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정부가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은 “두 기관이 지휘·감독이라는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 국민 안전과 인권수호를 위해 협력하는 상호 협력 관계”를 상정하고 있다. 경찰의 수사권한이 확장되는 길목마다 검찰의 사법통제 기능을 세워놓았지만, 검찰 내부에선 “경찰대 출신이 검사를 하겠다는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 수사권·수사종결권
조정안대로 국회 입법이 되면, 경찰은 ‘상호 협력 관계’의 핵심인 1차적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모두 손에 쥐게 된다. 검찰은 직접 수사권을 가진 부패·경제범죄 등 일부 영역을 제외한 고소·고발·진정 사건을 모두 경찰에 넘겨야 한다. 경찰은 사건 송치 전까지는 기존에 받아오던 검사의 수사지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하지 않기로 한 경우에는 불송치 결정문과 사건기록을 관할 검사에게 통지하면 된다. 이제까지는 불기소 의견이라도 모두 검찰에 넘겨 최종 판단을 받았던 사안이다. 검찰은 불송치 결정이 위법·부당하다고 판단한 경우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경찰 쪽 요구를 주로 반영한 결과다. 검찰은 그동안 “수사종결권은 경찰에 기소·불기소를 결정하는 소추결정권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발해왔다. “유무죄 판단을 법원 아닌 기관에서 할 수 없듯이 기소·불기소 판단도 검찰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검찰은 또 경찰 인지사건이나 피해자가 없는 사건(뇌물·음주운전 등)의 경우 경찰의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실체적 진실이 묻힐 위험이 있다며 ‘송치 전 수사지휘 폐지’에 반대해왔다. 전체 사건의 24%를 차지하는 고소·고발 사건(2016년 기준 48만9477건) 처리 역시 수사지휘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주장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보완수사·이의제기
대신 검찰은 여러 겹의 통제장치를 갖는다. 검찰은 경찰로부터 넘어온 송치 사건과 송치 이전이라도 강제수사(영장)에 대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경찰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수사권 남용이나 인권침해가 의심되는 경우 경찰에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이 부분은 검찰과 경찰 모두 자신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경찰은 청와대에 낸 의견서에서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찰이 법원에) 청구하기 전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것은 송치 전 수사지휘와 마찬가지”라며 반대했다. 반면 검찰은 수사지휘권 없는 보완수사 요구는 사실상 강제력이 없다고 반박한다. 검찰은 청와대에 낸 의견서에 “보완수사는 법률적 의미가 불분명한 용어로, 오히려 검·경 갈등을 상시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존 권한 고수를 주장했다.
한편 경찰이 자체 종결한 사건이라도 당사자(고소·고발인, 피해자 등)가 불복해 이의를 제기할 경우에는 사건이 곧바로 검찰로 송치된다. 일본의 43배에 이르는 ‘고소·고발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서 경찰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의신청이 줄을 이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영장제도
경찰이 사활을 걸었던 영장청구권은 개헌이 불발되며 이번 조정안에서 아예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조항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개헌안을 발의한 바 있지만 국회에서 좌절된 바 있다. 다만 정부는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검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경우, 경찰은 고검에 마련될 영장심의위원회에 이의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검사나 검찰청 직원이 피의자인 경우에도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찰이 지체 없이 청구하도록 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날 “(헌법상) 영장청구권이 검사에게 있는 것을 전제로, 이에 대한 경찰의 불만을 반영해 조정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검찰권의 핵심인 특수수사와 관련해서는 종전대로 검찰이 직접수사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조정안은 부패·경제·금융범죄 등과 관련해 ‘죄명’에 따라 검찰이 직접수사할 영역을 정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죄명을 기준으로 하면, 예를 들어 연쇄살인 사건이나 테러 사건, ‘드루킹’ 사건 등은 직접수사권이 없으니 수사도 못 하고 지휘도 못 한다. 죄명을 기준으로 수사 권한을 정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불만이 나온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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