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익 (1860~1914)
1884년 12월4일, 갑신정변으로 테러를 당하다
다음은 민영익을 미워하거나 얄미워한 사람들이다.
① 민씨 집안은 개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표적이었다. 민승호 집안은 1874년 폭탄테러로 몰살. 그 동생 민겸호는 1882년 임오군란 때 대원군이 보는 앞에서 피살. 새로 실세로 떠오른 사람이 젊은 민영익이었다. 1883년에 사절단을 이끌고 미국과 유럽을 방문, 말로만 듣던 서구 문물을 직접 보고 왔다. 쟁쟁한 개화파 인사들과 함께였다.
② 그런데 개화파 인사들도 민영익을 미워했다나. 개혁의 속도에 대해 의견이 달랐다고도 하고 중국과 일본에 대한 외교노선이 달랐다고도 한다. 어쩌면 그저 주도권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갑신정변의 날, 민영익을 배신한 것은 함께 미국에 다녀온 개화파 친구들이었다. 민영익이 암살자의 칼에 난자당한 날이 1884년 12월4일이었다.
③ 10여 군데를 베이고 찔리고도 민영익은 숨이 붙어 있었다. 미국인 의사 알렌이 그를 치료했다. 그런데 민영익은 ‘진상’ 환자였다. 알렌의 고무장화가 탐난다며 빼앗고, 산삼과 기름진 음식을 먹어 상처를 덧나게 한 일도 있다. 알렌은 민영익이 퍽 얄미웠던 듯. 그래도 이 일로 훗날 외교관이 되어 조선의 이권을 주물렀으니, 알렌도 싫지만은 않았으리라.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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