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이튿날인 지난 16일 오전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 아파트에서 77살 박정자 할머니가 깨진 가재도구들을 치우고 있다. 포항/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낮에 입은 옷 그대로재. 언제 또 땅이 흔들릴 줄 아나. 그래(그렇게) 누워 있어도 잠이 잘 안 온데이.”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오도2리에 사는 독거노인 한동예(76) 할머니의 목소리는 바르르 떨렸다. 꼭 1주일 전인 11월15일 오후 2시29분, 규모 5.4의 지진이 포항을 비롯한 전국을 뒤흔들었다. 지난해 경주 지진에 이은 역대 2위 규모다. 바닷가와 맞닿은 오도2리는 지진 진앙인 흥해읍 용천리에서 차로 18분 정도 떨어져 있다. 한동예 할머니의 집 역시 “금이 가고 난리도 아니”게 됐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독거노인 지진 피해 상황. 포항 원광보은의집 제공
지진이 일어난 15일 오후 2시께, 한동예 할머니는 동네 노인들과 함께 경로당에 있었다. “처음에는 지진인 줄도 몰랐재.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쾅’ 하고 나고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쓰러졌어.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다 넘어져서 여기 정강이에 멍까지 들어뿌렸어. 할 수 없이 할매들끼리 서로 끌어안고 있었다 안카나.”
무서워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억지로 내디뎌 집에 가보니 보일러실에 물난리가 나 있었단다. “수도 어디가 부러진 것 같은데 어찌할지를 몰라 계량기를 잠가버렸어. 그러고 나니 물이 있어야 밥을 해먹지. 그 길로 이우재(이웃집)에 가서 3일을 잤어.”
포항시 북구 흥해읍 독거노인 지진 피해 상황. 포항 원광보은의집 제공
포항 지진은 ‘현재진행형’이다. 포항 지역에는 15일 이후 모두 62차례 여진이 이어졌다. 이 가운데 규모 3.0~4.0 미만 여진만 5차례다. 가장 최근 여진이 발생한 시각은 22일 낮 12시41분. 한동예 할머니는 “아직도 심장이 뛴다. 지금 앉아있는데 땅이 흔들리는 거 같다”며 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했다.
한동예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알 수 있듯 재난과 마주하는 불안한 마음을 홀로 견디고 있는 독거노인들의 ‘지진 트라우마’는 상상 이상이다.
독거노인들에게 지진 트라우마가 유독 강력하게 잔존하는 이유는 뭘까. 김병후 정신과 전문의는 2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천재지변은 안정성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인데 독거노인은 이미 평소에 불안감이 큰 상태라 지진을 마주했을 때 일반인보다 훨씬 더 (불안감이) 과중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람이 불안하게 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나오고 그 자체로 면역력이 많이 떨어지게 된다”며 “어르신들이 (지진 이후) 자꾸 안 움직이려고 하는데 그러면 트라우마가 더 오래간다. 가족이 됐든 같은 독거노인이 됐든 사회복지사들이 됐든 어떤 형태의 대면 접촉이라도 자주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한겨레>와 전화로 인터뷰한 흥해읍 지역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정향숙(58)씨도 누구보다 독거노인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씨 같은 생활관리사는 독거노인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최전선에 서 있다. 정부는 독거노인 돌봄 기본서비스의 하나로 전국 244곳 수행기관을 통해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들은 주 1회 이상 직접 방문, 주 2회 이상 전화로 독거노인들의 안부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기초생활수급제 등 복지서비스를 안내하기도 한다.
포항시는 북구는 원광보은의집, 남구는 포항시니어클럽에 위탁해 이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북구에서 실제로 홀로 사는 노인은 4878명이고 생활관리사가 방문하는 서비스 대상자는 1350명이다. 대상자는 건강상태 등 6개 항목으로 평가해 보호 필요 점수가 높은 순으로 선정된다. 정씨는 흥해읍 서비스 대상자 320명 중 32명을 맡고 있는데 이 중 한 명이 한동예 할머니다.
지진이 나자마자 독거노인들이 안전하게 있는지 확인한 것도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들의 몫이었다. 정씨는 “지진이 나자마자 전화로 어르신들 안부를 전부 확인했는데 너무 놀라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하고 누구인지 못 알아듣는 어르신도 있었다”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이는 흥해읍 독거노인들 대부분이 80대 이상일 정도로 고령인 탓도 크다. 정씨는 “90대 이상이 320명 중 10%인 30여명 정도이고, 자식이 없는 무의탁 노인도 20여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전화를 한 번에 받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정씨는 이웃까지 수소문해 독거노인들의 안부를 일일이 확인했다고 한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독거노인 지진 피해 상황. 포항 원광보은의집 제공
지진 다음날인 16일 직접 집으로 찾아가 보니 어르신들이 쓰러진 짐을 치우지도 못한 채 앉아있었다고 정씨는 전했다. 담장이 무너진 집, 구들이 내려앉은 집부터 해서 하다못해 쌓아놓은 연탄 더미가 무너진 집까지 지진 피해 내용을 정리해 시청과 각 지역 주민센터로 보낸 것도 정씨와 동료 생활관리사들이었다.
자녀 집으로 거처를 옮긴 경우는 소수였다. 정씨의 설명을 들어보면, 흥해읍 독거노인 320명 가운데 외지 자녀 집으로 간 경우는 20명, 대피소로 간 경우가 30명 정도다. 나머지 270여명은 15일 첫 지진 이후 그대로 집에 혼자 머무는 셈이다. 정씨는 “일단 거동이 자유롭지 않은 경우가 많고 자녀 집이 불편하시다고도 한다. 무너지고 갈라진 집이라도 본인 집을 지켜야 한다면서 거처를 안 옮기시겠다는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무너진 담은 다시 세운다고 해도 한 번 금이 간 독거노인들의 마음은 쉽사리 붙질 않는다. 정씨는 “어르신들 상태가 더 나빠진 것 같다. 자꾸 여진이 이어지니까 더 겁을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식사도 잘 못한다. 여진이 올까봐 국이나 찌개처럼 시간이 걸리는 음식은 겁이 나서 못 끓일 정도”라고 독거노인들의 현재 심리 상태를 전했다. 지진 당일과 다음날 독거노인들끼리 경로당에서 같이 잠을 잔 마을도 있었다고 정씨는 말했다.
“직접 뭘 해줄 수는 없고 말벗이 되어주는 정도”라고 말하지만 현 상황에서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흥해읍 독거노인들에게 당장 위로가 되는 것은 정씨와 같은 생활관리사들이다. 한 할머니는 정씨를 두고 “너무 좋재. 말도 몬한다. 말이라도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정씨는 22일 쉬는 날이었지만 지진 피해 신고를 위해 한 할머니 집에 찾아온 터였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