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탕에 들어갔는데 ‘불났다’며 손 잡아끈 할아버지
불법주차 때문에 효율적 구조 이뤄지지 못해 아쉬워”
지난 21일 29명이 희생된 참사가 일어난 제천 복합스포츠 건물에서 소방 당국이 막바지 화재 진압을 하고 있는 모습. 제천/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 할아버지 덕분에 겨우 살았습니다.”
충북 제천 화재 참사에서 살아 나온 황아무개(35)씨는 상기된 얼굴로 간신히 현장을 빠져나온 상황을 돌이켰다. 대피 뒤 제천서울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중인 황씨는 21일 밤 <한겨레> 기자와 만나 “온탕에 들어간 지 1분 정도 됐을 때 백발의 할아버지께서 ‘불났다’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한번 더 ‘불났는데 뭐 하느냐’고 하셨다. 그때 창밖을 보니 검은 연기가 올라오는 게 보였고 서둘러 사우나를 빠져나왔다”고 사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이어 “삽시간에 검은 연기가 사우나 안을 채웠다”며 몸을 떨었다.
황씨는 누군가가 “비상구가 저기 있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사우나 비상계단을 통해 오후 4시5분께 현장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나오자마자 손을 잡아끈 할아버지를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황씨는 자신을 살려준 할아버지는 정작 생존 여부가 확인이 안 된다며 걱정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비상구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어르신들은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제발 무사히 나오셨으면….”
제천/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