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orz’를 통해 낮게 웅크린 우리,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에 쫓겨 낮밤 바꿔 일하는 제조업체 맞교대 노동자와 감정·감시노동의 이중고를 겪는 콜센터 노동자가 앞선 장면이었습니다.
‘노동orz’ 세번째 장면은 초단시간 노동입니다. ‘주 15시간 미만’ 노동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많은 법과 제도의 예외 사유입니다. 청년·여성·고령층 등 노동시장의 약자들은 ‘알바’라는 이름으로 법의 사각지대에 퍼즐 조각처럼 배치되고 있습니다.
정민(22·이하 모두 가명)씨가 2014년 10월에 받은 인생 첫 월급은 150만원이었다. 통장에는 공제액을 제외하고 132만원이 ‘꽂혔다’. 당시 최저임금(시급 5210원)에 주휴수당을 더한 수준보다 조금 높았다. ‘초봉이니까, 고졸이니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규모 건설회사 경리의 임금은 더디게 올랐다. ‘정민씨를 괜찮게 봤던’ 사장님은 매년 임금협상 때마다 월 20만원씩 급여를 올려줬지만, 2년이 지나도 급여명세서에 찍히는 돈은 170만원 언저리였다. 매달 80만원씩 적금을 부었지만, ‘언제 돈 모으지’라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에 취직하면 그만두려던 분식집 주말 알바를 열달이 넘도록 계속했다. 금요일 저녁 6시에 퇴근해,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엔 분식집으로 출근했다. 점심시간에 맞춰 떡볶이 떡을 떼고, 꼬치에 어묵을 꽂고, 홀서빙과 설거지를 했다. 주말 이틀간 12시간을 일해 한달 26만7840원(2015년 최저임금 5580원)의 가욋돈을 벌었다. 고스란히 적금에 더해 월 100만원을 모았다.
‘하루도 못 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분식집을 그만뒀지만, 이듬해 3월부터 커피전문점·음식점 주말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다. 금요일 퇴근해 저녁 7시까지 이디야커피로 출근해 4시간 동안 마감조로 일했다. 토요일 미들조(오전 11시~오후 3시) 근무가 끝나면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음식점 서빙 알바를 했다. 음식점 사장님은 ‘저녁 서빙이 힘들다’며 최저임금(2016년 6030원)보다 470원 많은 6500원을 챙겨줬다. 일요일 새벽 1시쯤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다. ‘주말 투잡’을 뛰면서 번 돈은 한달에 34만8960원. “힘들진 않았어?” 곰곰이 생각하던 정민씨가 말했다. “언니, 나 그래도 그렇게 일해서 2년 동안 2000만원 모았어요.”
서울과 경기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지난해 7월19일 서울 명동에서 고양이 탈을 쓴 청년이 홍보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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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할 수 있는 ‘그런 곳들’ 정민씨는 특성화고 출신이다. ‘국영수 대신 실무 수업을 집중적으로 들을 수 있고’, ‘바로 취직을 해도 되지만, 전공을 살려 대학을 갈 수도 있다’는 중학교 담임선생님의 말에 특성화고 진학을 결심했다. 입학한 뒤에는 복지경영을 공부해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땄다.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다.
2014년 3월, 고3이 되자 눈치 빠른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 준비를 했다. 선생님들은 취업특별반 교실을 따로 만들어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봐줬다. 친구들이 취직해 하나둘 교실을 떠나자 정민씨도 초조해졌다. 학교 게시판에 붙은 취업 공고를 둘러보다 ‘집에서 거리가 가깝고’, ‘앞으로 스펙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건설회사 경리직에 지원해 합격했다.
“첫 월급 받았을 때? 그때 들었던 생각은 ‘다들 이렇게 받고 다니는구나. 돈도 받고 점심도 공짜로 먹으니까 좋다’ 그 정도였어요. 그런데 같은 업무를 하는 후임은 첫 월급으로 세전 190만원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현실을 직시했죠. ‘고졸이어서 적게 받는구나. 후임은 전문대라도 졸업해서 그만큼 받는 거구나.’ 대학 졸업장이 왜 필요한지 깨달은 거죠.”
