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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구세군 자선냄비는 한반도 대기근 때 처음 등장했다

등록 2017-12-15 10:43수정 2017-12-15 11:18

[역사 속 오늘] 89년 전 오늘 1928년 12월15일
1928년 한반도 대기근 때 서로 돕자는 차원에서 등장
“딸랑~ 딸랑~.”

겨울이면 제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종을 울립니다. 옆자리엔 삼각 다리에 걸린 붉은 냄비 모양의 모금 통도 함께합니다. 89년 전 오늘, 1928년 12월15일 당시 한국 구세군에 의해 서울에 처음 등장한 자선냄비 이야기입니다.

자선냄비의 출발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

성탄절이 다가오던 1891년 어느 추운 겨울날,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부둣가에는 주방에서나 볼 법한 큰 쇠솥이 내걸렸습니다.

당시 러키 해안에서는 여객선이 난파돼 1000명 넘는 난민들이 발생했습니다. 당국이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사이 이들은 굶주림과 추위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당시 조셉 맥피 구세군 사관은 고민 끝에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을 거리에 내걸었습니다. 옛날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을 떠올린 것입니다. 그는 솥 위에 이렇게 써 붙였습니다.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웃을 돕기 위해 새벽까지 고민하던 한 구세군 사관의 따뜻한 마음이 행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솥 안에는 어려운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성금이 모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말이 되면 전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한국 최초의 자선냄비

1928년 8월 27일 <동아일보> (왼쪽), 1928년 5월 11일 <동아일보>
1928년 8월 27일 <동아일보> (왼쪽), 1928년 5월 11일 <동아일보>

“ 가뭄이 심해 흉년을 면치 못하게 돼 인심이 흉흉하여 쌀 한 섬에 이원이 올라 ”-1928년 8월 27일 치 <동아일보>

“ 대한 끝에 홍수 금년 농사는 다시 가망 없어 ”-1928년 5월11일 치 <동아일보>

일제강점기인 1928년 한반도에는 홍수와 연이은 가뭄으로 인해 흉년이 들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도둑질을 일삼았습니다. 서울 서대문과 종로거리를 오가며 헤매고 있는 노숙인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당시 한국 <구세군자선냄비본부> 박준섭(조셉 바아) 사령관은 서울 명동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불우이웃 돕기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 해 12월 15일부터 31일까지 20개소에 모금된 금액으로 급식소를 차려 매일 약 130명의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울러 아동 구호 시설을 통해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지원도 이뤄졌습니다.

내가 낸 자선냄비 성금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나

사진출처. <구세군자선냄비본부> 공식 누리집
사진출처. <구세군자선냄비본부> 공식 누리집
자선냄비는 1928년 거리모금을 시작한 이래로 90여 년 동안 사회 소외계층의 건강한 삶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자선냄비 모금 활동을 하고 있는 구세군은 1916년 29명의 걸인 아동을 돌보는 서울후생학원을 시작으로 사회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아동구호시설인 혜천원, 윤락여성을 살피는 여자관, 교육사업을 위한 학교 설립 등으로 이들의 자립을 지원했습니다.

아울러 재난, 수해 등 긴급한 상황 속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긴급구호 활동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6·25전쟁 때 피난민을 위한 급식사업, 구호사업 등이 대표적입니다.

기부, 거부감이 드신다고요?

한국 최초의 자선냄비가 등장한 지도 어느덧 9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구세군 자선냄비의 모금을 통해 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섬기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구세군과 같은 단체는 시름에 빠졌습니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사단법인의 기부금 횡령 보도까지 더해져 기부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딸 치료비로 받은 기부금 13억 원을 유용해 호화생활을 즐긴 이른바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은 시민들에게 적지 않은 허탈감까지 안겼습니다. 실제로 통계청 ‘2017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기부 경험자는 26.7%로, 2011년 36.4%에 견줘 대폭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진출처. <구세군자선냄비본부> 공식 누리집
사진출처. <구세군자선냄비본부> 공식 누리집
그러나 자선단체 관계자들은 이런 분위기 때일수록 기부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구세군자선냄비본부> 임효민 홍보팀 부장은 15일 오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기부자들은 기부에 앞서 내가 지원하고자 하는 단체가 어떤 곳인지 꼼꼼히 확인하고,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임 홍보부장은 그러면서 “자선단체의 기부금 오용 및 악용을 막기 위한 감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외계층과 건강한 우리 사회 구조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자선단체가 모금액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일 텐데요. <구세군자선냄비본부> 이기범 간사는 “자선냄비를 통해 기부한 성금은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 공식 누리집을 통해서 모금액과 지원 내역별 금액까지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선냄비본부는 조만간 기부자들이 낸 성금의 배분사업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관련 영상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시작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함에 길을 가던 시민들이 정성 어린 손길로 모금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시작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함에 길을 가던 시민들이 정성 어린 손길로 모금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자선냄비는 올해도 지난 12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한 달간 전국 약 420개 처소에서 약 5만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모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퇴근길 자선냄비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보는 건 어떨까요?

강민진 기자 mj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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