◇◇떡볶이 배송’을 51분 만에 끝냈다. 한시간도 안 돼 3건을 한 셈이지만, 이승준 팀장에겐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그는 “여기 애들은 20분이면 3개를 해요. 시속 60㎞ 이상 달려야 돼요”라고 말했다. 20분에 3개를 치려면, 조리 시간과 현장 결제 등 대기 시간을 제외하고 음식 하나당 픽업에서 배송까지 6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2011년 피자 배달 노동자의 죽음으로 폐지된 ‘30분 배달제’보다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옆에서 김호윤 실장이 “나중에 익숙해지면 한 손으로 핸들 조작하고, 한 손으론 운행 중에 휴대전화 콜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라고 기자를 독려했다.
김호윤 실장의 조언은 적확했다. 콜은 기사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잠시 신호에 걸렸을 때라도 울리면 좋으련만, 운행 중에 더 다급하게 울렸다. 남들보다 먼저 콜을 잡으려면 달리는 중에 휴대전화에서 손을 뗄 수 없다. “준법정신은 50점만 지키면 된다. 100점을 지키려고 하면 돈은 못 번다.” 이기재 형님이 조언했다.
이런 업무 환경에서 교통사고는 예정된 사건이었다. 기자는 업무에 적응될 때까지 최대 8주간 고정급을 주던 ㄱ업체에서 2주간 일하다, 완전 성과급제인 ㄴ업체로 직장을 옮겼다. 완전 성과급제인 ㄴ업체는 ㄱ업체보다 훨씬 경쟁적인 환경이었다. ㄱ업체에선 한 기사가 배달 앱으로 콜을 클릭하면, 다른 기사가 그 콜을 볼 수 없었다. ㄴ업체는 모든 기사가 동시에 콜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초 단위 콜 잡기 경쟁, ‘전투콜’이 벌어졌다. 실시간으로 주문 경과 시간을 알려주는 플랫폼의 압박, 한건이라도 콜을 더 잡아야 3000원을 벌 수 있다는 조급함, 하루 12시간 아스팔트 위에 있어야 하는 피로감 등이 전방위적으로 기자를 압박해왔다. 그리고 이틀 만에 사고가 났다. 운전이 미숙한 기자 개인의 탓도 있겠지만, 성과급제와 교통사고는 일종의 ‘패키지’였는지 모른다.
전투콜에서는 경쟁자였지만, 배달 기사들은 경찰 단속 앞에서 빛나는 동료애를 발휘했다. 4월29일 ㄱ업체 단톡방엔 경찰 단속을 알리는 문자가 다섯번이나 올라왔다. “신촌 기차역 신호 무시 단속.” “일방통행 단속.” 불법 주행이 일상에 가까운 기사들은 이렇게 단속을 피했다. 한건 배달해 3000원 남짓 손에 쥐는 기사들에게 수만원짜리 딱지는 가장 두려운 존재다.
교통 신호도 배달을 하는 데 방해 요소일 뿐이다. 5월4일, 신공덕동의 한 오피스텔에 샌드위치를 배달한 뒤 바로 길 건너 아파트에 김밥을 배송하러 가는 길이었다. 횡단보도로 달리면 곧장 넘어갈 수 있었지만 시간이 좀더 걸리더라도 신호를 받아 유턴하기로 했다. 신호에 두번 걸려 5분이 지나갔다. 뒤따르던 ㄷ콜과 ㄹ업체 소속 기사는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지자마자 얄밉게 도로를 건넜다. 이날 신호에 걸린 횟수는 세어본 것만 32번, 신호에 걸린 시간은 35분이었다. ‘배달대행으로 생계를 꾸리지 않아서 80점 정도의 준법정신을 유지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씁쓸했다. ‘용산의 아들’ 준헌님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는 ‘10분이면 많은 걸 할 수 있다’였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배달대행 배달원의 종사 실태 및 산재보험 적용 강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는 교통사고로 내몰리는 배달 기사들의 노동 여건이 나온다. 배달 지연 등 배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배달 기사 38%가 “음식값을 변제해야 한다”고 답했다. ‘건당 일정 금액을 물어낸다’는 답변도 35%에 달했다.(중복응답) 돈을 벌려면 동료 기사들과 경쟁해 콜을 많이 잡아야 하는데, 콜을 많이 잡아 배달이 지연되면 기사 개인이 변상해야 한다. ‘죽음의 전투콜’은 건당 성과급과 쉴 새 없는 질주를 강요하는 플랫폼 환경이 빚어낸 괴물이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