정민씨는 2년2개월 일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17년 2월 경기도의 한 전문대 회계학과에 입학했다. 건설회사 퇴직금으로 받았던 280만원으로 입학금을 냈다.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했지만, 학교까지 지하철로 왕복 4시간이 걸리는 탓에 근무 시간이 긴 일자리를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알바몬’을 뒤지다 이디야커피 구인 공고를 봤다. ‘월수금 저녁 7~밤 11시 마감조 구합니다.’ 지체 없이 지원해 지난 4월까지 9개월을 일했다. “하루 4시간 통학을 해서 월화수목금 다 일했으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3일만 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일·학업을 병행하는 청년들에게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일자리는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경계에 있다. 일을 길게 못 하는 사정과 당장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빠르게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대체로 초단시간 일자리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초단시간 근로자 인권상황 실태조사’(2016) 보고서를 보면, 대학생·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초단시간 노동을 선택한 이유는 ①당장 수입 필요(34.5%·32.4%) ②근로조건 만족(30.4%·29.2%) ③학업·취업준비 등과 병행하기 위해(15.5%·13.9%) 차례였다. 급한 대로 자신의 시간을 돈으로 맞바꾸는 계약인 셈이다.
영진(20)씨는 지난 2월부터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의류 판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화요일 오후 5~10시, 목·금요일 오후 12~5시 1주일에 15시간 일한다. 영진씨는 “근무시간 선택이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고 기억했다. 공고에는 월·화/목·금 오픈/마감 시간대를 나눠 5시간씩 일할 근무자를 구한다고 돼 있었는데, 면접 때 점장은 영진씨가 휴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화요일 마감시간에도 일하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처음 알바 공고를 봤을 때는 ‘딱 이 시간에만 알바생이 비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그냥 시간을 쪼개서 알바생을 구하는 거더라고요.” 일하는 시간이 15시간으로 늘었지만 점장은 영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요즘 최저시급까지 올라서 주휴수당은 못 챙겨줘. 장사가 잘 안 돼서 더 챙겨주기 어려워.” 영진이가 주휴수당을 고집했다면, 점장은 다른 화요일 알바생을 구했을 터였다. 근로기준법상 주 15시간 노동은 주휴수당과 4대보험 적용을 받지만, 영진씨는 석달째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보험도 없이, 그저 최저임금만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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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는 없어도 일은 빡세게 강남의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함께 ‘서브’로 일했던 미래(26)씨도 주휴수당과 보험이 없다. 월수금 오전 8시~오후 1시까지 주 15시간 일했던 미래씨는 근로계약서를 쓰던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사장님이 그러더라고요. ‘4대보험 가입하면 임금의 10% 정도가 세금으로 나간다. 받은 돈이 얼마 되지 않는데 세금까지 떼면 남는 게 없으니까 잘 생각해봐라’라고. 당연히 가입 안 하고 시급 다 받겠다고 했죠.” ‘짧게 일하는 사정’은 보험 가입을 주저하게 되는 빌미가 됐다. “아무래도 제가 단시간 노동자니까, (사장님이) 그렇게 얘기하면 (보험 가입을 안 하겠다고) 거절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알바 노동자들의 ‘짧은 노동시간’은 매장의 ‘압축적인 노동강도’와 맞물려 있다. 경기도의 한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준호(25)씨는 군에서 전역한 뒤 3개월간 애슐리에서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매장 규모가 120석이었는데, 가장 바쁜 시간대 서빙 인원이 겨우 3명 정도였어요. 알바 스케줄이 매주 달랐죠. 단체 손님이 오거나, 누가 갑자기 알바를 그만두면 일하는 시간이 바뀌는 거죠.” 유동적인 ‘알바’의 스케줄은 대부분 바쁜 시간대에 몰렸다. “대부분 알바를 하루 4시간 정도로 짧게 일을 시켰어요. 매장에서는 한가한 시간에 알바생이 있는 게 손해라고 생각하니까.”
