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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막말 상담객에 “죄송하다” 안했다고 해고시킨 홈쇼핑

등록 2017-12-25 11:45수정 2017-12-25 15:03

[한겨레-직장갑질119 공동기획] 멈춰, 직장갑질 ③ NS홈쇼핑
재택상담사들 ‘프리랜서’ 계약뒤
주말근무 일방지시 등 노동통제
콜수 할당량 못채워도 퇴사 압박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에 있는 엔에스홈쇼핑 본사. 유덕관 기자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에 있는 엔에스홈쇼핑 본사. 유덕관 기자
‘띠링∼’ 또 문자메시지가 왔다. “콜지원 부탁드립니다. 수주대기 150(건) 발생.” 엔에스(NS)홈쇼핑 고객담당 과장이 보냈다. 고객 전화 받으란 얘기다. 이번 상품은 김치다. 조금 전엔 화장용품이었다. 재택근무하던 권아무개(37)씨는 다시 전화기를 든다. 이번 고객은 궁금한 게 참 많다. 상담이 5분을 넘겼다. 그새 휴대전화엔 문자메시지 3통이 쌓였다. 전부 다 고객전화를 빨리 당겨받으란 요구다. 지난해 11월 초 어느날 오전 8시35∼40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권씨는 이날 100통이 넘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회사가 애초엔 내게 ‘프리랜서’라더니….”

홈쇼핑 쪽은 주말근무 지시를 압박하는가 하면 조별 근무시간도 제멋대로 바꿨다. 형식상 프리랜서인 이들에겐 해고와 동의어인 ‘계약 해지’는 회사 마음대로 이뤄졌다. 권씨는 지난 10월 잘렸다. 상담을 불친절하게 했다는 불만제기가 3건 들어왔단 이유에서다. 회사는 계약해지 결정 전 해당 통화조차 들어보지 않았다. <한겨레>가 해당 통화를 입수해 들어보니 고객이 권씨에게 “가시나”라고 부르며 막말을 하거나 다짜고짜 반말을 한 경우였다. 의무콜수를 못 채운 상담사들도 그만두어야 한다.

NS홈쇼핑, 상담사 채용때 ‘꼼수’
프리 계약한뒤 직원처럼 일시켜

‘1주에 5일’ 고정근무 강제하고
특별근무 안하면 “곤란하다”
업무시간 일방 변경도 다반사

상담사들은 퇴직금 등 불이익
“노동자성 지우기 위한 왜곡된 형태”
“우월한 지위 이용한 불공정 계약”

국내 5대 홈쇼핑 업체로 꼽히는 엔에스홈쇼핑이 콜센터 업무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재택근무자들과 형식상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뒤 노동자처럼 일을 시키고도 막상 퇴직금과 연차휴가 같은 노동권은 나 몰라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전화상담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형식상 프리랜서라는 점을 악용해 ‘해고 갑질’을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한겨레>는 최근 권씨를 비롯한 전·현직 엔에스홈쇼핑 프리랜서 상담사들과 만나거나 전화통화 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의 말과 근로계약서, 회사에서 받은 각종 문자메시지 등을 종합해 보면, 재택근무 프리랜서 상담사들은 마치 엔에스홈쇼핑 소속 노동자처럼 하루 단위, 주 단위로 각종 노동통제를 받는다.

우선 회사는 ‘고정 근무시간’을 강요한다. 회사는 하루 17시간을 5개 조로 쪼개 상담사들에게 근무시간을 할당한다. 회사와 권씨가 맺은 ‘프리랜서 재택상담사 업무계약서’를 보면, 상담사들은 한달 동안 1400통화 이상은 무조건 받아야 한다. 1통화 평균 시간이 3분, 20일 근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하루에 3∼4시간꼴이다. 물론 대기시간 등을 계산하면 근무시간은 더 늘어난다. 위의 사례처럼 회사가 문자메시지나 메신저로 추가 통화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7~8시간씩 일하거나 12시간 가까이 일하는 날도 있다. 반면, 상담사가 더 일을 하고 싶어도 고객 전화가 많지 않을 땐 회사가 상담 시스템 접근을 차단한다.

