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담화 및 서명식이 끝난 뒤 박상기 법무부 장관,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명서를 함께 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참석한 ‘검·경 수사권 조정 담화 및 서명식’은 여러모로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이색적 풍경을 연출했다.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경 갈등의 골이 워낙 깊었던 탓에 국무총리실과 청와대가 나서 두 권력기관의 ‘정전협정’을 주선하는 모양새였다. 각자 서명한 합의문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은 마치 적대적 두 나라가 화해하며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날 청와대가 대검찰청과 경찰청에서 제출받아 합의문과 함께 공개한 ‘수사권 조정 의견서’는 “두 기관의 상호 협력 관계”라는 ‘평화 체제’로 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검찰은 기존 수사권 유지 필요성을, 경찰은 자신들이 수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 상대방이 저지른 인권침해 및 권한남용 사례 등을 깨알같이 거론하며 청와대를 설득했다.
검찰은 “1950년대 자유당 시절, 군사독재 시절의 역사를 통해 사법통제가 약화된 경찰수사권, 경찰국가 체제가 얼마나 심각하게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지 이미 경험했다. 이런 교훈을 망각한 채 불행한 역사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4·19 혁명 때 경찰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열군 관련 신문기사와 ‘물고문 도중 질식사’라는 신문 헤드라인이 크게 박힌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신문기사를 스크랩해 의견서에 넣었다. 또 “우리나라 경찰은 민주국가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중앙집권적 단일조직의 국가경찰 체제’를 바탕으로 치안, 정보, 보안, 경비, 교통 등을 독점하고 수사와 정보를 모두 담당하는 거대 권력기관”이라며 자칫 ‘경찰국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도 검찰의 약한 고리를 놓치지 않았다. 2016년 현직 부장검사 뇌물수수 사건 때 경찰이 신청한 계좌추적 영장을 검찰이 받아주지 않고 사건을 넘겨받은 사례를 거론하며 “사건 가로채기 및 셀프 수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수사 사례로 15년 전 법조 브로커 사건 수사 당시 압수수색 영장 불청구 사례까지 털어 모았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직접 “검찰개혁은 국민의 명령”이라는 의견을 적어 넣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형집행권 등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권한의 초집중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오후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정성호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장에게 전달했다. 관가에선 “부처 간 합의”라며 서명식까지 한 사안을 ‘정부 입법’으로 추진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국회에 떠넘긴 게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선도 있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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