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참사를 빚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서 민간 사다리차가 동원돼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4시께 충북 제천 노블 휘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던 한을환(52)씨는 운동을 마치고 3층 남성 사우나로 향했다. 창밖으로 연기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아래층에서 플라스틱을 태우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연기를 본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한씨도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사실 처음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나가기에 나도 따라서 나갔죠. 느긋하게 나갔더니 사람들은 이미 다 빠져 나갔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주출입구 계단으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한씨가 계단을 내려가려고 할 때 이미 아래층은 검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계단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한씨는 8층 옥상에서 구조를 기다리기로 했다. 곧이어 다른 두 명이 합류했다. 8층에서 세 명이 함께 기다렸다. 소방서에 전화해 현재 상황을 알리고, 가족과 지인에게도 전화를 했다.
곧이어 소방차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다리차가 도착해 사다리를 올리려고 했지만, 몇 번 올라오려다가 다시 내려가길 반복했다고 했다. 그렇게 40분쯤 지났을까. 민간업체의 사다리차가 현장에 도착해 사다리를 올렸다. 한씨를 포함한 세 명이 그 차를 타고 무사히 내려왔다. 한씨는 “지상에 내려오고나서야 건물이 불바다가 됐다는 걸 알았다”며 “지인들이 ‘10분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다’고 했는데, 가슴이 철렁해 그날 밤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씨를 구한 건 제천에서 사다리차 등 스카이장비 대여업체를 운영하는 이양섭(54)씨였다. 이씨는 23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하소동에 사는 친구가 ‘불이 난 것 같다, 8층에 사람이 있는데 불길이 올라오고 있다’고 해서 현장에 가봤더니 우리 장비로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같이 업체를 운영하는 아들에게 전화했더니 마침 일이 끝나고 근처로 오고 있다고 해서 아들이 장비를 가지고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들 이기현(29)씨가 현장에 도착하자 15년 경력의 아버지 이씨가 조종대를 잡고 사다리를 위로 올렸다. 쉽지는 않았다. 연기가 거세지면서 위쪽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비를 펼치기 전에는 잘 보였는데, 불이 커지면서 연기가 많아지니까 위가 잘 보이지 않았어요. 직감적으로 ‘저 정도 높이면 봉 길이를 이만큼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그만큼 빼보니 장비가 벽에 닿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렇게 세 분이 타고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한씨는 22일 생명의 은인인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를 표했다. 이씨는 한씨에게 ‘치료를 잘 받고 쾌유하시라’고 화답했다고 했다. 자칫 3년 전에 1억 5천여만원을 주고 산 장비가 불에 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비용은 상관이 없었다. 사람이 중요하지 돈이 뭐가 중요하겠냐”며 “모든 상황이 잘 맞았던 것이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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