상담사들은 1주에 5일은 반드시 근무해야 한다. 근무를 빠지면 다음달 근무시간이 늘어날 수도 있다. 주말근무는 의무가 아니지만, 회사는 판매상품 인기가 좋아 상담사 일손이 부족한 날엔 이른바 ‘자율 근무’를 신청하라고 각종 메시지를 보낸다. 회사는 성에 안 찰 경우 이를 취합해 전용 통신망에 ‘자율 근무 미신청자’를 올린다. “이러시면 곤란하다”는 압박도 따른다. 상담사들은 ‘자율학습’을 강제로 해야 하는 고3 수험생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계약서엔 “업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회사가 이미 결정된 근무시간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최근 1조에 속해 첫 근무시간에 편성된 프리랜서 상담사 ㄱ씨는 “원래 오후 6시에 근무가 결정돼 있었는데, 갑자기 5시부터 근무해야 한다고 통보가 온 적도 있다. 상담사들은 따를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근무시간뿐만 아니라 근무장소도 통제받는다. 살고 있는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이를 바꾸려면 엔에스홈쇼핑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계약서는 못박고 있다. 상담업무를 할 땐, 회사 쪽이 전용선과 함께 집에 설치해준 피시(PC)와 전화기를 사용해야 한다. 근무시간·장소 통제, 장비 제공 등은 모두 법원이 노동자성을 인정할 때 주요하게 판단하는 근거다.

상담사들이 받는 급여는 많지 않다. 평일엔 1통화당 190∼280원, 주말엔 230∼350원꼴이다. 상담사들은 회사가 제시한 최소 목표치인 2100통화를 해도 한달에 120여만원도 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계약상 최대치인 3360통화를 해내야 겨우 200여만원을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권씨처럼 ‘고객 갑질’에 무릎을 꿇지 않거나 의무콜수를 채우지 못하면 해고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한겨레> 취재 결과, 올해에만 의무콜수를 채우지 못한 3명의 상담사가 계약해지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퇴사한 ㄴ씨는 “몇차례 의무콜수를 채우지 못해 회사로부터 계속 압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엔에스홈쇼핑 쪽은 처음엔 “의무콜수를 채우지 못해 계약해지한 경우는 없다”고 했으나 나중엔 3명 해고를 인정했다. 권씨 해고에 대해서도 “프리랜서 상담사들에 대한 인사평가 기준은 따로 없고, 불친절 사유의 사례로 명시된 기준은 없다”며 “수차례 불친절 직원으로 지목될 경우 관리자의 판단하에 계약해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기준 자체가 없는 것이다.

엔에스홈쇼핑 프리랜서 상담사로 근무하다 해고당한 권아무개(37)씨가 상담사들의 근무 현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유덕관 기자
엔에스홈쇼핑 프리랜서 상담사로 근무하다 해고당한 권아무개(37)씨가 상담사들의 근무 현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유덕관 기자
‘직장갑질119’의 김유경 노무사는 “엔에스홈쇼핑이 노동자성을 지우기 위해서 왜곡된 형태로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것”이라며 “그들의 노동을 싼값에 이용하고 문제가 생길 때는 회사에서 책임지지 않고 있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권씨는 사실상 4년6개월 동안 노동자처럼 일하고도 퇴직금과 해고예고수당, 연차휴가수당 등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재직 중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4대 사회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휴가조차 가지 못했다. 건강보험은 지역가입자로 분류돼 직장인들보다 부담하는 비용도 컸다. 권씨는 “내가 노동자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노동자냐”고 말했다. 권씨는 결국 노동청 문을 두드렸다.

엔에스홈쇼핑에서 일하는 전화 상담사는 모두 700여명이다. 이 중 500여명은 아웃소싱 업체 소속으로 일한다. 권씨처럼 명목상 프리랜서로 재택근무하는 상담사만 200여명에 이른다. 국내 홈쇼핑 업체 가운데 프리랜서 상담사를 쓰는 곳은 엔에스홈쇼핑이 유일하다. 나머지 업체들은 모두 계열사나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들에게 상담 업무를 맡긴다.

‘직장갑질119’의 윤지영 변호사는 “통상 노동자성 여부를 판단할 때 업무·경제·조직 종속성 등을 판단한다. 근로시간 통제가 명백하고, 근로 수단까지 제공됐다는 점에서 권씨는 노동자로 봐야 한다. 엔에스홈쇼핑이 계약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 계약을 맺은 것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엔에스홈쇼핑 쪽은 “2005년부터 경력단절 주부들이 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운영한 제도다.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문제가 생겨서 안타깝다. 프리랜서 상담사들이 업체 소속 노동자들보다 더 자유롭게 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이들의 근무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안다. 내부적으로 프리랜서 상담사들에 대한 처우나 업무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부족했던 부분을 인정하고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유덕관 기자 yd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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