인권위 보고서(2016)는 “단시간 근로가 업무의 특성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주휴수당 미지급 등을 위해 정규직 일자리를 작은 단위로 쪼개 사용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준호씨는 애슐리에서 전형적인 ‘임금 꺾기’도 당했다. 매장은 근무시간을 20분마다 나눠 등록했다. 맨 마지막 1~19분 초과노동에 대한 임금은 지급되지 않았다. “심지어 점장이 알바들한테 출퇴근 시스템에 퇴근 지문을 찍게 한 뒤에 ‘남은 일이 있으니까 조금만 더 하고 가라’고 시키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문제를 제기하는지 잘 몰랐어요.”
노동부 감사로 애슐리의 임금 꺾기가 문제가 되자, 알바를 그만둔 다음달 준호씨의 통장에 체납 임금이 입금됐다. 3개월 동안 받지 못한 돈은 19만원이었다. 임금 꺾기 경험 탓에 준호씨에게 애슐리 알바는 ‘안 좋은 기억’이다. 그러나 단시간 노동을 그만두지 못했다. 지금은 대학 기숙사 식당에서 월·금 각각 3시간30분 동안 그릇 정리 아르바이트를 한다. 한달에 10만원 정도 번다. “취업준비생이라 길게 일할 수 없어요. 시간을 쪼개 기숙사비라도 벌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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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노동을 생업처럼 했다 경기도에서 프리랜서 극작가로 일하는 동화(28)씨에게 단시간 노동은 어느새 생업이 된 지 오래다. 첫 아르바이트는 수능이 끝난 2009년 겨울방학 때 했던 공장일이었다. 설날 선물세트를 포장했는데, 이틀을 일하고 하루치 임금(4만5000원)밖에 받지 못했다. 2010년에는 뚜레쥬르에서 5개월간 알바로 일했다. 뚜레쥬르 사장님은 “알바 처음이지? 내가 널 써주는 거니까 그 정도만 받고 일하자”라며 동화씨에게 당시 최저임금(4110원)보다 낮은 3800원을 시급으로 줬다. 2012년에는 서울 강남의 액세서리 매장에서 일했다. 회사에서는 동화씨가 지문 시스템에 지문을 제대로 찍지 않았다며 마지막 월급(약 70만원) 중 40만원만 줬다. 동화씨가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노동부에 신고하겠다고 난리를 치니까 한달 뒤에 나머지 돈을 주더라고요.”
우여곡절 가득한 ‘알바 인생’을 보냈던 동화씨가 꼽은 단시간 노동의 하이라이트는 2016년 5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일했던 백화점 청바지 매장 일이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점장과 매니저 둘 다 쉬어야 하는 날이 있잖아요. 그때 제가 빈자리를 채워서 ‘대체휴무 아르바이트’라고 불렀어요. 점장과 매니저의 대체휴무날에만 일하는 아르바이트.” 동화씨는 1주일에 평균 1~2일 일했고, 청바지 ‘원 플러스 원’(1+1) 행사나 ‘브랜드 데이’ 행사가 있으면 일주일 내내 일했다. 백화점 내 다른 매장에서 일손이 필요하면 그 매장으로 가 일을 도와주고 일당을 받았다. “사실 매장에 추가 인력이 필요한 거였는데, 쉬는 날 메꿔줄 인력을 뽑아 추가 인력처럼 썼던 거죠.”
‘수입이 일정치 않은’ 연극이 주업인 동화씨에게 단시간 아르바이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 “단원들과 연습을 해야 하는데 일정이 불규칙해요. 짧게 일하면 아무래도 눈치를 덜 보고 시간을 조절할 수 있으니까요.”
