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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강원랜드 수사 막은 정도 아니면…” 직권남용죄가 뭐길래

등록 2018-05-21 17:56수정 2018-05-21 20:17

강희철의 법조외전(24) 전문자문단 ‘불기소’ 의견 배경

수사단은 전화 지시·일정 조정 ‘외압’이라 주장
전문자문단은 “직권남용죄에 해당 안된다” 결론
내부지시 처벌 전례 없고 법원 유죄인정 엄격해
“내사 끝내라” 독촉 신승남 전 총장 판결 재주목
법에 정해진 ‘의무’와 무관하게 실행되어야 처벌
문무일 검찰총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무일 검찰총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랜드 채용비리 재수사와 관련한 검찰의 내홍은 지난 18일 일단락이 됐지만 이 과정에서 새삼스레 주목받은 것이 있다. 바로 형법에 있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죄다.

이번 사태의 시작과 끝에 공히 직권남용죄가 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단장 양부남)은 춘천지검 2차 수사를 지휘한 김우현 대검찰청 반부패부장(검사장·옛 중앙수사부장)과 1차 수사 당시 춘천지검장이던 최종원 현 서울남부지검장이 수사 지휘 과정에서 직권남용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고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두 사람을 기소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다.

반면, 수사단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었던 대검이 법학교수와 변호사 등 7명으로 꾸린 전문자문단은 지난 18일 이들 두 사람의 지휘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냈다. 압도적 다수가 수사단과는 정반대 의견을 냈다고 한다.

낯은 설어도 귀에는 익숙한 것이 직권남용죄다. 지난 한 해 동안 검찰이 주목받은 국정농단 및 적폐청산 수사에서 단일 죄목으로 가장 많이 적용된 법 조항이 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였다.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모두 이 조항 위반으로 재판에 부쳐졌다.

직권남용죄는 형법 제123조에 규정돼 있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앞서 검찰 수사에서 이 조항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하급 공무원에게 “법적 의무”(대법원 판례)가 없는 일을 시켰다가 문제가 됐다. 그런데 조직 내부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특정 사건 처리와 관련해 지휘한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할까?

대검 반부패부는 전국 지검 특수부의 인지 사건을 상세히 보고받고, 총장의 지시에 따라 지휘를 한다. 수사단은 김우현 부장이 춘천지검의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보좌관 출석 통보와 관련해 권 의원의 항의를 받고 ‘내규에 따라 보고하지 않았다’며 수사팀을 질책한 것이 직권남용이라고 봤다. 김 부장의 혐의에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일정을 감안해 사건 관련 브로커에 대한 압수수색 시점을 늦추도록 한 것도 포함됐다. 최 지검장은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4월 갑자기 사건을 조기 종결하도록 지시한 의혹 등을 받았다.

법조인들의 반응은, 수사단의 판단과는 달랐다. 전문자문단 회의가 열리고 있던 지난 18일 오후 기자가 전화로 의견을 물은 전·현직 판·검사 등 법조인 7명은 이들 ‘두 검사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처벌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모두 ‘죄가 되지 않는다’거나 ‘그걸 기소할 거면 대검찰청과 검찰총장직이 필요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전원이 “(검사장) 둘 다 불기소로 결론이 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중에 전문자문단이 내린 결론과 같았다. 검찰 내부 통신망(이프로스)에서도 이례적으로 수사단이 아니라 대검을 옹호·두둔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실제로, 검찰 내부의 의사결정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사례는 거의 없다. 과거 검찰 지휘부와 수사팀의 갈등은 사직서 제출, 직을 건 지휘부 압박, 수사팀 교체 중 어느 하나를 통해 해결 아닌 해결을 보고 넘어갔다. 한 예가 1999년 대검 중수부의 옷로비 사건 재수사 때 일이다. 당시 이종왕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른바 ‘사직동팀 최종 보고서’ 유출 혐의를 받고 있던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구속영장 청구를 대검 지휘부가 허가하지 않자 “박 전 비서관을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는 내용을 언론에 공표한 뒤 검찰을 떠났다.

갈등의 외부 표출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법원이 직권남용의 유죄를 잘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검찰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과 관련해 법원의 유죄 판결이 확정된 거의 첫 사례는 신승남 전 검찰총장 사건이다. 이번에도 이 판례는 법조인들 사이에서 많이 언급됐다.

2001년 5월 초, 신승남 전 총장이 아직 총장이 되기 전 대검차장일 때의 일이다. 신 차장은 정 아무개 울산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어 “아는 사람 부탁인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회사에 대해 잘되도록 (처리)해달라”고 말했다. 여기서 ‘그 회사’의 일이란 한 종합건설사가 울산시장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첩보에 대한 울산지검의 내사를 뜻한다.

같은 달 25일 신 차장은 검찰총장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식에 참석하러 서울에 온 울산지검장을 따로 불러 내사를 빨리 종결하라고 독촉했다. 당시 울산지검 특수부는 관련 회사 압수수색 등을 끝내고 수사로 전환할 참이었으나, 신 전 총장의 지시에 따라 ‘혐의없음’으로 내사 종결했다. 신 전 총장은 ‘이용호 특검’ 수사 과정에서 혐의가 드러나 이듬해 7월 불구속 기소됐다.

대법원은 2007년 6월 신 전 총장의 유죄를 확정하면서 “대검 차장 또는 검찰총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면담 혹은 전화 통화 등의 방법으로 울산지검장에게 내사 보류와 종결을 언급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내사중단 지시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며 “구체적인 혐의 사실을 발견해 정상적인 처리 절차를 진행 중이던 담당 검사로 하여금 직권을 이용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문자문단도 논의 과정에서 이 판례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이번 강원랜드 건과 신 전 총장 사건은 내용이 전혀 다르다. 신 전 총장 사건은 그의 지시에 따라 실제로 내사가 종결됐다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자문단도 이런 취지를 이해하고 두 검사장에 대해 불기소 의견을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권남용죄에 나오는 ‘의무’는 법적 의무다. 다시 말해 법에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법으로 정해진 일을 하지 못하게 막은 행위가 ‘실행’에 이른 정도가 돼야 법원이 유죄를 인정한다. 신 전 총장 판결에서 드러난 취지 그대로다.

지난해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의혹 한 가지가 추가로 불거졌으나 검찰은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인천에 있는 해양경찰청 본부 압수수색을 나간 윤대진 당시 광주지검 수사팀장(현 서울중앙지검 1차장)에게 우 전 수석이 전화를 걸어 청와대와의 교신 기록이 저장돼 있는 전산 서버가 영장에 압수수색 대상으로 특정돼 있지 않다며 압수수색을 못 하게 막았다는 의혹이었다. 검찰은 우 전 수석이 전화를 건 사실과 내용은 확인했으나, 수사팀이 법원의 영장을 새로 발부받아 결국 압수수색을 했으니 직권남용으로 기소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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