서울의 한 전문대 호텔조리학과에 다니는 도경(20)씨도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주말 아르바이트를 생업처럼 한다. 고교 2학년이었던 2015년 11월 시작했던 웨딩홀 주방보조 아르바이트는 올해 3월까지 했고, 중간에 잠깐 그만뒀을 때에도 피자헛에서 석달 정도 서빙 알바를 했다. 요리사로 진로를 정한 지금은 대학 수업시간을 피해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화·목 저녁(7~10시) 마감시간대에 주방보조로 국수를 삶고, 국수 위에 올리는 튀김을 만든다.
도경씨는 피자헛에서 저녁 6~10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걸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식사 시간도 따로 없어요. (점주는) 싼 오븐스파게티 만들어서 알바생들에게 나눠주거나, 손님들이 먹다 남긴 피자를 먹으라며 줬어요.”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매니저의 폭력이었다. 남자 매니저는 별다른 이유 없이 손바닥으로 도경의 등을 때리거나, 페트병으로 엉덩이를 때렸다. “사장님께 ‘매니저가 자꾸 때린다, 일 그만두고 싶다’고 하니, 사장님은 미안하다면서도 다른 사람 구할 때까지만 일해줄 수 없겠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때 정이 확 떨어졌죠. 폭력은 문제가 안 되는구나, 알바생만 바꾸면 되는 일이구나….”
인권위 보고서(2016)를 보면, 초단시간 노동자 146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임금체불·신체접촉·언어폭력 등 부당한 처우를 가장 많이 겪는 업종은 판매업, 주유소, 편의점, 커피전문점, 음식업 등이었다. 대부분 ‘청년층 알바군’으로 포함되는 업종이다.
사상 최고의 청년실업률 통계가 발표된 지난 17일 20대 청년들이 한강을 배경으로 뛰어오르며 사진을 찍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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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까 미래씨는 본격적인 취준생이 된 지난해 말부터 초단시간 일자리를 구했다가 그만두길 반복했다.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는 서울 종로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토·일 5시간씩 주 10시간을 미들조로 일했고, 파리바게뜨 아르바이트는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5개월 동안 일했다. 여기저기 옮겨다닌 건 취준생인 처지 탓이었다. “평일에는 취업준비에 집중하려고 일부러 주말 카페 알바를 한 건데, 정작 기업 면접이 다 주말이라 시간 맞추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카페를 그만두고 평일 알바를 시작했는데, 다시 상반기 공채가 시작되니 취업준비랑 알바를 병행하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당분간은 벌어둔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예정이라는 미래씨는 경영학 전공을 살려 기업에 취직하는 게 목표다. “파리바게뜨 알바요?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배운다는 느낌은 있는데…. 아마 그 시간에 진짜 제 경력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었다면 당연히 그걸 택했겠죠. 그런데 그게 쉽진 않잖아요.”
전문대에서 요리를 공부하는 도경씨에게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주방보조는 ‘좋은 경험’이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다. “지금 일하는 곳은 한식·일식이 주 메뉴인데, 원래는 양식 조리사가 꿈이거든요. 내년 2월쯤 학교 졸업하면 오스트레일리아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요. 외국 식당에서 일하면서 양식 요리도 배우고 경력도 쌓고 싶어서요.” 도경씨가 학교에 다니며 주방보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도 돈을 모아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위해서다.
노동시장으로 진입을 앞둔 청년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초단시간 일자리의 틈새를 파고든다. 누군가에게 ‘취업 전 거쳐가는 일’은, 누군가에게 ‘어쩔 수 없이 계속하게 되는 일’이다. 누군가에겐 ‘학업과 병행하려고 구한 일’이고, 또 누군가에겐 ‘생업처럼 해야 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초단시간 노동자는 산재보험을 제외한 4대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다. 주휴수당이나 연차수당을 적용받지 않는다. 퇴직금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들이 주 15시간 미만이라는 이유로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기자도 그들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